[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6월 <돈화문국악당>에서 유지숙명창이 부른 서도 좌창 “제전(祭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한식 명절에 죽은 남편 무덤을 찾아가서 정성껏 제물을 차려놓고 수심가조의 창법으로 절규하는 노래라는 점, 서도소리에도 좌창이나 입창(선소리)형태를 비롯하여, 송서, 율창, 소리극, 재담, 신명나는 민요 등이 있으며 이에 따라 이름난 명창이 많았으나 1세대 명창들은 거의 작고한 상황이고, 지금은 남쪽의 2세대들이 이 소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제전”은 갖가지 음식이며 술을 준비해서 상차림을 한 후, 남편을 애절하게 회상하는 내용인데, 유지숙은 서도소리 특유의 시김새와 창법으로 청중을 감동시켰다는 이야기, 그 시작에‘백오동풍(百五東風)’은 한식(寒食)때 불어오는 봄바람으로 이는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 한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제전”에서는 상차림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갖가지 제물을 차려놓되, 각각의 제물 이름이라든가 또는 그 제물들을 놓는 위치를 알려주고 있으며, 이와 함께 각 제물의 생산지가 소개되고 있어서 어느 지역에서 어떠한 물품이 특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일제의 강압정책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살던 사람들이 <교포> <조선족> <고려인> <코리안>이란 이름으로 이국땅에 살고 있으면서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 재외동포들의 2세나 3~4세들 중에는 모국어는 구사하지 못해도 아리랑은 애국가 이상으로 많이 부르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 혹은 부모세대가 슬픔과 기쁨을 아리랑과 함께 하던 생활 속의 경험이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고려인들은 황무지 연해주를 옥토로 바꾸었고, 러시아의 적인 일본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구 소련 사회에 이바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냉대와 질병, 추위와 기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저력은 아리랑의 힘이 컸다는 점, 대단한 음악은 반드시 쉽다는 대악필이(大樂必易)는 아리랑이 연상된다는 이야기,《아리랑》을 활용한 프로그램으로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빈자와 부자, 노년과 청소년, 본국과 해외교포와의 국민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번 주에는 유지숙이 불러주는 서도소리 중에서 좌창에 속하는 <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아리랑은 슬픈 감정으로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노래가 되고, 반대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경쾌하게 부르면 기쁜 노래가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리랑이란 무슨 뜻이고 어떤 의미를 내포한 말인가? 하는 어원에 관한 이야기 등도 소개해 보았다. 그 가운데서 아리랑이란 의미는 첫째가 크다(大)는 뜻이라는 점, 랑(郞)은 '님'이어서 <크신 님>, <하늘 님> <하느님>이라는 주장이 있다는 이야기, 두 번째 의미로는 <고운 님>, 세 번째로는<사무치게 그리운 님>이고 쓰리랑은 마음이 쓰리도록 <그리운 님>이라는 뜻이라는 주장, 네 번째로는 나 아(我), 이치라는 뜻의 리(理), 즐거울 랑(朗)으로 해석해서 <나를 찾는 즐거움의 노래>, <나를 깨닫는 즐거움>이란 뜻으로 의미를 찾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리랑은 크다는 의미와 연계하여 큰 강을 뜻하기도 하는데, 한강수를 아리수라 부르기도 하였다는 이야기, 그밖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 등을 덧붙였다. 반드시 의미를 알고 아리랑을 불러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앞에서 소개한 여러 의미가 있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아리랑이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분명치 않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1800년대 중반, 경복궁을 중건할 때, 각 지역에서 차출된 인부들이나 또는 사당패를 불러 연희할 경우에 각 지역의 아리랑이 불려 졌고, 그 후 인부들에 의해 파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그 뒤 1896년는 외국인 선교사 헐버트(hulbert)가 당시의 아리랑을 5선보로 채보하였는데, 이 곡은 현재의 <구 아리랑>이란 점,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라는 영화에서는 주제곡으로 <아리랑>을 편곡하였는데, 영화와 함께 아리랑 노래가 민족 감정을 폭발시키게 되어 민족의 노래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점, 이 아리랑은 기존의 <구아리랑>에 견주어 박자나 가락, 시김새의 형태를 간결하게 변화시킨 <신아리랑>이란 점을 얘기했다. 현재는 이 아리랑을 다른 지방의 아리랑과 구별하기 위하여 서울 경기지방의 <본조(本調)아리랑>, 또는 단순하게 <아리랑>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 본조아리랑의 음조직은 Sol-La-Do-Re-Mi의 5음으로 순차 상행이나 하행하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한국의 아리랑은 지난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4년에는 북한의 아리랑민요가 역시 등재되었기에 아리랑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인의 노래 유산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지난주에 하였다. 정선아리랑을 비롯하여 서울 경기지방의 본조(本調)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외에도 문경아리랑, 상주아리랑, 해주아리랑, 대구아리랑, 공주아리랑, 영천아리랑, 용천아리랑, 등등 지역의 특징적인 아리랑은 수도 없이 많다는 이야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기도 했지만, 식민지 시절,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각 지방에서 부르기 시작했으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또 무엇보다도 아리랑의 음악적 특징은 간결하면서도 정제되어 있는 형식과 선율형이 간단해서 쉽게 부를 수 있다는 점, 3박자형의 리듬구조, 지역마다의 시김새가 다양하다는 점, 그 중에서도 특히 떠는 소리의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즉석에서도 지어 부를 수 있는 풍부한 노래말이라든가, 박자의 조절이나 감정의 상태에 따라 슬픔과 기쁨 등 음악적 분위기를 바꾸어 부를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불리고 있는 “아리랑”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4인, 즉 미국 유타대학 명예교수 이정면 박사, 사회사업가 류승호 씨, 사진작가 류승률 씨, 그리고 문학작가 서용순 씨를 소개하였다. 이들은 음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고려인들이 지켜온 아리랑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그들이 답사한 아리랑 로드 10만Km의 생생한 기록을 한 권의 책에 담으면서 6월 7일 인사동 소재 토포하우스에서 출판기념회와 사진전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53만 고려인들이 부르는 아리랑 속에는 과거의 아픈 상처가 묻혀있는데, 그 중에서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18만 명의 고려인들이 영하 30도의 추운 카자흐스탄 벌판으로 강제 추방된 사건은 잊을 수가 없는 탄압이었다.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질병과 싸우면서도 그들에게 가해진 탄압의 역사를 아리랑을 부르며 견뎌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강력한 힘의 원동력이었으며 희망이었고, 부모였으며 조국이었고, 생명의 노래였던 것이다. 이번 주에는 그들이 그토록 처절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정욱이 펼치는 <배뱅이굿 발표회> 이야기를 하였다. 박정욱은 누구보다 배뱅이굿을 사랑하고 아끼는 젊은 명창으로 김정연에게 처음 배우기 시작하였고, 후에는 이은관을 사사하였다는 이야기, 배뱅이굿 이외에도 경서도민요, 춤, 민속놀이, 굿, 연기,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내공을 쌓아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배뱅이굿>의 내용은 <배뱅이>라는 처녀가 상사병에 걸려 죽게 되자, 그녀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8도의 무당들을 불러 굿을 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으며 노래, 아니리(대사), 발림(몸짓, 연기)으로 남도의 판소리와 비교된다는 이야기, 배뱅이굿은 100여년이 넘는 소리로 김관준 이후로 김종조, 김주호, 최순경, 이인수, 김칠성 등이 이어받았고, 이은관은 이인수에게 배워 일약 대스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불리는 “아리랑”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4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들은 어느 누구도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으나 고려인으로 살아가는 동포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특히 그들이 지켜오고 있는 아리랑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사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해학(諧謔)이 넘쳐나는 휘모리잡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사설이 재담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매우 해학적이란 점, 볶는타령 장단으로 빠르게 몰아가기 때문에 모임의 파장 무렵에 부르게 마련이란 점, 생성연대를 1800년대 중반으로 보는 근거는 중반 이후에 <육칠월 흐린 날>과 같은 노래가 유행했고 박춘재(1881년생) 명인이 어렸을 때부터 휘모리잡가를 들으며 자랐다고 말한 점을 들었다. 또 1907년 최초의 휘모리잡가 음반이 출시되었다는 점, 1900년대 초, 잡가집 속에 <바위타령>이나 <맹꽁이타령>, <곰보타령> 등, 휘모리잡가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 등이라는 이야기, 또한 휘모리잡가 가운데는 옛 장형(長型)시조와 맥을 함께 하는 형식도 있으며 초기의 명창 박춘경은 농부 출신으로 시조, 수잡가, 긴잡가, 휘모리잡가를 잘 불렀고, 이현익은 <병정타령> <맹꽁이타령> <바위타령> <비단타령> <순검타령>등을 창작하였다는 점도 얘기했다. 이 가운데 <비단타령>은 마치 경을 읽는 듯한 독경(讀經)방식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울, 경기지방에서 불러온 휘모리잡가 중 비단타령 이야기를 하였다. 이 노래는 앞에서 소개한 판소리 흥부가에 나오는 비단타령과는 가사도, 창법도, 장단도, 음계도 전혀 다르다는 점, 그 시작은 “청색 홍색 오화잡색, 당물당천 거래시에 동경천이며 남경천, 동양천이며 서양천이라.”로 시작하여 <중략> 마지막 부분은 “기갈이 자심하고 초기가 막심하야 기다리고 바라던귀, 야반삼경 조요한데 문틈으로 넘나든 귀, 일락서산 저문 날에 지체 말고 가거스라.”로 맺고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서울의 잡가는 앉아서 부르기 때문에 이를 좌창(坐唱)이라고도 부르는데, 긴잡가는 느린 6박의 도드리 장단, 휘모리잡가는 빠른 4박의 타령장단이란 점, 잡가라고 하는 명칭은 정가(正歌)에 대해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를 낮추어 부르는 명칭이란 점, 1920년대의 잡가집에는 정가와 민속가의 대부분이 한 책속에 잡거(雜居)하고 있기에 <여러 노래의 모음집>이란 뜻으로 잡가(雜歌)로 불러 왔다는 점, 휘모리잡가는 해학적인 긴 사설을 휘몰아치듯 빠른 장단으로 부른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서울, 경기지방에서 불러온 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흥보가> 중, 두 번째 박에서 각종 비단(緋緞)이 쏟아져 나와서 이 대목을 비단타령이라 부르고 있다는 점, 비단이란 증(繒)·백(帛)·견(絹)과 같은 견직물을 이르는 말로 특히 견의 생산과 직조는 BC 3000년 중반 이전에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에서도 기후 풍토가 양잠에 적합하여 오래전부터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며, 비단실을 켜서 비단을 짜는 일이 발달하였다는 점을 얘기했다. 비단타령의 마지막 부분은 “청공단, 홍공단, 백공단, 송화색(松花色)까지 그저 꾸역꾸역 나오너라”로 맺는데, 같은 계열의 박봉술이 부르는 대목과는 유사하기도 하고 또는 부분적으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는 점, 대개 앞부분이나 마지막 부분은 유사하고 중간부분은 첨삭 부분도 있다는 점, 이와는 달리 서울, 경기지방의 휘모리잡가에도 비단타령이 들어있으며 여기에서의 휘모리라는 말은 빠른 박자를 지칭하고, 잡가란 정가에 비해 점잖지 못한 노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휘모리잡가 속에 들어있는 <비단타령> 이야기가 되겠다. 이 노래는 앞에서 소개한, 판소리 흥부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