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일제강점기 민족의 울분과 한을 판소리로 달래주었던 임방울(1905~1961) 명창의 예술혼을 기리고 새로운 차세대 명창을 선발하는 축제의 한 마당, 제24회 임방울국악제가 9월 23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4일에 걸쳐 광주시 소재,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광주광역시와 조선일보사, SBS가 공동 주최하고 임방울국악진흥회(이사장 김중채)가 주관해 오는 행사로 그 참여인원이나 상금규모에 있어서 국악계 최고의 권위 있는 등용문으로 알려져 있다. 경연의 분야는 판소리, 시조, 농악, 가야금병창, 기악, 무용으로 다양하다. 특히 판소리의 경우를 보면 더 세분화 되어 있어서 판소리 학생부, 판소리 일반부, 판소리 명창부, 퓨전 판소리부 등이며 다른 분야에도 학생부와 일반부, 명인 명창부, 등으로 구분이 되어 수준에 맞는 분야에 참여가 가능하다. 그래서 경연 참가자도 700명을 넘었다. 경연 참가자 뿐 아니라 각 분야별 심사위원의 수도 80명을 넘었으며 평가교수단이나 대회의 운영위원 등을 합하면 100여명의 전문가들이 본 대회의 알찬 결실을 위해 최선을 다한 큰 잔치였다. 대회 첫날에는 판소리 학생부, 관악, 현악, 무용 예선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향당교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향당(鄕唐)이란 말에서 향(鄕)은 향악, 향악곡, 향악기를 지칭하는 말이고, 당(唐)은 당악, 당악곡, 당악기를 아우르는 말이라는 점, 고려시대에는 송(宋)에서 아악과 당악이 유입이 되었는데, 이들은 종래의 향악과 형식, 악기 편성, 장단, 음 높이(Key) 따위에서 다르기 때문에 대칭을 이루었다는 점, 그래서 처음에는 향악과 당악을 교대로 연주하다가 합주의 단계로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향당교주는 향당합주라는 의미가 되었다는 점을 말했다. 또 조선조 후기에는 향악기와 당악기의 합주라는 개념에서 무용반주의 악곡 이름처럼 쓰이기 시작하는 현상을 보인다는 점, 현재는 삼현영상회상의 상령산(上靈山)을 지칭하며 무용반주를 할 때의 별칭이라는 점, 관악 상령산은 박자가 일정치 않은 불규칙 장단형이어서 이를 규칙적인 장단으로 만들고, 가락을 첨가한다는 점이 연주용과 무용반주이 다르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김종옥의 정가 모음집 음반 출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대한시우회(時友會) 성남 지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해 오고 있는 김종옥 사범이 얼마 전 가곡, 가사, 시조 등 5매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충남 홍성에서 열렸던 <가무악 전국대회> 관련이야기를 하였다. 홍성은 현재 충남의 도청 소재지로 내포문화권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많은 역사 인물이 배출된 곳이다. 예를 들면 국악과 관련해서는 명고수 이면서 승무, 살풀이 등의 명무였던 한성준을 배출한 예향이며 명공 석사나 선비들이 즐겨 부르기도 했던 시조가 널리 불리기도 한 지역이란 점, 현재, 충청남도는 내포제시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있으나 관현악을 비롯하여 지역의 특징을 담고 있는 성악 등, 일반적인 국악의 공연은 활발하지 못해서 전통음악의 불모지가 되어버렸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럼에도 지역의 예술인들과 유지들이 전통문화의 발굴이나 전승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 이러한 맥락에서 이 <가무악 전국대회>도 홍성군의 축제와 연계시켜 그 규모를 확대시켜 나가는 과정이 돋보였다는 점, 특히 시상식에 앞서 마련한 특별공연에 국악의 명인, 명창 외에도 학생들이나 젊은 연령층이 선호하는 가수들을 초대해 자연스럽게 전통음악과 군민을 연계한 프로그램도 인상적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다시 이번 주에는 <향당교주>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창남 명창의 경서도 소리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평생을 무대에서, 방송국에서, 전수교육장에서 후진들을 키워오며 살아온 80을 넘긴 고령의 최명창이 해마다 제자들과 함께 소리판을 꾸준히 열고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노테크를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 대형 국악공연을 기획해서 흥행 공연을 많이 했던 김뻑국씨에 따르면 “국악계 누구, 누구 온다고 해도 최창남 빠지면 지방공연은 계약이 성사되기 힘들었다”는 경험담도 소개하였다. 최창남은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내려와 정착을 했고, 그곳에서 민형식을 위시하여, 신경문, 김추월, 양소운, 임명옥, 최경명 등 당대 이름을 날리던 서도 명창들에게 수심가, 사설방아타령, 산염불, 난봉가 류의 소리를 익혔다는 이야기, 이은관의 소개로 벽파 이창배 명인을 만나 시조며 가사, 좌창, 입창, 민요, 등 경서도 소리 전 바탕도 배웠다는 이야기, 그의 소리속에는 굳세고 부드러운 강유(剛柔)와, 밝고 어두운 명암(明暗)이 교차하고 있으며 진하고 옅은 농담(濃淡)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현란한 기교들이 숨어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 속풀이에서는 지난 9월 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속풀이에서는 9월 8일 장충체육관에서 있었던 황용주 명인의 예악생활 60주년 기념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평생 선소리 산타령을 부르면서 살아온 황용주(黃龍周) 명인이 인생 80을 맞아 제자들과 더불어 장충체육관 특설무대에서 산타령 외 경기소리 전 분야를 공연하면서 핫 에이지(Hot Age)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이야기, 여럿이 대형을 갖추며 놀량-앞산타령-뒷산타령-자진산타령 등을 연이어 부르는 입창(立唱)형식의 산타령은 답교(踏橋)놀이의 단골 메뉴였다는 이야기, 그 대표적인 예가 ‘살고지다리’의 정월 대보름 축제라는 이야기,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화의 물결은 전문 선소리패들의 연창(演唱)을 단절시켜 유명 소리패들의 공연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이 1960대 후반, 《산타령》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그 명맥이 오늘에 이어졌다는 이야기, 그러나 산타령의 전문가는 확산되지 못하고 있어서 자생력이 약한 종목으로 남아 있으므로 전승을 위한 특별배려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야기, 관리 감독하는 문화재청도 비인기 종목에 대한 특별 육성책을 강구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흔히, 은퇴 후 30년의 시기를 핫 에이지(Hot Age)라고 한다. 열정을 갖고 일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보통 60살 안팎에 은퇴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30년 뒤인 90살 전후가 이 시기에 속하는 것이다. 실제로 90, 또는 100살을 넘긴 노인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을 쓰고, 자기가 평소 하고 싶어 하던 일을 마음껏 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만나게 된다. 하기 좋은 말이 아니라, 70, 80살의 노인에게도 열정이 있다면 마음은 청춘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평생 선소리 산타령을 부르면서 살아온 황용주(黃龍周) 명인이 인생 80을 맞아 제자들과 더불어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특설무대에서 오후 2시부터 기념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열정을 지니고 핫 에이지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어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사람이 외길 인생을 산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 법인데, 그것도 10년이나 20~30년도 아니고 60년을《산타령》을 부르며 살아왔으니 그가 후학들로부터 존경과 축하를 듬뿍 받는다는 일이 얼마나 보람차고 자랑스러운 일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궁중의 나례(儺禮)의식, 곧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에 쓰였던 처용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처용무는 궁중정재의 하나로 신라 때 처용설화와 관계가 깊다는 이야기, 처음엔 한 사람이 검은 천으로 만든 사모, 흑포사모(黑布紗帽)를 쓰고 추다가, 후에 청(靑), 홍(紅), 황(黃), 흑(黑), 백(白) 등 오방(五方)의 화려한 옷을 입은 5명의 춤꾼이 추는 춤으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주로 연산군 이후에는 잔치의 끝맺음을 하는 파연(罷宴)의 악무(樂舞)로 채택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순조 때의 《진찬의괘》나 《진작의괘》의 그림에는 5방의 원무 외에 4명의 협무(協舞)도 들어 있다는 이야기, 1800년대 이후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는 점차 처용무의 등장이 줄어들고 대신 새로 창작된 춘앵전이나 선유락, 무고, 검무 등이 많아졌다는 이야기,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원기로도에 포구락과 처용무가 함께 들어 있다는 점은 곧 이 그림이 1600~1800년대의 잔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처용설화나 처용가(處容歌)에 대한 국문학적인 연구는 정병욱의 문학으로 본 처용가」를 비롯하여 여럿 논문이 발표되어 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 연변대학에 이어 연길시 조선족예술단을 방문하여 교류한 이야기를 하였다. 직업 악단과의 세미나를 통해서 레퍼터리의 확장방안, 관객의 확보방안, 그리고 음악의 내용, 춤과 악의 안배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눈 후, 양쪽에서 2~3절목의 교류 공연이 이어졌다는 이야기, 예술단 측에서는 젊은 여가수의 경기민요 풍년가와 잦은방아타령의 발표가 있었고, 대금 산조가 연주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쪽에서는 김병혜, 송효진, 김보배의 심청가 중 범피중류를 들려주었다는 이야기, 그 젊은 여가수의 선생이 연변 예술대학의 김순희 교수이고, 김순희교수의 스승이 바로 묵계월 명창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그 여가수의 창법이나 발음, 발림 등이 편안하고 낯설지 않았다는 이야기, 대금 산조의 경우는 북한의 저대에 키를 부착하여 개량하였으며 대금음악을 확산시키기 위해 소학교에서 400여 아동들에게 소금을 지도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도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가 진심어린 마음을 들어내며 뿌듯한 교류였으며, 이러한 결과는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온 그간의 만남이 원동력이 되었고, 이러한 교류회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서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 연변대학에서 가졌던 한 중 학술 및 실연교류회에서 한국 쪽이 보여준 공연을 소개하였다. 박문규 명인의 편락을 시작으로 10여 종목이 선을 보였다는 점, 이기옥과 김인숙이 부른 송서 율창 중 등왕각서, 송서란 한 마디로 글 읽기이며 밋밋하게 글자만을 읽지 않고, 고저와 강약, 시가(時價)를 구별하면서 음악적으로 구성지게 표현하는 장르라는 점을 얘기했다. 또 추점순의 경기민요와 고향임과 제자들의 단가와 판소리, 정효정의 가야금 독주 영목, 남도 명창들의 성주풀이외 유춘랑 외 2인의 난봉가류, 박준영의 배뱅이굿을 얘기했는데 배뱅이굿은 서도식 창법으로 부르는 1인 창극조라는 점을 말했다. 공연 마무리는 김병혜와 서편제소리사랑 팀의 창극조 뱃노래였으며 박수나 추임새를 아끼던 그들이 마지막 순서에는 앞을 다투어 무대 앞으로 나와 함께 춤도 추고, 목소리도 높였으니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연변 체류시 안내원이 “연변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최고의 연주자, 유명한 성악가들이 다 모여드는 걸 보니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들이 대단한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며 말투나 행동이 공손해 지고, 우리를 대하는 태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한중학술 및 실연교류에서 중국 연변 쪽에서 발표한 종목 가운데 인상에 남는 신광호의 압록강2천이나 박춘희의 비단짜는 처녀와 일하기도 좋고 살기좋은 나라가 독특한 창법이나 음색, 박력적인 선율로 관객을 압도했다는 이야기, 이에 못지않게 인기를 끌었던 김순희의 태평가와 해란강 전설, 리홍관이 부른 긴난봉가 등 서도민요에 관한 이야기도 하였다. 연변땅에서 경기민요나 서도민요를 듣게 된 것은 1990년대 초, 전화자 교수가 한국서 유학을 한 다음, 연변에 돌아가 대학의 제자들을 지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이야기, 그 결실로 교류음악회에서 북한식 노래 일변도가 아니고 서서히 남한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음악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 리수련의 옥류금 독주 도라지는 다양한 주법으로 절찬을 받았는데, 옥류금은 연변 출신 김계옥 교수를 통해 한국에서도 종종 연주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측에서는 가곡, 송서 율창, 경기민요, 판소리 흥보가, 가야금 창작곡 영목, 성주풀이를 비롯한 남도민요, 서도민요와 배뱅이굿, 창극 뱃노래를 열연했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며, 공연문화도 달라 연변에서는 아무리 흥이 나도 열연하는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