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까치설날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하여 임금을 해치려 하였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의 인도로 이를 모면하였습니다. 그런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기리는 날이 있지만, 까치를 기릴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를 기리려고 까치설이라 했다고 하지요. 그런가 하면 옛날 섣달그믐을 작은설이라 하여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라 했는데 이 “아치”가 경기지방에서“까치”로 바뀌었다고도 합니다. 음력 22일 조금을 다도해 지방에서는 “아치조금”이라 하지만 경기만 지방에서는 “까치조금”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그믐 전날, 어린이 수십 명을 모아서 붉은 옷과 두건을 씌워 궁중에 들여보내면 그믐날 새벽에 관상감에서 북과 피리를 갖추고 방상씨(方相氏, 탈을 쓰고 잡귀를 쫓는 사람)와 함께 쫓아내는 놀이 곧 <나례(儺禮), 나희(儺戱)>를 했습니다. 또 그믐날 이른 새벽에 처용(處容), 각귀(角鬼), 수성노인(壽星老人), 닭, 호랑이 등과 같은 그림을 궁궐문과 집 문에 붙여, 잡귀를 쫓는다고 하는데, 이것을 문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7회 벽파전국 국악제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은 최은서 교사와의 대담내용을 일부 소개하였다. 현재 서울《한성여자중학교》에서 과학을 지도하고 있는 현직 교사로, 20여 년 전부터 풍물굿, 사물, 판소리, 경기민요, 서도민요 등을 틈틈이 배워 왔으며 현재는 이건자, 김경배, 유지숙, 조영숙, 명창 등에게 소리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서도지방의 긴소리, 초한가 ‘楚漢歌’를 불러 벽파 제전의 대상에 올랐는데, 서도지방이란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의 소리는 수심가조로 엮어진 소리가 대부분이다.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서도소리의 범주에도 여러 종류의 노래가 있다. 대표적인 장르로는 앉아서 긴 호흡으로 부르는 좌창(坐唱)과 시창이 있고, 여러 명이 서서 부르는 선소리 곧 입창(立唱)이 있는가 하면, 각 지방의 특징을 살리고 있는 다양한 통속민요, 그리고 이은관을 떠올리는 소리극 형태의 ‘배뱅이굿’ 등도 있다. 이 가운데 좌창의 대표적인 소리가 ‘초한가’, ‘공명가’, ‘배따라기’, ‘영변가’. ‘제전’ 등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인 ‘대한(大寒)’이다. 소한이 지나 대한이 한 해 가운데 가장 춥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 화북지방의 기준이어서 우리나라와 똑같지는 않고 오히려 소한 때가 더 추울 때가 많아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대한 다음에는 입춘이 기다리고 있기에 대한은 겨울을 매듭짓는 날로 보아 대한 기간의 마지막 날 곧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인 섣달그믐날로 여겼다. 그래서 이날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고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으로, 이날부터 새해로 보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이사하는 것은 물론 부엌ㆍ문ㆍ뒷간, 외양간 고치기, 집 뜯어고치기, 울타리ㆍ돌담고치기, 나무 베기, 묘소 고쳐 쌓기 등은 언제나 ‘신구간(新舊間)’에 한다. 신구간은 대한 뒤 5일에서 입춘 전 3일 사이를 말하는 것인데 이때 모든 신들이 염라대왕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기 위해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여도 탈이 없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000쪽에 다다르는 벽파 이창배 저 《한국가창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경서도 소리를 비롯하여 판소리, 단가(短歌), 시창(詩唱), 송서(誦書), 불가(佛歌), 각 도(道)의 전통 민요와 신민요 등을 망라하고 있다는 이야기, 성경린ㆍ이혜구ㆍ김기수 등 국악계 원로 등은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자, 교수, 학생들의 필독서’, ‘사설만이 아닌 악보의 첨가,’ 등으로 한국 경서도창의 대표적인 문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선생의 아호를 걸고 열린 바 있는 제7회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은 최은서와의 대담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수상자는 서도의 긴소리 초한가<楚漢歌>를 불러 대상을 차지했는데, 그는 현직 중학교 교사여서 더더욱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이미 20여 년 전, 교사가 되면서부터 풍물굿이나 사물, 판소리, 경기민요, 서도 민요 등을 틈틈이 배워 온 실력자로 서울 <한성여자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다. 그가 풍물굿을 배우고, 판소리를 접하다가 경서도 소리에 심취하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앞에서 벽파 선생은 경서도 민요를 소리로 지켜온 명창, 소리꾼으로는 흔치 않은 학자(學者), 시대를 앞서가는 국악교육자, 무엇보다도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존경을 받아 온 대 사범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있어 선생은 역사에 눈을 뜨게 해 준 분이었다. 선생은 민요시간에도 사설 중에 역사적 인물, 지역 이름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실감이 나게 풀어내 마치 역사 공부 이상의 수업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벽파 이창배의 역저 《한국가창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벽파 선생은 예전부터 불려 내려온 민요들을 정리하여 《가요집성》을 펴냈고, 이를 수차례에 걸쳐 《증보 가요집성》을 낸 바 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보완, 증보하여 1976년 2월, 경서도창의 교본, 《한국가창대계》를 완성한 것이다. 이 책을 펴내게 된 배경을 보면 국악 중에서도, 성악 분야에 있어서 난해한 가사가 많아 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홍인(弘人)문화사>의 획기적인 시도로 성악곡 전반에 걸쳐 해설과 아울러 난삽한 어휘를 일일이 주해를 붙이고, 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으로 한겨울 추위 가운데 혹독하기로 소문난 날이다. 소한 무렵은 정초한파(正初寒波)라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때인데, 이름으로만 봐서는 작은 추위라는 뜻이지만 실제 보름 뒤에 오는 대한보다 더 추울 때가 많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같은 속담이 있을 정도다. 엊그제 동지를 지낸 우리는 엄동설한을 견뎌야 한다. 지금이야 난방도 잘되는 집과 오리털 점퍼, 발열내의도 있지만, 예전엔 문풍지가 사납게 우는 방에서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엄동설한을 견뎠을까? 먼저 동지부터 입춘까지 물리적인 난방이 어려운 대신 한 가닥 꿈을 꾸면서 구구소한도를 그려나갔다.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서 구구(九九)란 9×9=81, 곧 여든한 개의 매화 꽃송이로 소한(消寒) 곧 추위를 잊어서 삭여 내는 걸 말한다. 동짓날 창호지에 하얀 매화꽃 81송이를 그려 벽에 미리 붙여 놓고 매일 하루에 한 송이씩 차례대로 빨갛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앞에서 벽파는 <청구고전성악학원>의 설립과 운영, 선소리 산타령의 예능보유자 인정, 《가요집성》, 《한국가창대계》의 출간 등 공연이나 방송활동 외에도 교육과 저술 등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10여 년 전 ‘벽파학술대회’에서 나는 벽파야말로 “경서도 민요를 소리로 지켜온 명창”이며 소리꾼으로서는 흔치 않은 학자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명창이며 학자가 전부는 아니었다. 벽파 선생이야말로 민요의 중요성을 강조한 진정한 국악교육자였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1955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두가 힘겨운 재건운동을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서울 종로3가에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세우고, 일반인과 정규 수강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국악고교>와 <국악예술학교>를 비롯하여, 국악 전문가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에게 좌창이나 입창, 일반 민요 등 경서도 소리를 지도하면서 이 분야의 확산 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 결과, 2021년 현재 경서도 민요와 관련한 국가와 지방의 예능보유자나 전승교육사 대부분은 그의 직간접 제자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7회 벽파 전국국악경연대회 관련 이야기로 <벽파(碧波)>라는 이름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벽파란 경서도 명창 이창배 선생의 아호(雅號)라는 점, 1916년 서울 성동구 출생이며, 원범산과 최경식에게 잡가와 가사, 이명길, 탁복만에게 산타령을 배워서 오늘에 이어주었다는 점, 해방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경서도 소리 공부를 하였고, 1955년에는 종로 3가에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세워 경서도 입창, 잡가, 속요들을 중심으로 가르쳤는데, 당시 전문인, 비전문인 등이 모두 이곳에서 그의 지도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1960년대, 선소리 산타령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벽파는 김순태, 김태봉, 정득만, 유개동 등과 함께 이 종목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그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서울음대 이혜구 교수, 국립국악원장 성경린 등과 함께 《국악대전집》과 《민요삼천리》를 펴냈다. 또한 1976년까지 《가요집성》을 7차례 증보하여 경서도 소리의 전범(典範), 《한국가창대계》를 출간하였다. 이것은 경서도 소리를 위해 매우 유용한 저서로 지금까지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은 임인년 호랑이띠 해를 맞이해 2021년 12월 22일(수)부터 2022년 3월 1일(화)까지 기획전시실 2에서 《호랑이 나라》 특별전을 연다. 이번 특별전은 호랑이에 관한 상징과 문화상을 조명하는 자리로, 오랫동안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 동물로 자리매김한 호랑이에 얽힌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조선 사람들은 반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 방대한 호랑이 흔적 약 120년 전에 출간된 여행기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1897)에서 저자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은 “조선 사람들은 반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라고 하며, 조선에는 많은 수의 호랑이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호랑이와 관련해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1,000건 이상의 설화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700건 이상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구술과 기록으로 대표되는 두 문헌에 나타난 방대한 호랑이 흔적은 오랫동안 호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黃眞伊)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 동지, 해가 부활하는 날 ‘동지(冬至)’는 24절기의 스물두째이며 명절로 지내기도 했던 날이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곧 ‘작은설’이라 하였는데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른 다음 차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옛사람들은 이날을 해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잔치를 벌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그래서 동지를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첨치(冬至添齒)’라 하여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고 생각했다.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불렀다. 동지팥죽, 귀신 쫓고 더불어 살고 이날 가장 흔한 풍속으로는 팥죽을 쑤어 먹는 일이다. 팥죽에는 찹쌀로 새알 모양의 단자(團子) 곧 ‘새알심’을 만들어 죽에 넣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