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글로써 선생님을 만나 뵙습니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연락할 수 있는 21세기에서 장문의 편지를 쓴다는 것은 너무나 어색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만나고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써보게 됩니다. 제 소개가 많이 늦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청년 김성찬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직접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얼마전 8월 15일 광복절을 얼마 앞두고 우연히 뉴스를 보았습니다. 바로 선생님에 대한 뉴스였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핵심 인사인 선생님의 생가가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곧장 선생님의 생가를 직접 다녀왔습니다. 선생님 생가가 위치한 함평군 신광면 구봉마을에는 선생님을 모셔놓은 사당과 기념관 그리고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청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건물이 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번 제73돌 광복절을 맞아 98년 전 배화여학교(현, 배화여자고등학교)에 다니던 이 학교 6명의 소녀들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기쁩니다. 배화여학교의 독립운동은 3.1만세운동 1주년 때인 1920년 3월 1일 일어났습니다. 당시 배화여학교에는 독립정신이 투철하신 남궁 억(1863-1939, 1977, 독립장 추서), 김응집(1897-1937, 2008, 건국포장 추서), 차미리사(1880-1955, 2002, 애족장 추서)와 같은 민족의식이 강한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배화여자고등학교 오세훈 교장의 이야기다. 오세훈 교장은 지난 9월 12일 수요일 낮 3시, 미리 약속하고 찾아간 기자를 만세운동 자료실로 안내했다. 배화여고 만세운동 자료실에는 벽면 가득히 만세운동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유리 진열대 속에는 졸업장 등 당시 학생들의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번 8.15 광복절에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6명의 배화여학교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는 김경화(金敬和), 박양순(朴良順), 성혜자(成惠子), 소은명(邵恩明), 안옥자(安玉子), 안희경(安喜敬) 지사다. 배화여학교의 만세운동은 1919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머님(곽영선 지사)은 여장부셨습니다. 어머님은 숭의학교 시절 만 열여섯살 나이에 만세운동에 참여하신 그 정신을 평생 지니고 사셨지만 딸들에게는 크게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평생 아버님과 함께 이웃을 챙기고 베푸는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님이 의사였지만 돌아가셨을 때는 무료 진료하신 외상 장부 40권만 남기고 돌아가셨을 정도였으니까요. ” 이는 곽영선(1902.3.1.~1980.4.8.)지자의 따님인 장금실(80살) 여사의 말이다. 올해 8.15 광복절을 맞아 국가보훈처는 25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새롭게 독립유공자로 선정했으며 곽영선 지사(애족장, 추서)는 그 가운데 한 분이다. 기자는 어제(20일, 목요일) 낮 2시 쯤 경기도 광주에 살고 있는 곽영선 지사의 따님인 장금실 여사를 만났다. 약속 시간에 맞춰 찾아간 장금실 여사 댁은 창문 너머로 지리산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숲이 가득한 조용한 아파트였다. 이곳에 미리 와서 기다리던 동생 장연실(76살)여사와 셋이서 마주앉은 기자는 99년 전 어머니 곽영선 지사의 숭의학교 시절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1980년입니다. 아버지가 그 1년 뒤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 일요일(16일) 오후 2시, 생존 애국지사인 오희옥 지사의 병문안을 가던 날은 가을비가 추적거리고 내렸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병원 안은 약간의 습기로 후텁지근한 느낌이 들었다. 미리 방문 약속을 한 덕에 김흥태 씨(오희옥 지사 아드님)는 방문시간에 맞춰 어머님을 휠체어에 태우고 재활병동 3층 로비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달여 만(7월 14일에 뵘)에 뵙는 오희옥 지사는 지난번에 뵙는 것보다는 혈색이 다소 좋아 보였다. 거기에 머리도 예쁘게 다듬어서 인지 영양공급을 하느라 코에 꼽고 있는 튜브만 없다면 여느 환자의 모습과 다름없어 보였다. “아침부터 어머니가 이 선생님을 기다리셨습니다.” 오희옥 지사 아드님은 기자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희옥 지사의 휠체어를 밀어 병원 밖이 제법보이는 2층 로비로 창가로 갔다. 창밖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고 신록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가을 채비를 차리는 듯 노르스름한 모습이었다. 오희옥 지사는 꽃피는 봄날, 3월 17일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한 이래 6달째 서울중앙보훈병원 (강동구 진황도로 61길 53) 재활병동에서 치료 요양 중이다. 봄, 여름, 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는 그 집 임청각에 들어서면 ‘음수사원(飮水思源)’ 곧 ‘물을 마실 때 그 우물을 판 사람의 공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오백여년 전 처음으로 임청각을 지었던 분들, 임청각에서 일제의 마수를 미리 알고 국운을 염려하여 가문의 명예보다 나라의 명예를 되찾고자 신주를 땅에 묻고 만주로 떠났던 분들, 끓어오르는 피를 조국 독립에 오롯이 바쳤던 열 분의 걸출한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임청각은 그래서 그냥 ‘고택 답사’처럼 둘러봐서는 안되는 집이기도 하다. 어제(14일, 금),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경북 안동의 임청각(보물 제182호)에 다녀왔다. 함께한 이들은 이름이 좀 긴,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기억기념분과 위원(위원장 윤경로)들과 기획단원 등을 포함하여 20여명이었다. 이날 답사는 당일 코스로 목적은‘기억기념분야 주요사업 추진현황 청취 및 현장시찰’이었으며 임청각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을 둘러보는 다소 빠듯한 일정이었다. 임청각 방문은 이번 제73주년 8.15광복절에 새로 서훈을 받은 26명의 여성독립운동가 가운데 한 분인 허은(1907-199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위원장 이종찬)는 9월 13일(목)부터 11월 28일(수)까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건축설계 공모를 실시한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한 공간으로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인근 옛 서대문구의회 청사 부지에 세워질 예정이다. 이번 설계공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가진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내고, 임시정부 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집․보존․연구․전시하며 체험과 교육의 장이 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한 것이다. 공개경쟁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설계공모에는 국내 건축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공동 응모 시에는 공동 응모자 중 1인을 응모 대표자로 하여 등록해야 한다. 건축설계 공모 일정은 참가자 등록(9.13~9.19)을 시작으로 현장 설명회(9.20), 작품 접수(11.28) 후 작품심사(12.5)를 거쳐 당선작(12.6)이 발표될 예정이며, 공모 일정 등 기타 자세한 사항은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최용덕 (崔用德, 1898. 9. 19.~1969. 8. 15.) 선생을 2018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고 밝혔다. 1898년 9월 19일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상을 익혔고, 1916년 원세개가 설립한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단기서 군의 제2사단에서 복무했다. 이러한 경험은 선생의 항일무장투쟁에 큰 자산이 된다. 1919년 중국에서 3ㆍ1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선생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선생은 다수의 한인독립운동가들과 유학생들이 거주하던 중국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청년단 단원 모집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1921년 4월 이후 의열단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선생은 단장 김원봉과 함께 1922년 의열단의 국내거사를 준비하여 김상옥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를 지원했다. 이후 북경에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하여 1926월 10월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에 이바지했다. 독립운동에 참여함과 동시에 선생은 중국 국민혁명군에서 복무했으며, 중화민국 공군 창설에 참여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보훈정신을 계승하고 ‘따뜻한 보훈’확산을 위한 2018년도 보훈문화상 공모계획을 밝혔다. 보훈문화상은 2000년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19회째로,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 민주유공자, 유엔참전용사 등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하신 분들을 예우하고 그분들의 보훈정신을 기리는 사업을 실시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보훈문화상은 개인, 단체(예우증진, 기념홍보, 교육문화), 지방자치단체 등 5개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며, 수상자에게는 국가보훈처장 상패와 시상금 각 1,000만 원이 수여된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보훈문화상 시상을 계기로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사업을 실시한 개인이나 단체의 업적을 널리 알려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보훈정신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보훈문화상의 접수기간은 9월 3일부터 10월 19일까지이며, 공식 누리집(http://www.보훈문화상.kr)에서 양식을 내려 받아 온라인으로 접수 또는 운영사무국으로 우편접수 할 수 있으며 11월 중에 수상자를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문의 : 보훈문화상 사무
[우리문화신문=이윤옥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1949년 6월 26일.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아침에 라디오를 트는 순간, 아 ~아 ~ 하늘도 땅도 우는 소리 바다조차 우는 소리 임이여 듣습니까? 임이여 듣습니까? 임이 계시오매 든든한 양 믿었더니 두 겨레 갈라진 땅 이대로 두시고서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한 남자가 울부짖으며 시를 읊었다. 짧은 시지만 길게 기일게 흐느끼며 시를 읊어서 그 울림이 광활한 벌판에서 폭풍우를 몰고 오는 우레 소리처럼 강하고 장엄하게 들려 왔다. 딱 한번 들은 그 시는 내 머리 속에 각인되었고, 내 가슴속에 들어와 촛불처럼 나를 밝힌다. 그 시는 백범 김구 선생이 젊은 군인 안 두희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지던 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을 때에 라디오를 통해 들은 시다. 퇴근해 돌아오신 아버지께서도 침통한 표정을 지으시고, "어렵게 독립되어 서로 합심해 나라를 지켜야 할 이때에 이런 변고가 생기다니?" 하시며 몹시 괴로워 하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최용덕 [1898~1969] 지사는 서울 출신으로 일찍이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 입대하였다. 1922년 이후 1940년까지 중국 공군에서 교관, 수상비행대장(水上飛行隊長) 참모장, 공군기지사령관 등을 역임하였다. 1922년 6월에는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참여하여, 천진에서 조선무산자동맹회장(朝鮮無産者同盟會長) 김 한과 의열활동을 위한 폭탄 확보와 투척 계획 등을 협의하여 김상옥(金相玉) 의사를 지원하는 등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이후 북경과 안동 사이를 오가며 폭탄운반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32년 4월 조선혁명당이 창당되자 중앙위원에 선출되었으며, 대일전선통일동맹(對日戰線統一同盟) 조직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부 총무처장에 임명되었으며, 1943년에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중앙감찰위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에 근무하면서 항일투쟁을 지휘하였으며, 1945년에는 광복군 참장(參將)으로서 총사령부 참모처장으로 복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공적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