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병약한 몸으로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약한 신의경 지사님께 ! “어머니! 지금 우리는 세계열강에 독립을 호소하고 나라를 찾을 때입니다. 국민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서야 합니다.” 이는 신의경 지사님께서 어머니 신마리아 여사에게 건넨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신의경 지사님이 일제 경찰에 잡혀가기 일주일 전, 정신여고 교감이던 어머님께서는 이미 그 조짐을 눈치 채고 따님인 지사님께 각별히 몸조심하라고 하셨다지요? 세상 그 어느 어머니가 자신의 딸이 일제 경찰에 잡혀가길 바랐겠습니까? 당시에 신의경 지사님은 어머니와 함께 정신여학교에 함께 근무하고 계셨기에 더더욱 어머니의 마음은 노심초사였을 것입니다. 지사님이 관여하고 있던 대한애국부인회가 정신여학교 구내에 사무실을 쓰고 있었으니 어머니의 걱정은 남달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의경 지사님! 지사님은 어린 시절 몹시 병약하여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행여 병마에 목숨을 잃을까봐 애지
[우리문화신문= 로스앤젤레스 이윤옥 기자] “외할머니(차인재 지사)는 매우 억척스런 분이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새크라멘토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셨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초인적인 일을 하시며 돈을 버셨지요. 그렇게 번 돈을 조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신 것이지요. 제가 8살 무렵에 한글교실에 다녔는데 이것은 외할머니의 영향이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돌아가셨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차인재(1895-1971, 2018년 애족장)지사의 외손녀딸인 윤패트리셔(한국이름 윤자영, 71살) 씨가 한 말이다. 8월 13일(현지시각) 저녁 7시, 기자는 차인재 지사의 외손녀 윤패트리셔 씨가 살고 있는 헌팅턴비치의 조용한 단독주택을 찾았다. 윤패트리셔 집은 기자가 묵고 있는 LA코리아타운으로부터 승용차로 1시간 여 거리에 있는 헌팅턴비치 주택가로 이곳은 정원을 갖춘 2층짜리 집들이 즐비한 곳으로 조용하고 깔끔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방문 전에 기자는 전화로 미국에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유적과 후손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 왔다고 밝히고 외할머니(차인재 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외할머니 사진은 제가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가보훈처는 8월 15일(수) 제73돌 광복절을 맞아 그동안 외면돼 왔던 독립운동을 지원한 석주 이상룡(李相龍) 선생의 손부 허은(許銀) 여사와 이회영 선생의 아내 이은숙 여사에게 뒤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는 등 177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93명(애국장 31, 애족장 62), 건국포장 26명, 대통령표창 58명으로 포상자 가운데 생존 애국지사는 없으며 여성은 26명이다. 훈ㆍ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3돌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특히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을 개선함으로써 이번 서훈자 177명 가운데 65명(36.7%)을 포상하게 되었다. 개선 사항을 보면 3달로 되어 있던 최소 수형ㆍ옥고기준을 폐지하여 3달이 못되더라도 독립운동으로 인해 옥고를 치른 경우 포상하고, 독립운동 참여 때문에 퇴학을 당한 경우 학생신분을 감안해 포상하며, 실형을 받지 않았더라도 적극적인 독립운동 활동 내용이 분명하면 포상을 전향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을 확대하기 위해 전문가 연구용역을 실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대리 김상준)은 최근, 1990년 당시 애족장에 서훈되었던 이중업(李中業: 1863~1921, 본관: 진성)의 옥중서신을 발견하였다. 이 편지는 가로 18cm, 세로 22cm의 한지에 초서로 쓰였다. 이중업은 애족장에 서훈되었으나 아직까지 수형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옥중생활의 면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편지는 진성이씨 향산고택에서 2002년과 2005년에 걸쳐 기탁된 4,660점의 자료 가운데 2천 3백여 점의 편지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편지에는 일제강점기 형무소에서 외부로 전송되는 편지를 사전 검열한 표식인 ‘검(檢)’자의 붉은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편지의 발신이 아버지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수신인은 당연히 아들이다. 이중업의 아들은 동흠(棟欽)과 종흠(棕欽) 두 형제이나 종흠이 양자를 갔기 때문에 수신인은 동흠으로 추정된다. 이 편지는 1920년 음력 9월 5일 출옥을 앞두고 8월 11일 보낸 것이다. 내용은 옥중에서 악성 종기에 시달리면서 학질까지 겹쳐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사정을 전하면서 9월 5일 출옥 이후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옥중에 사식을 넣어준 하영숙이란 인물에게 고마움
[우리문화신문= 로스앤젤레스 이윤옥 기자] “오, 혜련! 나를 충심으로 사랑하는 혜련, 나를 얼마나 기다립니까? 나는 당신을 보고 싶은 생각이 더욱 더욱 간절하옵니다. 내 얼굴에 주름은 조금씩 늘고 머리에 흰털은 날로 더 많아 집니다. (중간 줄임) 당신은 나를 만남으로 편한 것보다 고(苦)가 많았고 즐거움 보다 설움이 많았는가 합니다. 속히 만날 마음도 간절하고 다시 만나서는 부부의 도를 극진히 해보겠다는 생각도 많습니다만 나의 몸은 이미 우리 국가와 민족에게 바치었으니 이 몸은 민족을 위하여 쓸 수밖에 없는 몸이라 당신에 대한 직분을 마음대로 못하옵니다.” - 1921년 7월 14일. 당신의 남편- 이는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이 중국 상해에서 미국에 남아있는 아내 이혜련(1884-1969) 지사에게 보낸 편지글 가운데 일부다. 어제 12일(현지시각) 찾은 LA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는 미 연방우정국 소속 ‘도산 안창호 우체국(3751 W. 6th St. LA)’ 에서 기자는 문득 남편 안창호 선생이 아내 이혜련 지사에게 보냈던 위 편지글이 떠올랐다. (현재 ‘도산 안창호 우체국’은 한인들의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2004년 6월 연
[우리문화신문= 로스앤젤레스 이윤옥 기자] “증조할머니(임성실 지사)를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만 증조할머니께서 조국독립을 위해 쏟은 헌신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증조할머니에 대한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는 여성독립운동가 임성실 지사의 증손녀인 머샤(Marsha Oh Bilodean, 62살) 씨가 한 말이다. 어제(11일, 현지시각) 오전 11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가든스윗 호텔에서는 미주지역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모이는 ‘제73주년 광복절 및 도산 기념동상제막 17주년 합동 기념식 –파이오니어 소사이티 연례 오찬회-가 있었다. 해마다 갖는 여러 단체의 광복절 기념행사 보다 한발 앞서열린 어제 광복절 행사의 특징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라는 점과 이 행사를 개인(홍명기 회장)이 17년째 자비를 들여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기자는 미국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런 기자가 이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은 순전히 미주지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위한 취재가 계기가 되었다. 미주지역에서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는 임성실, 차보석, 차인재, 공백순, 이성례 지사 등 모두 26명이다.(
[우리문화신문= 로스앤젤레스 이윤옥 기자] 바람 한줄기, 구름 한 점 없는 8월의 태양은 강렬했다. 로스앤젤레스 외곽에 자리한 로즈데일무덤에 도착했을 때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놓인 느낌이었다. 8일(LA 현지시각) 낮 11시, 기자는 한국에서 함께 온양인선 기자와 머나먼 이국땅 야자나무 아래서 잠들어 있는 18명의 독립운동가를 위해 18송이의 흰 국화꽃을 샀다. 이날 독립운동가들이 묻혀있는 로즈데일무덤을 안내한 사람은 민병용 한인박물관장이었다. 한국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전 민병용 관장은 “로즈데일무덤에 잠들어 있는 미주 독립유공자 14명” 의 이름과 사진이 들어있는 전단 등 많은 자료를 손수 챙겨 보내오는 열의를 보였다. 로즈데일무덤을 참배하기에 앞서 기자 일행은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민병용 관장의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 이번 미국 방문 목적은 여성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길로 민병용 관장은 미주지역에서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26명의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자료는 물론 LA지역에 눈이 어두운 기자를 위해 이날 손수 차를 운전하여 로즈데일무덤을 안내해 주었다. “로즈데일무덤에 한인들이 묻
[우리문화신문= 로스앤젤레스 이윤옥 기자] “대한인국민회는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1번지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입니다. 그러한 중요한 자리에 있는 대한인국민회지만 그간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년 전 광복절을 앞두고 고국의 모 방송프로그램인 ‘무한도전’ 이 다녀간 뒤 방문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이는 어제(8일, 이하 현지시간) 방문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대한인국민회기념관에서 만난 배국희 이사장이 한 이야기다. 배국희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이사장은 무더위에 찾아간 고국의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그렇게 운을 떼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는 유모차를 끌고 온 아기엄마가 전시관을 찬찬히 둘러보고는 선열들의 독립정신에 자부심을 느끼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고 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우리 재미동포들의 배경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기자는 미주지역에서 활약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8일부터 17일까지 우리문화신문 양인선 기자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여 첫 번째로 제퍼슨거리에 있는 대한인국민회를 찾았다. 아침저녁에는 약간 선선하지만 한낮에는 고국의 무더위와 버금가는 날씨 속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교헌 [1867~1923] 선생은 1867년 경기도 수원군 구포리에서 부친 김창희와 모친 풍양조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해인 1885년 정시문과(庭試文科) 병과(丙科)에 급제했다. 1898년부터 독립협회에서 몸담기 시작했다. 독립협회 간부진들이 개혁내각 수립과 의회개설을 요구하다가 구속되자, 독립협회의 대표위원으로 만민공동회 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중계몽에 앞장섰다. 1906년 동래부사에 임명되어 부산으로 내려갔다. 여기서 통감부의 비호 아래 일본인들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경제적 침탈과 만행을 자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민족의식을 자각한 선생은 일본인들의 횡포를 제지하다가 통감부의 압력과 친일파 송병준의 모함을 받고 해직되었다. 1910년 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 당하자 대종교에 입교했다. 1914년 신단실기(神壇實記)와 신단민사(神壇民史)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단군을 중심으로 한 민족서사로서 망국이후 한국 국민들의 애국혼을 고취하였다. 1916년 9월 나철(羅喆)의 뒤를 이어 대종교 2대 교주로 취임했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10월 포교규칙을 발표하고 대종교를 항일독립운동단체로 규정하여 탄압을 가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연일 폭염이 내리쬐는 가운데 어제 (7월 31일) 낮 2시, 도봉구 수유리에 있는 덕성여자대학교(한상권 총장 직무대리, 이하 ‘총장’)를 찾았다. 낮 2시에 만나기로 한 한상권 총장과의 약속을 위해 대학본부 건물에 들어서니 1층 정면 벽면 가득히 덕성학원 설립자인 차미리사(1879~1955) 선생의 커다란 흑백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차미리사 선생의 평소 신념인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살아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라는 글씨가 기자의 가슴을 뛰게 했다. 이날 한상권 총장을 만난 것은 이윤옥 시인이 지은 ‘조선여성을 무지 속에 해방한 차미리사 –덕성은 조선 여자교육의 요람-’이라는 시를 대학본부 건물에 걸게 된 기념으로 초대차 방문한 길이었다. 이윤옥 시인의 시는 대학본부 건물 2층 입구에 걸려있었으며 총장실로 올라가는 2층 계단에는 학생들이 덕성학원의 설립자이자, 여성독립운동가인 차미리사 선생을 흠모하고 기리는 다양한 글귀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100년의 역사, 자랑스러운 덕성여대 우리가 지킬거야” “100년의 덕성, 우리는 강하다” “지키자. 자랑스러운 덕성여대” “차미리사의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