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본인 괴롭힌 한국인', 이 말에 삶이 바뀌었다 [대담] 독립운동가 오정화 애국지사 손녀, 아그네스씨의 '신 독립운동 이야기' 12.07.06 18:23 ㅣ최종 업데이트 12.07.06 18:23 이윤옥 (koya26) 아그네스안, 요고이야기, 신독립군 ▲ 미국에서 일본의 역사왜곡 바로잡기에 앞장서고 있는 독립운동가 오정화 애국지사의 손녀 한인 3세 아그네스씨. ⓒ 이윤옥 아그네스 안 지난3일 화요일 오전 11시 아그네스씨를 만난 것은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였다. 까만 원피스에 초록빛 스카프가 잘 어울리는 아그네스씨는 단발머리에 아담한 체구의 밝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우리였지만 그녀는 한복 차림의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방한 중인 아그네스씨는 미국 보스턴에서 외과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가 건넨 명함에는 'Dr. Agnes Rhee Ahn' 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인 교포 3세인 아그네스씨를 알게 된 것은 여성독립운동가 오정화(1899.1.25~1974. 11.1) 애국지사 때문이었다. 오정화 애국지사는 아그네스씨의 할머니로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유관순 열사와 함께
개봉된다면 가족들과 한번 가서 보셔도 좋을 영화입니다.(7월12일개봉) 남을 이해하고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삶의 가장 큰 중심에 둘 일이라고 봅니다. 바쁠수록.................. 아래 글은 인터넷신문 대자보 2012년 7월 2일자 기고문입니다. -------------------------------------------------------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을 아십니까? [시사회] 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의 삶을 그린 영화 “백자의 사람” 이윤옥 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浅川巧, 1891.1.15-1931.4.2)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농상공부산림과(朝鮮総督府農商工部山林課)에 직원으로 고용되어 24살 때인 1914년 5월 경성에 첫발을 디딘 이래 급성폐렴으로 40살의 나이로 숨지기까지 16년간 조선에서 살다간 일본인이다. 그 조선 사랑의 삶을 다룬 영화 “백자의 사람”이 오는 7월 12일 개봉된다. ▲ 영화 백자의 사람 전단(왼쪽), 아사카와다쿠미의 생전 모습 날개(주) 아사카와다쿠미가 평범한 임업시험소 직원으로 살다 갔다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영화나 소설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곰의 습격 때문에 불안한 일본 6월 25일 오전 11시 50분쯤 야마가타현(山形縣)의 한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곰이 나타나 소동이 빚어졌다는 카호쿠신보(河北新報)의 기사가 눈에 띈다. 마침 운동장에는 1학년생 14명과 담임교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곰의 출현을 보고 놀라 인근 농협으로 피신을 했다고 한다. 출동한 경찰에 따르면 곰의 크기는 120센티 정도인데 이 곰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현관 유리창에 몸을 부딪쳤다가 문이 잠겨있자 근처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부수는 등 10여 분 난동을 부리다가 인근 산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이러한 곰의 출몰 기사는 일본에서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한다. 그만큼 곰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곰의 습격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을 말하라면 아마도 1915년 12월 9일에서 14일에 걸쳐 홋카이도에서 일어난 곰 습격 사건일 것이다. 이날 덩치 큰 불곰(ヒグマ, 히구마)이 민가를 덮쳐 당시 개척민으로 홋카이도에 갔던 7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어 일본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이 사건을 소재로 요시무라아키라(1927-2006) 씨는 소설 《비람》을 써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아마도 홋카이도의 곰 습
일본인은 왜 한국 김을 좋아하나? 일본사람도 김을 먹는다. 그러나 한국처럼 고소한 참기름을 발라 구워 먹진 않는다. 윤기가 반질반질한 햇김에 갓 짠 참기름(예전에는 들기름을 많이 썼지만)을 골고루 바르고 맛소금을 살짝 뿌려 석쇠에 얹어 가마솥에 불 땐 아궁이 앉아 살짝쿵 살짝쿵 구워내면 이것이야말로 밥도둑이다. 그 고소한 향내가 부엌을 넘어 마당을 쓸던 할아버지 코를 자극하여 “흠흠, 고놈 맛나겠구나”하던 기억이 새롭다. 고마아부라(胡麻油、ごまあぶら)는 우리말로 참기름이다. 이 고소한 참기름을 일본에서는 음식에 거의 쓰지 않는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참기름이 들어가는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기름이 들어가는 한국 음식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김구이 말고도 참기름을 쓰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은 나물이다. 날마다 밥상에 오르는 콩나물부터,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숙주, 비듬나물, 냉이, 달래, 씀바귀, 깻잎 무침 등 한국인은 들과 밭 또는 산에서 나는 식물은 못 먹는 것을 빼고는 거의 다 나물로 무쳐 먹을 정도로 나물을 좋아한다. 이러한 나물은 살짝 데쳐낸 뒤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같은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치면
무사시대의 유명한 세 명의 장수를 들라 한다면 단연코 오다노부나가, 도요토미히데요시, 도쿠가와이에야스를 들 수 있다.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죽여 버려라 - 오다 노부나가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게 만들어라 - 도요토미 히데요시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의 성격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있다.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에 대한 묘사로는 예수회 선교사인 루이스 프로이스의 표현을 빌리는 게 좋을 것 같다. “키가 크며, 마른 체격으로 수염이 적다. 목소리는 꽤 큰 편이며 항상 무예를 좋아해 천하고 상스럽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일은 거의 없으며, 자신 이외의 다이묘 대부분을 경멸하고, 마치 자신의 부하 다루듯 한다. 명목상 법화종을 신앙하는 듯하지만 조물주, 영혼 불멸, 사후 세계 등의 존재는 없다고 단언한다. 사업을 빈틈없이 하는 한편 공명에 온 힘을 기울인다. 사람과 대화할 때 둘러대는 것을 싫어한다.” 오다 노부나가가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실력위주의 인재등용, 상업장려, 사회, 경제기반의 안정” 등을 들기도 한다.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
일본인은 1년에 약 84회 카레를 먹는다 카레 천국 일본!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손쉽게 카레를 사먹을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 사람이 무려 1년에 84회나 카레를 먹는다고 한다. 일본은 카레만 파는 전문 식당도 많고 7~80살 된 노인들도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의 카레 역사가 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반찬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간편함 때문에 즐겨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일본 전국의 12,834개 카레 식당을 소개하고 있으며 카레 조리법(레시피)을 소개하는 사진이 2,440,000 건에 이를 만큼 일본인들의 카레 사랑은 가히 폭발적이다. 재미난 것은 ‘카레’라고 하면 인도음식으로 알지만 현지 고유의 언어로 ‘카레’라는 말은 없다고 한다. 대신 드라비다어족이 푸성귀, 고기, 식사, 반찬을 통틀어 말하는 ‘카리(타밀어:kari - 아래 갈무리 참조)’라는 말을 영어로 ‘curry’로 표기한 것을 일본인들 발음에 맞게 ‘카레(kare)'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이름만 카레로 바뀐 것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카레라고 하면 카레라이스라는 하나의 음식으로 알고
“아사쿠사는 옛도시의 분위기를 간직한 유서깊은 절이 있는 도쿄에서 가장 전통적인 거리입니다. 수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아사쿠사간논절(淺草觀音寺)과 아사쿠사신사(淺草神社)는 물론 주변 지역에까지 아사쿠사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사쿠사에서는 에도시대 서민 경제와 오락의 중심이었던 옛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또한 현재 이 시대 서민들의 활기찬 생활 모습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이토쿠(臺東區) 관광과에서는 아사쿠사 일대와 센소지에 대한 한국어판 안내문을 만들어 아사쿠사 일대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아사쿠사 역 근처 여행안내소에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아사쿠사 센소지(628년)는 신도들에게 관세음신앙의 명소이지만 관광객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나카미세(절 입구에 즐비한 상점)를 구경하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가미나리몽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상점가는 다양한 일본 전통인형은 물론이고 직접 구워 파는 전통과자와 모찌(떡) 같은 먹거리와 핸드백을 비롯한 여성들의 소품 액세서리, 옷, 신발, 기모노를 만들 수 있는 옷감 종류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거기에
일명 담징스님의 맷돌로 일컬어지는 맷돌을 보기위해 후쿠오카 관세음사(福岡 觀世音寺)를 찾은 것은 2012년 2월 중순이었다. 후쿠오카는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지만 그날은 오전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려 그곳 주민들은 몇십 년 만의 서설이라며 반기고 있었다. 관세음사는 큐슈지방의 대표적인 고찰로 창건 시기는 686년으로 추정되며 나라의 동대사(東大寺), 관동의 약사사(藥師寺)와 더불어 일본의 ‘삼계단(三戒壇, 계를 주는 단)’이 설치되었던 주요 절이다. 또한, 이곳에는 698년에 주조된 교토 묘심사의 동종(銅鐘)보다 앞선 일본 최고(最古)의 동종과 함께 국보급 불상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담징스님의 맷돌은 단연 돋보이는 유물이다. 절의 주지이자 서남학원대학 문학부교수인 타카쿠라(高倉洋彰) 씨의 《태재부와 관세음(太宰府と觀世音), 1996》에 기록된 내용을 정리하면 “이 맷돌은 610년 고구려에서 온 승려인 담징이 처음 만든 것으로 이것이 그 실물이다. 이 맷돌은 식용의 가루를 가는 용도가 아니라 가람 건립 때 사용되는 적색안료인 ‘주(朱)’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밝히면서 일본의 맷돌 권위자인 미와(三論茂雄)씨의 ‘다자이부 관세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 아오이마츠리, 7월17일 기온마츠리, 10월 2일 지다이마츠리를 꼽는다. 일본열도가 마츠리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교토는 특히 유명한 3대마츠리와 더불어 청수사, 금각사 등 이름난 절과 유적지가 많은 곳이라 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거기다가 인접한 오사카와 나라 지방까지 아울러 셋트로 여행상품을 끼워 팔다 보니 관광사업은 날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천년고도답게 볼거리가 풍부한데다가 반듯하게 정비된 도시는 고전과 현대를 조화시킨 느낌이 들어서인지 전 세계인에게 일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를 꼽으라면 도쿄도 아니고 오사카도 아닌 교토가 첫 번째이다. 그만큼 도시 구성원들이 천년고도에 대한 “경(京)의식”이 강하다. 대표적인 “경과자(京菓子)”라든가 “경요리(京料理)”도 교토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는 고대 한반도와 관련이 있는 하타씨 일족과 관계가 깊은 가모씨(賀茂氏)와 조정(朝廷)의 행사로 당시 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주류는 귀족들이라 귀족 마츠리라고도 불렸으며 한편으로는 가모신사의 마츠리라해서 가모마츠리(賀茂祭)로도 불렸다. 아오이마츠리 유래는 ≪가모신사유래기≫에 따
푸르른 오월 하늘에 색색으로 펄럭이는 모형잉어(비닐 따위로 만든 잉어를 딱히 부를 말이 마땅치 않아 모형잉어라고 부름)들이 눈부시다. 5월이 되면 슬슬 일본의 하늘을 장식할 잉어들이 선보이고, 5월 5일은 그 고이노보리(잉어날리기) 절정의 날이다. 이때쯤 일본을 찾는 사람들은 아파트 베란다나 시골집 마당 장대에 매달린 잉어를 보게 될 것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아예 모형 잉어 축제를 하는 곳도 있다. 일본 가호쿠신보(河北新報) 4월 30일 자 보도에 따르면 미야자키 시로이시(宮城 白石市)에서는 무려 500마리의 잉어를 내달았다고 한다. 이렇게 대규모의 잉어날리기는 올해 7회째로 지난 2년간은 동북지방의 대지진으로 중지했다가 2년 만에 재개한 것이다. 주민들은 지진복구를 기원하는 뜻에서 전국으로부터 모형잉어를 기증 받았는데 개인과 단체로부터 약 600마리의 모형잉어를 받아서 이날 500개를 80미터 철삿줄 8열에 장식했다고 한다. 말이 500마리지 바람에 펄럭이는 잉어들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는 일대 장관이며 이를 보도하려고 전국에서 기자들이 몰려들고 관광객들도 앞다투어 몰려들어 지역경제 살리기에도 한 몫을 톡톡히 한다고 전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