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문의 : 02 -733-5027】 "모든 자유의 적을 쳐부수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또다시 역사를 말살하고 조상을 모욕하는 어리석은 후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자기의 무능과 태만과 비겁으로 말미암아 자손만대에 누를 끼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이 역사적 사명을 깊이 통찰하고 지성일관 그 완수에 용약매진해야 할 줄로 안다" - <사상계> 창간선언 중 지고지순한 영혼의 소유자 장준하 선생님, 당신께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뒤바꾼 잡지 <사상계>를 창간하면서 함께 선언한 선언문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역사를 전공하는 한 대학생 홍순기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에게, 더욱이 제가 존경하던 분께 이렇게 직접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편지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출발하여 사상계 발행인, 국회의원, 민주통일운동가까지. 선생님의 약력은 그야말로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김종진 신임 문화재청장은 19일 낮 11시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보물 제182호 '임청각(臨淸閣)’을 찾아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년) 선생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성 이씨 종택인 임청각의 복원ㆍ정비계획 추진방향을 권영세 안동시장과 협의했으며, 석주 이상룡선생의 종손 이창수 씨 등을 만나 복원관련 의견을 들었다. 우리 신문은 일제는 지난 2013년 5월 29일 “일제는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항일투사의 집 임청각 없애려 했지만 여론이 좋지 않자 집 몇 채를 허물고 마당으로 철길을 내버렸다. 그 철도를 이제 서쪽으로 옮기고 임청각을 제대로 복원한는 계획이다.”라고 보도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흔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 난 그 모습 그대로”라면서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후 임청각 복원ㆍ정비는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문화재청은 안동 임청각 앞마당을 관통하는 중앙선 철도가 철거된 이후(2020년까지/국토교통부) 안동 임청각 복원ㆍ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서울시는 3ㆍ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8월 18일(금) 저녁 7시, ‘광복비행 818: C-47콘서트’를 연다.이 행사는 1945년 8월 18일 광복군 정진대원들이 당시 경성비행장(여의도공항)에 착륙했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여는 행사로 여의도공원내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 비행기 전시관 앞에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이날 행사는 광복비행 818 주제에 맞춰 대한민국 공군 의장대의 기수제식과 군악대의 항일음악 공연으로 시작한다. 공군 의장대의 기수제식은 시민들에게 공군의 기상과 품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며, 공군 군악대 역시 독립군과 광복군이 부르던 신독립군가, 용진가, 최후의 결전 등 항일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군대가 항일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음악예술로 표현한다. 이어지는 시민 콘서트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독립군가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편곡하여 다양한 버전으로 소개하고, 독립유공자 후손 등이 참여하는 역사 토크쇼를 통해 독립군의 역사를 현 세대와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유투브와 페이스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민 음악인들(서울용문고등학교 밴드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제72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된다”라고 강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기념식에서 또 하나 뭉클한 장면이 있었다. 생존해 계신 여성독립운동가 세분 가운데 한분이신 오희옥 애국지사가 스코트랜드 민요 올드랭사인 곡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옛날 애국가를 부른 것이다. 오희옥 애국지사는 중간에 숨이 찬듯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시절을 회상하는듯 끝까지 불렀다. 오희옥 애국지사는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 아버지 오광선 장군, 어머니 정현숙 애국지사, 언니 오희영 애국지사, 형부 신송식 애국지사 등 일가족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4살 때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입대하여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고,독립군을 모으면서 한편으로는연극ㆍ무용등을 통한 독립군들을 위문하는 활동을 한 당당한 독립운동가다.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광주 3ㆍ1운동에 참여한 전남 고흥 출신 박성순(朴聖淳) 등 12인이 한 재야사학자의 노력으로 정부포상을 받았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지난 2009년 대전 국가기록원에서 광주 3ㆍ1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항일운동가 48명의 판결문을 찾아 언론을 통해 공개한 후 정부포상을 청원, 지금까지 12인의 항일운동가가 정부포상과 함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포상을 받은 박성순 정몽석(광주)을 포함 12인은 광주 장날인 1919년 3월 10일 만세운동을 일으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광주지방법원과 대구복심법원(현재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서 징역 4개월까지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건국훈장 애족장 2명 건국포장 2명 대통령표창 8명이다. 지역별로는 광주 3명, 전남 순천 3명, 나주ㆍ장흥ㆍ강진ㆍ고흥, 경남 하동, 평안남도 성천군이 각각 1명이다. ▲건국훈장 애족장: 이달근(징역 1년, 27세 평안남도 성천군 숭인면 창인리ㆍ안마업), 김정수(징역 10월, 21세 전남 장흥군 유치면 학송리ㆍ생도) ▲건국포장: 정몽석(징역 6월, 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6형제는 서간도로 떠나기 전 가산을 정리하고 노비문서를 불태워 노비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자유를 얻은 노비 중 20여 명은 6형제와 함께 서간도로 가고자 하였다. 이렇게 6형제의 가족과 노비를 포함하여 50~60여 명이 서간도로 향했다.” 우당 6형제가 서간도로 가기로 결정한 당시의 상황을 풀어낸 이 말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 <민국의 길, 자유의 길> 전시물의 한 내용이다. 6형제 가운데 어느 한 명도 서간도의 길에서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자유를 준 노비 20여 명까지 동참했다. 아까울 만도 했지만 6형제는 지금 돈으로 600억 원이나 되는 재산을 정리해 미련 없이 서간도로 떠난 것이다. 특히 6형제 가운데 이시영은 순종으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로 품계를 올리는 칙서를 받았지만 서간도로 출발하려는 결심을 흔들지 못한다. 재산이건 벼슬이건 독립운동의 길에 걸림돌이 되는 건 과감히 던져버린 그들이었다.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겠다는 결심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이들은 독립운동사에 지지 않는 별이 되었다.” 그렇다 전시장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민족혼이 담긴 항일음악을 집대성한 자료집이 처음으로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기획하고 작년 12월 세상을 뜬 노동은 전 중앙대 교수가 책임 집필한 《항일음악 330곡집》이 바로 그것이다. 항일음악이란 일제침략을 반대하며 국권회복과 독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로 군가, 혁명가, 투쟁가, 애국가, 계몽가, 망향가, 추도가 같은 여러 형태로 보급됐다. 노동은 교수가 동학농민혁명 시기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국내와 만주 및 중국 관내, 러시아 원동지역, 하와이와 미국 본토, 멕시코 등지에서 불렀던 항일 노래를 총망라하여 정리하였으며 글을 쓰는 데만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국음악연구소의 연구원들도 작업에 힘을 보탰다. 《항일음악 330곡집》에는 그간 잘 알려져 있던 민족주의 계열은 물론 사회주의 계통의 항일운동가들도 포함됐으며, 특히 새로이 발굴한 100여곡도 수록됐다. 채보 복원 등의 방식으로 330곡 전부 악보를 실었으며, 작사 작곡자의 실명 여부, 가사 원문과 출전, 원곡과 출전, 노래의 성격과 유래, 보급지역, 음악적 특성 등에 대한 해설도 덧붙였다. 이 《항일음악 330곡집》은 연대별로 ①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KBS 1TV는 오늘(14일) 밤 11시 40분 독립운동가 이상설 서거 100년을 추모하며 특집 다큐멘터리 '이상설의 길을 걷다'를 방송한다. KBS는 "이상설을 헤이그 특사의 한 사람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는 항일 독립투쟁의 첫길을 연 선구자였다."며 "다큐에서는 100년 전 이상설이 걸었던 광야의 길들을 후손과 함께 되짚어가며 한 거인이 온 생애를 바쳐 위태로운 시대에 던졌던 희망의 메시지를 되새긴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에는 이상설의 유일한 직계 후손인 외손녀 이현원 씨, 그의 손주인 이유진 씨와 이민규 군이 출연한다. 또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로 불린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발렌틴 씨,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었던 홍범도 장군의 손녀 김알라 씨, 조선족 역사학자 이광평 씨가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한다. 다큐에서는 또 이상설이 사실은 간도에 서전서숙을 설립한 교육자이자 수학자였다는 사실도 알 려준다. 이상설이 모든 경비를 대며 무상교육을 한 서전서숙의 정신은 명동학교, 창동학교, 신흥강습소, 한민학교 등으로 이어져 광복을 위한 항일 전사들을 길러냈다. 또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아 헤이그 특사로 나
[우리문화신문= 윤지영 기자] 윤봉길의사가 남긴 유품 가운데 회중시계가 있다. 보물 제568-2호로 지정된 윤의사의 시계는 멈췄지만, 그의 정신은 멈추지 않고 우리 겨레의 시계로 영원히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 윤봉길의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나, 덕산보통학교와 오치서숙에서 공부하였고 19세 때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다. 20세 때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했으며, 22세 때 월진회를 조직, 농촌운동을 정열적으로 전개하였다. 윤봉길의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때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1년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그 뒤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1932년 4월 29일 혼자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던 상해의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일본의 군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군법재판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일본으로 이송되어 1932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 위수 형무소에서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윤봉길의사가 남긴 유품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139번지 충의사에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진천 출신의 민족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 선생(1870∼1917)의 삶이 지상파 다큐멘터리로 재조명된다. 6일 진천군에 따르면 보재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상설의 길, 희망을 깨우다'가 KBS 1TV를 통해 오는 14일 오후 11시 40분에 전국 방송을 통해 시청자 곁으로 찾아간다. 이번에 전파를 타게 될 '이상설의 길, 희망을 깨우다'는 진천군에서 보재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을 겨냥해 야심 차게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프로그램의 내실 있는 제작을 위해 KBS 관계자와 지난 6개월 동안 밀도 있는 협의를 진행했다"며 "이상설 선생의 주 활동 무대였던 중국 러시아 등지의 현장 취재를 통해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안방에 생생히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보재 이상설 선생은 충북 진천 출신으로 일제 식민 통치 초기, 독립운동의 대부 역할을 맡으며 해외 독립운동근거지를 개척한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교육자다.그는 중국 밀산 시에 '한흥동'을 개척했고 신한혁명당을 결성해 거시적인 광복 전략을 세웠던 지략가였다. 또 근대 수학 등 근대학문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이상설 선생은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