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 김숙자 명인은 타계하기 전, 수제자인 최윤희에게 이수증을 주고 그 전승체계를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 이수증(履修證)이란 무형문화재 제도에서 전수생 과정을 마쳤다고 하는 하나의 증명서인데, 수여 제도는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다가 보유자에게 일임하기도 하고, 현재는 다시 문화재청이 시행하고 있다는 이야기, 최윤희는 선생을 잃고, 평소 동경해 오던 인도로 가서 주위와는 소식을 끊고 잠적하였으나 춤꾼이 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법, 특히 <도살풀이춤>을 좋아했는데, 이 춤은 긴 수건을 허공에 뿌리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가는 춤사위가 일품이라는 이야기 등을 지난주에 하였다. 그래서일까, 최윤희는 가는 곳마다 <도살풀이춤>을 추었다. 미국공연을 마친 후에는“ 순백색으로 처절하게 펼쳐지는 살풀이, 그 예술성으로 청중들을 무아의 경지에 빠지게 하다”라는 논평이 신문이나 잡지를 도배하듯 했다. 그렇다. 그가 펼치는 도살풀이 춤사위는 비교적 선이 크고 굵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는 천근(千斤), 만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춤이며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이 땅으로부터 하늘에 닿아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 운영위원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恵美子) 씨로부터 며칠 전 전화가 걸려왔다. 마츠자키 씨는 고려박물관 근황과 함께 현재 전시 중인 ”한센병과 조선인(ハンセン病と朝鮮人) - 차별을 살아내며(差別を生きぬいて) - (이하 한센병과 조선인으로 약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해 여름 도쿄에 갔을 때 ‘한센병(나병) 전시 기획 중’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올 초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감염병으로 전시 준비에도 애를 먹은 모양이다. 마츠자키 씨는 ‘한센병과 조선인’ 전시 기간은 6월 24일부터 12월 27일까지이며 예약제로 관람할 수 있다고하면서 전시장 모습과 자료 등을 사진과 누리편지로 챙겨 보내왔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벌써 두어 번 이상은 한국에 다녀갈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마츠자키 씨는 “일본도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비상 상태”라고 했다. 마츠자키 씨가 보내온 ‘한센병과 조선인’ 자료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왜 고려박물관은 이런 전시회를 기획했는가? 그 답은 다음과 같다.(필자가 일본어를 번역하여 정리한 내용임) “일본은 19세기 후반 이래 식산흥업(殖産興業),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뤄 국제사회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八月南州白露繁 흰 이슬 맺히는 팔월 남쪽 고을 數株殷葉照荒園 몇 그루 감나무에 뜨락이 환히 빛나누나 如看韓子玻瓈盌 한자의 시에 나오는 파리완*을 대하는 듯 似帶滎陽翰墨痕 형양*의 먹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 듯 店舍柴荊翻起色 객점 사립문도 문득 생기 넘치나니 楚鄕橙橘好同論 초나라 귤나무에 비겨도 좋으리라 吾行會過頭流下 두류산 아래로 거쳐서 갈 나의 발길 無限霜林擁石門 단풍 진 감나무 숲 산문(山門)에 끝없이 이어지리 * 파리완(玻瓈盌) : 중국의 유리잔 * 형양 : 형주와 양주, 형주란 징저우 [Jingzhou, 荊州(형주)] 곧 중국 후베이성 남부에 있는 도시고 양주(揚州)는 쟝쑤성[江蘇省] 중부에 있는 도시다. 이는 조선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가운데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谿谷集)》에 나오는 “감나무 숲(柿林)”이라는 시다. 첫 줄에 흰이슬 맺히는 이란 말은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의 가을날을 표현한 말로 이때 음기(陰氣)가 점점 성해지면서 이슬도 흰 색깔로 변한다고 한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네 번째 오는 처서(處暑)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입춤>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입춤>이란 서서 추는 모든 춤의 포괄적 명칭으로 이해해도 된다는 이야기, 즉흥성의 멋과 흥을 위주로 하는 자연적인 곡선의 춤으로 <교방무>, <굿거리 춤>, <수건춤>, <부채춤>, <소고춤> <헛튼춤>, <즉흥무>, <흥춤>, <기본춤>이란 이름으로도 불러왔다는 이야기, 입춤의 명무였던 김숙자의 춤사위는 현재 대전시 예능보유자인 최윤희가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90년, 국가예능보유자가 된 김숙자 명무는 그 이듬해에 병사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을 최윤희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 별안간 저에게 올라오라는 연락을 주셨어요. 저는 무슨 일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선생님 댁으로 달려갔지요. 저에게 선생님은 불분명한 목소리로 무슨 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내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더니 몹시 답답해하시면서 방에 있던 딸, 김운선에게 큰소리로 ‘언니에게 이수증 서류를 설명해 줘라!’라고 말씀하셨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눅눅한 장마철이라 그런지 집안이 몹시 습하다. 가죽가방이나 허리띠에 곰팡이가 피어오르는가 하면 부엌에서 쓰는 대나무 채반에도 곰팡이가 한가득 피었다. 연일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춘 날, 간만에 마을 앞산을 산책했다. 앞산이라고는 했지만 거의 공원 수준인 앞산은 그동안 비 때문에 산책 못 한 사람들이 제법 나왔다. 산길을 걷노라니 예전에 눈에 띄지 않았던 이끼가 나무 밑둥 쪽으로 쫙 깔렸다. 푸르른 모습이 제법 볼만하다. 이끼를 바라다보고 있자니 교토의 서방사(西芳寺, 사이호지)가 떠오른다. 서방사는 이끼가 많다고 해서 아예 이끼절(苔寺, 코케데라)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적절한 표현일지 몰라도 “이끼 하나로 먹고 사는 절”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만큼 서방사의 이끼는 유명하다. 이끼 종류만 무려 120종이라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지금은 이 절을 찾아가기 위해 절차가 필요하다. 이끼 낀 정원을 보기 위해 밀려드는 관광객을 제한하려는 방법으로 왕복엽서에 방문 일자를 써서 절에 신청한 뒤 답장을 받아야 비로소 입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치 초기(1868년)만 해도 서방사는 폐허 상태였다. 명치왕(明治天皇)이 이른바 신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춤사위의 원형과 변형사이에서 무용계를 걱정하던 이매방 명인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전통춤의 원형을 변질시켜 놓고, 문화재 지정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있으니 주무 관청에서는 더욱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 후보자의 선정방식이나 전수조교 지정절차에서도 해당 종목의 보유자 의견은 무시될 수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통보절차에 관한 상의도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최윤희는 2012년, 대전시 무형문화재 <입춤>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고 활동을 하게 된다. <입춤>이란 어떤 춤인가? <입춤>이란 발 디딤, 곧 서서 추는 모든 춤의 포괄적 이름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4발 동물들과 달리, 양발을 땅에 디디고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발 디딤이란 춤 동작의 기본 틀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 동작은 어쩌면 춤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입춤은 특별히 복장을 갖추지 않은 채, 서서 추는 춤, 입으로 구음(口音)을 하면서 추는 모든 춤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충청권에서 추는 입춤으로는 김숙자의 입춤이 최윤희에 의해 널리 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이 8월 5일, 슬슬 눈앞에 9일이 다가왔다. 8월 9일 하면 한국인들은 별 감흥이 없을지 모르나 일본인들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떠올린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한순간에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시민과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다행히 목숨만은 건진 피폭자들에게도 평생 치유될 수 없는 마음과 몸의 상처, 방사선으로 말미암은 건강장해를 남겼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과 고통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바친다. 우리는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의 실상을 나라 안팎에 널리 알리고 후세에 전할 것이며 이러한 역사를 교훈 삼아 핵무기 없는 영원히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할 것이다.” 1996.4. -국립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홍보물- 나가사키에는 두 개의 자료관이 있다. 하나는 일본정부 돈으로 만든 ‘국립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고 다른 하나는 양심 있는 시민들이 만든 ‘오카마사하루 기념관(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 그것이다. 국립 나가사키 자료관은 위 설명처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대해 ‘연합국이 일본 시민의 죄 없는 목숨을 앗아간 흉악한 짓’ 쯤으로 포장해놓고 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최윤희의 국립국악원 도살풀이춤 개인발표회(2004, 2)에 이매방 명인이 특별출연을 해 주었고, 축하의 글까지 보내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 명인에 의하면 김숙자 명무의 도살풀이춤은 크고 무거우며 엄숙하고 강한 민속무용이며, 감동을 주는 예술의 혼(魂)과 맥(脈)이 담긴 최고의 춤이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고, 무형문화재 제도와 관련해서도 공개적으로 날카로운 비평을 서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2004년 2월, 당시 이매방 명인은 최윤희의 도살풀이춤 발표회를 축하하는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었다. “근자의 무용계를 둘러보건대, 전통춤 원형의 변질을 비롯한 일부 인간문화재 지정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의 행태로 인하여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엄연히 <도살풀이춤>의 장단과 춤사위가 있음에도, <살풀이춤>을 도용하여 제멋대로 만들어 추면서 원형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것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관청에서는 오히려 엉뚱하게도 그런 사람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서대문형무소수형자카드)를 살펴보면 ‘국가총동원법위반(國家總動員法違反)’을 위반했다는 죄로 잡혀들어간 사람들이 많다. 강간난(姜干蘭) 지사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황해도 평군 고북면 서오리가 고향인 강간난 지사는 1908년 10월 27일생으로 그가 언제부터 경성부 창신동으로 이주해 와서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강간난 지사는 32살 되던 해인 1942년 7월 9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국가총동원법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히는 몸이 된다. 김귀현 지사도 마찬가지다. 37살 때인 1943년 11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역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강간난, 김귀현 지사를 잡아넣은 ‘국가총동원법’이란 1938년 4월 1일, 일본에서 공포한 법으로 5월 10일 조선에도 적용되었다. 국가총동원법이란 말 그대로 전시(戰時)에 모든 물자ㆍ산업ㆍ인원ㆍ단체ㆍ근로조건ㆍ생산ㆍ유통구조ㆍ출판ㆍ문화ㆍ교육을 통제ㆍ징발ㆍ징용할 수 있게 한 법이다. 국가총동원법을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하면 첫째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통한 내선일체화이며, 둘째가 전시(戰時) 체제의 확립이다. 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최윤희는 1985년, 진주 <개천예술제>에 <도살풀이춤>으로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받았고, 1986년 <전남도립국악단> 창단과 함께 무용부장-상임안무자가 되어 활동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1991년 대전으로 연구소를 옮겼을 때, 100여명이 넘는 문하생들이 모여들었으며 그의 고향, 충남 홍성군에서는 그를 초청하여 군민들에게 전통춤을 지도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05년에는 「홍성군립무용단」을 창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동국대 사회교육원>과 <불교방송국>에 『도살풀이춤』 강좌를 개설하여 10여년 동안 전승과 보급 활동을 해 왔다는 이야기 등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최윤희 발표무대에 이매방 명인이 찬조출연을 해 주어 무대가 더더욱 빛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최윤희로부터 직접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2003년 가을로 기억되는 남쪽 지방의 큰 국악경연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숙박하는 호텔 앞에서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이매방 명인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전의 이매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