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내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가운데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도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습니다. ‘부재의 기억‘은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당시 현장의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그날의 현장에 집중하며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지요. 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 우리는 ‘세월호가 침몰했는데 모두 구조되었다.’라는 뉴스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시간이 채 안 된 오후 1시 30분 무렵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2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생사 불명이라고 발표하면서 ’전원구조‘ 뉴스가 오보임이 밝혀졌지요. 그 뒤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떤 이는 ‘이제 세월호 이야기 좀 그만하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제대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부재의 기억‘ 영화의 소중함이 느껴집니다. 최종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 이승준 감독은 "정말 기쁘다. <부재의 기억>은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1년 전인 1929년 오늘(1월 16일)은 독립운동가 편강렬(片康烈) 의사가 순국한 날입니다. 편강렬 의사는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당하고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16살의 어린 나이에 직접 의병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때 이강년(李康年) 의병장을 찾아가 군사를 모집하는 소모장으로 발탁되었지요. 1908년 3월 각도 의병대장들은 이인영(李麟榮)을 13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였는데 이때 이강년 의병진의 선봉장으로 발탁되어 100여 명의 선발대를 인솔하여 양주에서 일전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군사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퇴하였습니다. 그 뒤 구월산주비단사건(九月山籌備團事件)에 관련되어 해주형무소에서 1년 동안 복역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형무소를 수차례 드나들었으며, 1923년 7월 산해관(山海關)에서 김이대(金履大), 백남준(白南俊) 등과 함께 의성단(義成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었습니다. 의성단은 장춘(長春), 길림(吉林) 등 대도시를 활동무대로 삼아 남만주철도주식회사 파괴, 조선총독과 관동장관 암살, 조선 내 관공서 파괴, 군자금 모집을 주된 활동목표로 삼았지요. 그러다 1924년 7월 24일 의성단에 잠입하여 밀정 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차가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 마른하늘에 비구름 / 조금씩 밀려와 / 쓰디쓴 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 빨간 내 오른쪽 뺨에 / 이제야 / 비가 오네” 이 노래는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영화 ‘기생충’의 주제가 '소주 한잔' 가사입니다. 배우 최우식이 부른 '소주 한잔'은 오스카 주제가상 예비후보로 지명됐는데, 봉준호 감독은 "그 노래를 듣는 것과 안 듣는 것의 여운이 살짝 다르다. 힘든 일을 겪었지만, 뚜벅뚜벅 간다는 느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소주는 영화 ‘기생충’에 주제가가 될 정도로 우리 겨레에겐 친근한 술입니다. 우리나라 문헌으로 술 이야기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고려후기 문신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帝王韻紀) 》의 동명성왕 건국담에 나오는 술에 얽힌 설화가 처음입니다. 그러나 증류주인 안동소주는 신라시대 때부터 그 기원을 잡지요. 증류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였고,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이 전래하였습니다. 하지만 소주는 페르시아에서 발달한 증류법이 원(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부여 씨(백제 왕족)가 망하고 고 씨(고구려 왕족)가 망하자 김 씨(신라 왕족)는 남쪽을 차지했고, 대 씨는 그 북쪽을 차지하고서 이름을 ‘발해’라 했는데, 이것이 남북국이다. 그래서 마땅히 남북국사가 있어야 하는데도 고려가 이를 쓰지 않았으니 잘못이다. 무릇 대 씨는 어떤 사람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은 어떤 땅인가? 바로 고구려 땅이다. 끝끝내 발해사를 쓰지 않아서 토문 이북 지방과 압록강 이서 지방이 누구의 땅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여진을 꾸짖고자 했지만 할 수 없었고, 거란을 혼내려 했지만, 그 근거가 없었다.“ 이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柳得恭)이 그의 책 《발해고(渤海考)》 서문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는 학교 국사시간에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삼국시대 이후 ‘통일신라시대’가 있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통일신라가 있던 시기에 토문 이북 지방과 압록강 이서 지방에 분명히 고구려 사람 대조영(大祚榮)이 698년에 ‘발해(渤海)’라는 나라를 세워 228년 동안 번성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후를 통일신라시대라고 해서는 안 되고 유득공의 말처럼 ‘남북국시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래전 ‘한국의 범종’이라는 이름의 녹음테이프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소리가 녹음돼 있었지만, 그 가운데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을 듣고는 다른 종소리는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덕대왕신종” 종소리는 장중하면서도 맑은소리와 유난히 길면서도 신비스러운 소리를 들려주어 듣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 고고학자 켄멜은 이 종을 일컬어 “한국 제일의 종이 아니라 세계 으뜸 종”이라고 평했습니다. 오직 우리나라 종에만 있는 독창적인 것이 바로 종 윗부분에 있는 음관(音管)과 종구(鐘口) 바로 밑에 파인 명동(鳴洞)이라고 합니다. 음통(音筒) 또는 용통(甬筒)이라고도 하는 음관은 종의 음질(音質)과 음색(音色)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또 명동 곧 울림통은 종을 때렸을 때 정상음이 끝난 뒤 센소리가 사라지고 긴 여운이 남도록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한국종 가운데서도 성덕대왕신종은 방사선으로 투시해서 본 결과 종신 안에는 기포 하나 없이 매끄럽게 주조되었으며, 종신(鐘身)의 모든 부분이 균일한 두께를 하고 있었다고 하지요. 또 어린아이 우는 소리와 비슷한 1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70년 전 오늘(1월 10일)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Dean Gooderham Acheson)은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이란 걸 발표합니다. “애치슨 라인”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방위선 구상인데 미국의 태평양지역 방위선을 알류산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으로 연결되는 선으로 정한 것입니다. 애치슨은 이를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보고하고, 12일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국기자협회에 참석하여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애치슨은 이 발표에서 소련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의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하여 미국의 극동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선으로 정하며, 타이완, 한국, 인도차이나반도와 인도네시아 등은 이 방위선에 포함되지 않고 그들 지역은 국제연합(UN)의 보호에 의존해야 한다고 설명했지요. 이는 당시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타이완이나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인식의 부재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국제적 분쟁이 일어날 때 불필요한 관여를 피하려는 인식이 바탕이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애치슨 라인의 발표 뒤 이 방위선에서 빠진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했는데, 결국, 북한은 미국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해 12월 30일 문화재청은 근대시기 이전의 강수량 측정 기구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보물 제561호 ’금영 측우기‘를 비롯해 조선 시대 측우(測雨) 제도를 계통적으로 증명해주는 2점의 측우대인 보물 제842호 ‘대구 선화당 측우대’와 보물 제844호 ‘창덕궁 측우대’를 국보로 지정 예고하였습니다. 이 유물들은 1442년(세종 24년) 조선에서 농업에 활용하고자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측우대를 만든 이후 그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 ‘금영 측우기’에 대해서는 1911년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Nature)》지(誌)에 처음 소개되었고 이때 세계 유일의 측우기로 보고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이견이 없는 상태라고 하지요. 서양에서 측우기는 1639년 이탈리아 과학자 베네데토 카스텔리(Benedetto Castelli)에 의해 처음 얘기되었으나 만들지 못했고, 이후 영국의 건축가이자 천문학자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에 의해 1662년 최초로 서양식 우량계가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서양에서의 첫 우량계가 만들진 것은 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는 가끔 궁궐이나 절과 같은 전통건축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올라있는 상징물을 봅니다. 이를 마루 끝을 장식하는 기와라는 뜻으로 망새라고 부르며, 망와ㆍ바래기와ㆍ치미(鴟尾)ㆍ취두(鷲頭)라고도 합니다. “치미”라는 말은 용을 잡아 먹고산다는 전설의 새 꼬리 모습이라고도 하며, 올빼미 꼬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지요. 또 치미는 물에서 사는 어룡(魚龍)으로 지붕에 올려놓으면 불을 예방한다고도 하고, 용의 9마리 자식 가운데 멀리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둘째 아들 이문(螭吻)으로 이를 지붕에 얹어 놓으면 불을 막는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밖에 이 망새는 건물의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며, 상서로움을 나타내거나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도 하지요. 이렇게 그 유래가 다양한 망새는 청동ㆍ기와ㆍ돌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는데, 황룡사터에서 출토된 것은 높이 182㎝, 너비가 105㎝인 동양 최대의 대형 치미로 알려졌습니다. 불을 막으려 했다는 이 망새는 경복궁 근정전에 올려진 잡상, 경복궁 앞의 해태, 창덕궁 인정전 앞의 드므와 그 만든 목적이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불타서 복원하고 있는 숭례문 편액이나 문 앞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 남쪽 기슭에는 높은 축대가 있어, 시간을 맡은 인형 하나가 붉은 비단옷 차림으로 산을 등지고 섰으며, 인형 무사 셋은 모두 갑옷 차림인데 하나는 종과 방망이를 잡고서 서쪽을 향해서 동쪽에 섰고, 하나는 북과 부채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가까운 곳에 섰고, 하나는 징과 채쭉을 잡고 동쪽을 향해서 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가까운 곳에 서 있어서, 매양 시간이 되면 시간을 맡은 인형이 종 치는 인형을 돌아보고, 종 치는 인형도 인형을 돌아보면서 종을 치게 되며, 매경(每更)마다 북과 부채를 잡은 인형이 북을 치고, 매점마다 징과 채를 잡은 인형은 징을 치는데, 서로 돌아보는 것은 종 치는 인형과 같으며, 경ㆍ점마다 북 치고 징 치는 수효는 모두 보통 시행하는 법과 같다.” 이는 《세종실록》 세종 20년(1438) 1월 7일 치 기록으로 이날 완성한 흠경각(欽敬閣) 옥루(玉漏)에 대한 설명입니다. 흠경각은 조선시대에 자동 물시계를 설치해서 운영한 경복궁 내부의 전각인데 《세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흠경각은 장영실(蔣英實)이 세운 것이나 그 규모와 제도의 묘함은 모두 임금의 결단에서 나온 것이라도 되어 있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 소한(小寒)입니다. 소한 무렵은 정초한파(正初寒波)라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때지요. 이름으로만 봐서는 작은 추위라는 뜻이지만 실제 보름 뒤에 오는 대한보다 더 추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같은 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약 한 달 동안 혹한(酷寒)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둡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는 문밖 나들이가 어려우므로 땔감과 먹을거리를 집안에 충분히 비치해 두어야 했지요. 이때는 음의 기운이 왕성한 계절로 여름철 뜨거운 땡볕에 양기로 영근 쌀을 먹어, 모자란 양기를 보충합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 겨레는 쌀을 단단하게 굳혀 가래떡으로 만들고 이 가래떡으로 떡국을 해 먹습니다. 바로 양기를 더욱 응축시켜 먹는 슬기로움이지요. 또 겨울철은 단백질을 섭취하기 어려운 계절입니다. 따라서 이때는 콩을 이용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데 콩이 땀을 내주는 성질이 있어 찬 바람을 쐬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