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은근히 친숙하면서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조선, 그러나 보면 볼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신기한 조선.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재밌는 사실도 많고, 이 책의 부제처럼 ‘민초의 삶부터 왕실의 암투까지’ 다양한 결의 역사를 두루 맛볼 수 있는 시기가 조선이다. 《조선 산책》 지은이 신병주 교수는 조선사 전문가로, 역사의 다양한 모습과 그것이 오늘날 지니는 함의를 꾸준히 전달해왔다. 이 책은 2015년 10월부터 <세계일보>에 ‘역사의 창’이라는 이름으로 약 3년 동안 격주로 연재한 칼럼을 시의에 맞게 적절히 재구성한 것이다. 칼럼에 연재한 글이니만큼 각 꼭지가 재미있으면서도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책의 어느 부분을 펴서 읽어도 술술 읽힌다. 이 책의 제목이 ‘산책’인 것에서 알 수 있듯 각 꼭지가 그렇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말랑말랑한 주제가 많다. 그 가운데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꼭지를 발췌해보았다. # 선비의 육아일기, 《양아록》 그렇다. 근엄할 것만 같은 ‘조선 남자’, 선비도 육아일기를 썼다. 16세기 학자 이문건(1494~1567)이 쓴 《양아록》이 바로 그 일기다. 그럼, 누구를 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不二禪蘭(불이선란) 不作蘭畵二十年(부작난화이십년) 난초를 그리지 않은 지 20년이나 偶然寫出性中天(우연사출성중천) 우연히 그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네 閉門覓覓尋尋處(폐문멱멱심심처) 문 닫아걸고 찾고 또 찾은 곳 此是維摩不二禪(차시유마불이선)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이로구나 若有人强要爲口實(약유인강요위구실) 만약 누군가 억지로 설명하라 한다면 又當以毘耶無言謝之(우당이비야무언사지) 당연히 유마거사처럼 말없이 사양하리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자신이 그린 ‘不二禪蘭’이라는 난초 그림의 왼쪽 위 여백에 쓴 글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문인화를 그리면 대개 그림 여백에 화의(畵意, 그림을 그리려는 마음)를 써 놓지요. 추사는 한동안 난(蘭)을 그리지 않다가 20년 만에 어떤 계기가 있어 난초를 그리게 되었나 봅니다. 그림 왼쪽 아래 여백에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시위달준방필, 지가유일, 불가유이 : 애초 달준이를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단지 한 번만 가능하고 두 번은 불가하다)’라고 쓴 것으로 보아, 추사는 달준이를 위해 이 난초 그림을 그렸나 봅니다. 달준은 추사 말년에 추사를 시중들던 시동(侍童)입니다. 불이선란도는 과천의 추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해마다 3월 23일은 '국제 강아지의 날'(National Puppy Day)이다. '국제 강아지의 날'은 버려진 강아지들을 위한 안전한 보호시설, 유기견 입양 등을 권장하며 세계 모든 강아지를 사랑하자는 취지로 지정된 기념일이라고 한다. 언제는 좋아서 데려다 기르다가 언제는 1회용 장난감처럼 함부로 버려지는 강아지들, 아직도 여전히 지구촌에는 이런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버려지는 강아지(개)를 흔히 유기견이라고 한다. ‘국제 강아지 날’에 생각나는 사람이 일본인 친구 이토 노리코다. “윤옥 씨, 백구가 지난 2월 죽었어요.” 어제 국제전화에서 이토 노리코(67) 씨는 그렇게 울먹였다. 길가에 버려진 백구를 데려다 6년간 정성껏 키우던 노리코 씨가 요즘 통 연락이 없었는데 웬일인가 했더니 백구의 죽음으로 한동안 우울증이 왔다는 것이었다. 94살 노모와 단둘이 살면서 버려진 유기견을 5마리나 기르던 노리코 씨는 그간 두 마리를 병으로 저 세상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번에 백구가 죽음으로써 이제 남은 녀석은 두 마리다. 한국어로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누렁개 사랑이는 눈이 안 보이는 녀석이고, ‘짐페’ 라는 녀석은 처음부터 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책도, 글도 많은 시대다. 읽을거리가 넘쳐나고 블로그와 같은 1인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같을 때는 독서도 글쓰기도 참 쉬울 것만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대부분 정보를 영상과 이미지로 흡수하면서, 오히려 읽고 쓰는 활동은 뜸해져 간다. 짧은 글과 이미지, 영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긴 글을 읽어내는 문해력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평가다. 이 책, 다이애나 홍의 《세종처럼 읽고 다산처럼 써라》는 조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다독 군주 세종과 다작 선비 다산의 사례를 통해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의욕을 활활 불타게 하는 책이다. 세종과 다산의 사례를 풍부히 인용하면서도 다른 역사적 인물이나 지은이의 개인적 경험도 함께 녹여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편이다. 세종은 조선 임금 가운데 그 누구보다 독서를 즐겼다. 게다가 즉위하고 처음으로 한 말이 “의논하자.” 일 정도로 토론 또한 즐겼다. 특히 일종의 독서 토론인 경연(經筵)을 워낙 좋아해, 태종이 30회의 경연만 참가한 것에 견주어 세종은 1,898회나 참가했다. 경연은 임금과 신하가 함께 고전을 읽으며 현안을 풀어가는 조선의 독특한 정치 방식이었다. 이 토론에서는 거의 계급장을 떼다시피 한 격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난징 대학살을 자행하고, 조선의 소녀들을 위안부로 끌고 간 것을 보면 일본군이 포로에 대한 제네바 협약인들 제대로 지켰겠습니까? 박태석 변호사는 《일본의 노예》에서 일본군의 포로 학대에 관해서도 쓰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해 말하렵니다. 일본군은 필리핀을 점령한 뒤 1942. 4. 9. 약 8만 명에 이르는 미군과 필리핀 포로들을 루손섬의 마리블레스와 바각에서 바탄의 필라까지 도보로 이동시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합류한 포로들을 북쪽 산페르난도로 행군시킨 뒤, 산페르난도역에서 기차에 싣고 카파스까지 이동합니다. 기차에서 내린 후에는 마지막으로 캠프 오도넬까지 이동시키는데, 포로들이 보두 걸은 거리는 96.6km에서 112km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포로들이 캠프 오도넬까지 이동하는 동안 많은 포로가 죽어 나갔기에, 이를 바탄 죽음의 행진이라고 합니다. 일본군은 행군 도중 포로들에게 음식이나 물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많은 포로가 죽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햇볕 치료는 해주었답니다. 햇볕 치료라고 하니까, ‘그래도 최소한의 치료는 해주었나 보다’라고 생각하시겠지요? 아닙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춘천 강촌의 등선폭포를 거쳐 삼악산으로 오르는 길 산행을 시작하여 10여 분을 올라가 몸이 풀리기 시작할 지점에 양지바른 비탈에 앙증맞게 피어난 꽃이 있습니다. 노루귀가 그것인데요. 노루귀는 여러해살이로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꽃을 피워 올리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양지 식물입니다. 연보랏빛 여섯 개의 꽃잎이 앙증맞게 모여있는 모습이 여간 이쁜 게 아닙니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꽃대에 털이 송송 나 있어 노루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강원도에서 봄에 가장 빨리 피는 꽃으로 노루귀, 얼음새꽃, 생강나무를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도 으뜸이 노루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말이 "인내"라고 하니 겨우내 서러운 추위를 참고 견뎌 아주 이른 봄에 꽃대를 피워올려 우주를 열고 있는 모습이 인내를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봄은 아주 작은 꽃송이로부터 옵니다. 봄에 피는 들꽃은 작고 소박하여 원색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흰색이나 보라색 계열이 많습니다. 크고 화려함보다는 작지만 은은한 향기를 가진 것도 특징이지요. 봄은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봄이 오면 그만큼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늘어난다는 의미겠지요. 아지랑이 넘실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1891-1931)를 아는 한국인들은 많다.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 아사카와 다쿠미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건너와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소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조선의 문화에 애정을 갖게 되는데 특히 백자에 쏟은 그의 사랑은 《백자의 나라》라는 책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식민시기에 조선에 건너온 많은 일본인들이 게걸스럽게 값나가는 고문서와 도자기, 민예품을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는데 견주어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의 것은 조선에 두어야 한다.” 는 지론으로 자기가 모은 조선 민예품은 물론이고 자신의 육신마저 조선땅에 묻히길 바랐으니 그의 ‘조선사랑’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아사카와 다쿠미에게는 노리타카(伯教, 1884-1964) 라는 7살 위의 형이 있는데 형 또한 동생 못지않은 '조선을 사랑한 사람' 이다.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조선에서의 삶은 어떠한가? 다쿠미의 형에 관해서는 《조선의 미를 찾다 :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재조명》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아사카와 노리타카는 동생 다쿠미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와 더불어 조선 전통문화와 미술공예를 연구하고 그 미적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봄이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야트막한 산 아래 생강나무의 꽃눈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고 겨우내 잠들었던 진달래도 두툼한 꽃망울을 살찌우고 있습니다. 어느 꽃이든 피어있는 꽃은 아름답습니다. 사실 꽃은 식물의 생식 기관이지요. 동물은 생식 기관을 감추고 있지만, 식물은 하늘을 향해 온몸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 동물은 유전인자를 후세에 물려줄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움직임으로 인한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감추어둔 것이라면 식물은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야 후손을 남길 수 있기에 겉으로,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식물은 왜 꽃을 피울까요? 그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함이고 후세에 형질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벌 나비를 불러들일 수 있도록 향기나 색, 꿀이나 꽃가루를 쓰는 생존전략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꽃을 보며 예쁘다고 찬사를 보내는 것은 벌도 나비도 아닌 사람입니다. 꽃은 사람을 위하여 봉오리를 피워 올린 것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당신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꽃은 그냥 꽃이고 하나의 사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아름다움이 있으므로 아름답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고 가격이 아주 비싼 상표의 제품.” 국어사전에서 찾은 ‘명품(名品)’의 정의다. 아무래도 요즘 많이 쓰이는 쪽은 후자다. 백화점 문을 열자마자 명품관으로 달려가는 것이 유행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명품은, 그 자체로 뛰어나기도 하지만 ‘쓰면 쓸수록 값어치가 새록새록 느껴지는 물건’에 가깝다. 그냥 휙 보고 지나가기보다, 생활 속에서 곁에 두고 썼을 때 더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이 책, 《생활명품》의 지은이 최웅철은 예(藝)와 맛의 고장 전주에서 종가의 장손으로 우리 문화를 흠뻑 느끼며 자랐다. 한옥에서 한지와 나무 냄새를 맡으며 자랐고 마루와 구들을 놀이터 삼아 놀았다. 전주에서 규모가 큰 한식당을 운영할 정도로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 덕분에 맛있는 우리 먹거리도 많이 맛보았다. 지은이는 그 시절이 자신을 지탱하는 그리움이고, 양분이고, 열정이라고 회고한다. 그래서 지혜롭고 아름다운 전통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한 나머지, 우리 문화의 미감과 매력을 차곡차곡 담은 책 한 권을 펴냈다. 그가 엄선한 한국의 공예와 회화, 건축, 음식을 따라가다 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때는 유럽의 강국이었던 오스트리아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완공되고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핵 없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35㎞ 떨어진 곳에 있는 츠벤텐도르프 원전(Zwentendorf Nuclear Plant)은 1978년 완공된 오스트리아의 첫 원전이다. 핵연료 반응을 조절하는 제어봉 등 여러 주요 시설이 해체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지만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민주주의에서 국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친 역사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자 “값싸고 깨끗한” 원자력 발전이 등장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4~6개의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원자력이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깨끗한 에너지원은 아니었다. 원전에서 대기오염물질은 나오지 않지만 방사능 오염과 안전성 우려가 제기되면서 오스트리아에서 반핵 운동이 일어났다. 여러 도시에서 원전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대와 경찰들 사이의 무력 충돌이 뉴스에 빈번히 보도됐다. 결국 이 문제는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1978년 11월 5일 이루어진 국민투표 결과 불과 0.9%(약 2만 표)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