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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환경윤리, 모든 생명체는 공생해야!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7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나가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법적인 측면에서, 도덕적인 측면에서, 또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개미를 죽이는 일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비난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게 사람과 같은 생존권을 인정하자는 것이 동물보호론자들의 주장이다.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세계동물권리선언이 발표된 것은 1978년 10월 15일이다. 동물권리선언의 제1조는 다음과 같다.

 

제1조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여기에서 동물의 정의와 범위가 문제가 될 것이다. 동물의 정의에 이의 없이 포유류(고양이, 개, 소, 말, 염소 등등)는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돌고래도 포유류이니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닷가재는 어떨까? 개미는? 꿀벌은?

 

질문이 확대되면 복잡해지지만,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가 환경윤리다. 환경윤리는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를 인간 생명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생명체의 생존권을 인정하자는 윤리다. 모든 생명체에 환경윤리를 적용하면 개미를 밟아 죽이는 일은 나쁜 일, 비윤리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논에 농약을 뿌려 간접적으로 꿀벌을 죽게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환경윤리운동 쪽의 주장이다.

 

환경윤리가 20세기 후반에 서양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지만 그러한 용어를 쓰지 않았을 뿐,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저서에서 환경윤리적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은 유학에 배어있는 인간 중심적인 사유에 도전하면서 우주론적 시야에서 보면 인간과 만물은 근원적으로 같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람과 초목(식물)과 금수(동물)는 차별성이나 위계가 있을 수 없고, 인간과 만물이 근본적으로 대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대용의 《의산문답》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실옹(實翁)이 말했다. “내가 너에게 묻겠다. 생물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거늘, 인간ㆍ금수ㆍ초목이 그것이다. 이 셋에 귀천의 등급이 있느냐?”

 

허자(虛子)가 대답했다. “천지간 생물 가운데 오직 인간이 귀합니다. 금수한테는 지혜가 없고, 초목한테는 감각이 없으니까요. 또한 이들에게는 예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금수보다 귀한 존재고, 초목은 금수보다 천한 존재지요.”

 

실옹은 고개를 들어 껄껄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정말 인간이로구나! 오륜(五倫)과 오사(五事)가 인간의 예의라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함께 먹이를 먹는 것은 금수의 예의고, 군락을 지어 가지를 뻗는 것은 초목의 예의다. 인간의 처지에서 물(物)을 보면 인간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물이 귀하고 인간이 천하다. 그러나 하늘의 처지에서 보면 인간과 물은 균등하다.”

 

 

홍대용은 인간이 화락한 삶을 영위하고 금수와 물고기가 온전한 삶을 누리며, 초목과 금석이 각기 자신을 보전할 때 태평한 세상이 된다고 갈파했다. 그의 이런 사상은 모든 생명의 근본은 같다는 데서 기인하는데, 그가 지구를 ‘활물(活物)’이라 하여 살아있는 유기체적인 존재라고 본 것은 20세기 후반에 영국의 러브록이 주장한 가이아 이론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의 《호질》은 허울 좋은 명분을 앞세워 동물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인간 문명에 대한 질타인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네 놈들은 걸핏하면 하늘을 끌어들이지만, 하늘이 명한 바로써 본다면 호랑이든 사람이든 다 같은 존재다. 인(仁)의 견지에서 논하자면 범과 메뚜기, 누에, 개미와 사람이 함께 길러져서 서로 거스르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또 선악을 척도로 삼아 따져 보자면, 벌과 개미의 집, 메뚜기와 누에의 살림을 제멋대로 약탈하는 놈은 천하의 큰 도적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사람들이 동물과 식물을 착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인성이 물성만 못하다는 것이 연암의 결론이다.

 

불교는 삼국시대 이래로 한국인의 자연관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불교에서 승려나 신도가 지켜야 하는 5가지 계명 가운데 첫 번째가 불살생, 곧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불교 용어로서 유정(有情)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데 물론 식물과 동물이 포함된다. 블교에서는 생명체를 모두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채식은 불살생을 소극적으로 실천하는 식사법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절에 가면 공양할 때 반찬은 물론 밥알 하나도 버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으며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발우공양을 실천하고 있다. 더욱이 윤회사상에 따르면 동물과 사람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윤회하면서 서로 변환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본다. 불교는 교리상으로 보면 매우 친환경적인 종교이며, 동식물의 값어치를 인정해 주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박경리 선생은 우리나라 도자기에 생화를 꽂는 꽃병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서양에서는 혼례식과 장례식에서 생화를 흐드러지게 장식한다. 일본 가옥에는 ‘도코노마’라는 것이 있어서 생화나 분재 같은 것을 놓아두고, 꽃꽂이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전 일제강점기 때만 하더라도 꽃꽂이나 분재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혀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꽃도 하나의 소중한 생명체로 보았기 때문에 꽃을 꺾는 일 자체를 꺼리는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 장례에서 화려한 꽃상여에 쓰이는 꽃은 모두 종이꽃이었다. 현재처럼 빈소에서 생화를 바치는 것은 순전히 서양의 풍습을 받아들인 것이다.

 

환경윤리와 관련하여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사상이 동학사상이다. 동학사상은 천도교를 통하여 현재까지 전수되고 있는데, 환경윤리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동학사상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세 가지가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첫째는 천지부모일체설로서 천지는 만물의 부모로서 사람은 마땅히 천지부모에게 효성을 다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해월은 “땅 아끼기를 어머니 살같이 하라”고 하였다. 그는 땅에 침을 뱉는 것은 어머니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둘째는 생명존중사상으로서 해월은 우주만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였다. 모든 사람과 모든 물건은 생명이 하나이요 뿌리가 하나라는 사상이다.

 

셋째는 삼경사상으로서 삼경(三敬)이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을 뜻한다. 경천과 경인은 다른 종교사상에도 있지만, 경물은 물건을 공경하라는 말로써 매우 독특한 사상이다. 물건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물건을 낭비하고 함부로 다루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욕심을 위해 생태계를 파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위기에서 지구를 구하고, 지구생태계의 파괴를 막으며, 사람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사상이 동학사상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온갖 동식물들과 사람이 평화롭게 함께 살자는 훌륭한 사상이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