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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자기 모방 기념품판매 ‘우미이치상회’

<맛있는 일본이야기 657>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서울역사박물관 유물관리과에서는 주요 유물 소개란(https://museum.seoul.go.kr)을 만들어 ‘나무상자에 담긴 일제강점기의 기념품’을 소개하고 있어 독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은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 정부가 내지인(內地人, 일본인)의 자부심을 높이고 제국주의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으로의 여행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선 토산품으로 인식되었던 근대 공예는 여행의 기념품이나 선물로 주목받게 된다. 일본인들이 ‘고려소(高麗燒)’, ‘미시마테(三島手)’라고 불렀던 재현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조선의 독특한 요리기로 소개되었던 ‘신선로’, 그리고 ‘나전칠기’ 등은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특히 정교한 제작 기법과 화려함, 천하제일 비색을 갖춘 조선을 대표하는 고미술품으로 재인식되었던 고려청자와 나전칠기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근대적 기술로 그 아름다움을 재현했다는 측면에서 상류층의 고급 소비품으로 향유되는 한편,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변용, 절충되어 상품으로 대량생산・유통되었다.

 

 

이와 같이 상품으로 제작된 근대 공예품을 판매하였던 상점으로는 이왕가미술품제작소와 조선미술품제작소, 우미이치상회(海市商會), 동화상회(東華商會), 그리고 미츠코시(三越), 조지야(丁子屋), 미나카이(三中井), 화신(和信)백화점 등이 있었다. 이들은 공장에 상품 제작을 위탁하여 판매하거나 제작과 유통을 일원화시키기도 했는데 ‘조선 토산품 판매의 원조’라 자부하였던 우미이치상회는 공예품 제조 공장을 직접 운영하였던 주요 생산자이자 판매자였다.”

 

위는 ‘나무상자에 담긴 일제강점기의 기념품’에 소개된 글의 일부로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근래에 나무상자에 담긴 청자나 나전칠기, 신선로 등 일제강점기에 상품으로 제작된 공예품들을 상당수 수집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청자상감모란당초문발(靑磁象嵌牡丹唐草紋鉢)〉등을 소개하였다.

 

훙미로운 것은 모란과 당초문을 상감기법으로 장식한 비색(翡色)의 그릇인 〈청자상감모란당초문발(靑磁象嵌牡丹唐草紋鉢)〉이 고려시대 것이 아니라 일제가 만든 모조품이란 점이다. 일제가 모조품을? 그렇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나무상자의 덮개에는 그릇의 쓰임새와 제작처를 알려주는 “菓子鉢 漢陽高麗燒(과자발 한양고려소)”라는 묵서와 한양고려소의 도장이 찍혀 있고 상품 안내서가 함께 들어있어서 이를 통해 이 그릇이 일제강점기 도자기 공장인 한양고려소(漢陽高麗燒)에서 고려청자를 모방하여 제작한 것이며 조선 토산품 상점인 우미이치상회(海市商會, 해시상회)에서 판매했던 상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서에는 “고려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십수 년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한양고려소를 설립한 해인] 1912년 형상과 조각, 모양, 상감 등 옛 양식을 본뜰 수 있었고 1914년 도쿄다이쇼박람회에 출품하여 동상을 받았으며 궁내성(宮內省)에 납품할 수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 토산품 판매의 원조’라 자부하였던 우미이치상회는 공예품 제조 공장을 직접 운영하였던 주요 생산자이자 판매자였다. 우미이치상회는 우미이 벤조우(海井辨藏)가 1908년 경성부 본정 2정목(本町 2丁目 99), 곧 지금의 서울 중구 충무로 2가에 문을 연 조선 토산품 판매점이다. 경성 본정에 본점과 2개의 지점을 운영하였으며 조선호텔의 매점에서도 상품을 판매하였다. 이 외에도 대구와 원산을 비롯하여 1913년에는 일본 도쿄 니혼바시(東京 日本橋)에도 지점을 개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사세(社勢)를 확장하여 1923년에는 주식회사 우미이치상회로 회사 이름과 운영 체계를 변경하고 일본 도쿄에 본사를 설립하였다.

 

 

기념품 가격은 현재 가치로 1만 원이 안 되는 것에서부터 190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상품도 있으며 도자기보다 나전칠기가 비싼 값으로 판매되었다. 상품의 종류는 차 문화와 관련된 도구 등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종류와 형태의 것이 대부분이었고 실제 생활에서 사용이 가능한 실용성을 갖추고 있었다. 상품은 대부분 나무상자에 포장하여 판매하였으며 상자의 덮개 겉면에는 상품의 종류와 제작처・판매처 이름, 주소 등의 정보를 인쇄한 라벨을 부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성장한 일본 상회들은 고려시대의 도자기 등을 재현하여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는 각종 기념품을 만들어 팔면서 부를 축적해나갔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봐야할지에 대해 서울역사박물관은 다음과 같이 누리집에서 마무리 짓고 있다.

 

 

”이러한 일제강점기 기념품“우미이치상회는 재조선 일본인을 비롯하여 조선을 방문, 여행하던 일본 관광객이라는 새로운 수요층의 등장에 따라 상품으로서 공예품을 대량 생산·유통함으로써 박리다매(薄利多賣)로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제조 공장을 직접 운영하며 제작과 판매를 일원화시켰으며 상품은 우미이치상회의 상표와 고유 마크를 달고 판매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예품들은 형태와 디자인이 간략화되고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변용된 측면도 있으나 공예 산업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게 되었고 급격히 늘어난 수요에 부응하며 이 시기 활동했던 장인들을 통해 전통 공예 기술이 현대로 전해질 수 있었다. 따라서 상품으로서 제작된 공예를 불행한 식민지 시대의 산물로 치부하기 보다는 전통을 계승한 근대 공예의 한 축으로 인정해야하며, 일본 자본가들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용성과 상품성의 제고를 위한 전통 공예의 창의적인 응용이라는 차원에서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 이 글은  서울역사박물관 유물관리과에서 소개하고 있는 "나무상자에 담긴 일제강점기의 기념품" 글을 인용하여 필자가 간략히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