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흔히 ‘부자 3대 못 간다’라는 말이 있다. 대를 이어 부를 지키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재산도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지키는 것 자체가 일이다. 관리해야 할 것도, 신경을 써야 할 것도 많다. 그래서 300년 이상 ‘재벌가’로 부를 이어간 가문을 보면, 응당 그 비결이 궁금해진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려 300년 동안 만석꾼으로 이름을 떨친 ‘경주 최부잣집’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임금이 바뀌면 멸문지화를 당하기도 하던 시절, 굳건한 처세와 대를 잇는 철학으로 무려 12대 300년 동안 부를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는’ 나눔의 정신으로 조선 최고의 ‘적선지가(積善之家)’가 되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했던가. 덕을 쌓은 집안에 복이 있듯, 최부잣집은 부를 베풀수록 나날이 번성했다. 부를 베풀고, 민심을 얻고, 그 민심이 더 큰 부를 불러들이는 부의 선순환. 그것이 바로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이었다. 이 책, 《명가-나눔을 실천한 최부잣집》은 그 부의 비밀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최부잣집을 소재로 2010년 방영한 사극 《명가》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全身四十年前累(전신사십년전루) 온몸에 사십년 동안 쌓인 찌꺼기를 千斛淸淵洗盡休(천곡청연세진휴) 천 섬 되는 맑은 물에 씻어 버리리 塵土倘能生五內(진토당능생오내) 그래도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직금고복부귀류)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리 남명 조식(南冥 曹植. 1501~1572) 선생이 1549년에 제자들과 거창 신원면의 감악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라고 합니다. 남명은 감악산 계곡물에 들어가 몸을 씻으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하지요. 조선의 양반이 홀라당 벗고 계곡물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 아마 탁족(濯足) 곧 물에 발을 담그고 이 시를 짓지 않았을까요? 남명은 16세기 조선의 대유학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학자가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다니요! 그만큼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겠지만, 유학자의 시치고는 좀 과격하지 않나요? 그러나 항상 은장도 같은 칼을 갖고 다니면서 때로는 칼끝을 턱 밑에 괴고 혼미한 정신을 일깨우기까지 하며, 또 자신이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옷깃에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도 달고 다녔던 남명이라면 능히 이런 시를 지을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비우면 시원하고 편안해집니다. 반대로 안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으면 몸이든 마음이든 병이 납니다. 뭐든 비워야 좋습니다." 삶이 곤고할 때는 바다에 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바다는 왜 바다일까요? 일설에 의하면 모든 것을 다 받아주기 때문에 바다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낮은 위치에 있으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넓어졌다는 말씀도 있지요. 어쩌면 자신을 비워내고 비워내어 낮추고 낮춤이 거대한 채움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채움은 생득적인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채우고 또 채우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니까요. 그것이 심화하면 필요 이상으로 쌓아놓고도 갈증을 풀지 못합니다. 우리 몸도 채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 먹는 행위를 통하여 들어온 물질은 몸 밖으로 잘 내보내지 않지요. 잘못 단백질을 내보내면 단백뇨, 당을 내보내면 당뇨가 되는 것이니까요. 자연에서는 언제 굶주림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비축을 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이것이 결국 비만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세이 쇼나곤은 잘났다고 으스대며 자기가 제일이라고 뻐기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잘난 척하며 여기저기에 써놓은 한문 글귀를 보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남보다 더 뛰어나 보이려고 애쓰고 과장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나중에는 오히려 남보다 뒤떨어져 초라한 말년을 보내기 일쑤지요.” -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 가운데서-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973~1014)는 헤이안시대(794~1185)에 일본 황실의 궁녀로 지내던 여자로 《겐지 이야기》라는 작품과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여자와 당대 쌍벽을 이룬 작가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세이 쇼나곤(清少納言, 966~1025)이다. 지금 세상도 그러하지만, 당시에도 잘난 여자들은 서로 간에 질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세이 쇼나곤이나 무라사키 시키부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작품이 번역되어 있어 독자층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를 입증하듯 엊저녁 난데없이 단톡방에 세이 쇼나곤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지금 올린 세이 쇼나곤 사진을 잘 보시면 글이 적혀있습니다만 혹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년 시절 앞산의 오솔길을 지게를 지고 참 많이도 올랐습니다. 무언가 산에서 지고 내려온 기억은 많아도 지고 올라간 기억은 없습니다. 그건 산이 꾸준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삶이 곤고하고 세상에 찌들었을 때 산에 올라보세요. 푸르름의 위로를 한껏 받을 수 있는 산은 위대함 자체여서 귀를 열면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자연의 맑은 음이 내장까지 시원하게 해 주고 하늘과 맞닿은 능선에 걸친 하늘과 구름이 세속의 찌든 때를 정갈하게 씻어주니까요. 산은 그대로 녹색 댐입니다. 우리나라로 국한하더라도 소양강 댐 10개에 버금가는 물 저장 기능이 있고 또한 그들이 광합성으로 생산한 산소는 1억 명 이상이 숨 쉴 수 있는 대단한 양이니 그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철마다 아름다운 들꽃으로 그리고 산야초와 나물, 각종 열매로 식탁의 풍성함을 주는 산이야말로 무진장입니다. 일망무제의 너름 속에서 두 팔을 벌려 탁 트인 맑은 기운을 호흡하면 새처럼 날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사 번뇌를 뛰어넘는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함입니다. 눈을 감아도 푸르름이 보이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맑은소리가 들리는 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올리버 R. 에비슨의 제중원 운영 방침> 낼 수 없는 환자라도 진찰을 거부하지 않는다. 거치지 않고, 한국어를 배워서 직접 환자를 진찰한다. 모두 청결한 입원실로 만들어 되도록 많은 환자를 수용한다. 넉넉히 준비해 모든 종류의 수술이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 전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는 한국의 눈부신 의료기술. 의료관광을 오는 외국인이 많을 만큼 한국의 의학 수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눈부신 성과도, 그 출발은 지극히 미미한 씨앗 한 톨이었다. 넓은 마당에 덩그러니 세워진 한옥 한 채,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 척박한 땅에 의술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이는 바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이다. 그는 캐나다에서의 안정된 의과대학 교수 생활을 뒤로하고, 캐나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료환경이 열악했던 조선 땅으로 왔다.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이 책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은 슈바이처는 알아도 에비슨은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150여 년 전 한국에 와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不作蘭畵二十年(부작난화이십년) 난초를 그리지 않은 지 20년이나 偶然寫出性中天(우연사출성중천) 우연히 그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네 閉門覓覓尋尋處(폐문멱멱심심처) 문 닫아걸고 찾고 또 찾은 곳 此是維摩不二禪(차시유마불이선)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이로구나 若有人强要爲口實(약유인강요위구실) 만약 누군가 억지로 설명하라 한다면 又當以毘耶無言謝之(우당이비야무언사지) 당연히 유마거사처럼 말없이 사양하리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자신이 그린 ‘不二禪蘭(불이선란)이라는 난초 그림의 왼쪽 위 여백에 쓴 글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문인화를 그리면 대개 그림 여백에 화의(畵意)를 써 놓지요. 추사는 한동안 난(蘭)을 그리지 않다가 20년 만에 어떤 계기가 있어 난초를 그리게 되었나 봅니다. 그림 왼쪽 아래 여백에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시위달준방필, 지가유일, 불가유이 : 애초 달준이를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단지 한 번만 가능하고 두 번은 불가하다)’라고 쓴 것으로 보아, 추사는 달준이를 위해 이 난초 그림을 그렸나 봅니다. 달준은 추사 말년에 추사를 시중들던 시동(侍童)입니다. 불이선란도는 과천의 추사박물관 외벽에 크게 그려져 있듯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나라에는 지금 많은 국민이 잊고 있는 운하가 하나 있다. 인천 앞바다에서 김포시의 한강까지를 연결하는 길이 18km의 경인운하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업이었지만, 이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역 언론에서만 일부 보도가 되고 있을 뿐 대부분 언론은 보도하지 않는다. 주류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니 일반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다. 경인운하는 굴포천 방수로 사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김포 일대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하여 건설부에서는 방수로 사업을 1990년대에 진행하고 있었다. 경인운하 사업은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정부에서는 1995년에 경인운하를 민간투자대상사업으로 선정하고 1998년 3월에는 (주)경인운하가 사업시행자로 선정되어 실시협약까지 체결하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환경단체들이 경제성과 환경파괴 등을 이유로 경인운하 반대 운동을 펼쳤다. 2002년에 한국개발연구원에서 2차에 걸쳐 경인운하의 경제성을 분석한 결과 비용편익 비율(B/C 비율)이 0.82와 0.92로 나왔다. 경인운하는 경제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다. 비용편익 비율은 대규모 사업의 계획 단계에서 실시하는 경제성 평가 지표이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귀하지 않은 꽃도 없고 하찮은 풀도 없습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잎은 담쟁이입니다. 담쟁이는 열매가 포도와 비슷하게 생겨 포도과에 해당하는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입니다. 덩굴식물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담쟁이는 돌담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습성을 갖고 있지요. 덩굴손 끝에 작은 빨판처럼 생긴 흡착근이 있어 아무 곳에나 착 달라붙을 수 있고 잘 떨어지지 않아 바위나 나무 등을 기어 올라갑니다. 절벽타기의 위대한 실력자지요. 식물 뿌리 대부분은 중력과 같은 방향인 땅속으로 자라고 줄기는 중력과 반대 방향인 하늘로 자랍니다. 하지만 담쟁이덩굴은 위나 옆은 물론 아래쪽으로 뻗는 것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담쟁이는 약효가 좋아서 한약재로 쓰입니다. 주로 목질화된 줄기나 포도를 닮은 열매를 사용하지요. 다만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효과가 있지만 (특히 소나무) 담 또는 바위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독성 때문에 약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담쟁이덩굴로 덮인 건물은 품격이 느껴지기도 하고 여름에 햇빛 차단 효과로 냉방비를 30% 정도 줄일 수 있으며 겨울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비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 웁니다.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 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p.8) <기왓장 내외> 윤동주 윤동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기왓장 내외. 이 내외는 나라 잃은 임금이 사는 대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름답던 옛날을 그리워하며, 주름 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일상이었을까? 이런 기왓장 같은 사람이 있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그야말로 허울뿐인 임금이 되어 덕수궁에 갇히다시피 한 사람, 바로 고종이었다. 45년 동안 조선의 임금으로 재위하면서, 끝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책임을 통감할 수밖에 없던 고종은 덕수궁에서 통한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기쁨을 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자신이 환갑 때 얻은 딸 덕혜옹주였다. 1912년 5월, 조선이 일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지 2년 뒤에 태어난 덕혜는 고종 임금과 붕어빵처럼 닮아 있었다. 이 책 《동시와 함께하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혜》는 조선의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