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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냇물에 몸을 씻다[浴川]

올바름을 실천했던 조식과 제자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9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全身四十年前累(전신사십년전루)  온몸에 사십년 동안 쌓인 찌꺼기를

千斛淸淵洗盡休(천곡청연세진휴)  천 섬 되는 맑은 물에 씻어 버리리

塵土倘能生五內(진토당능생오내)  그래도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직금고복부귀류)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리

 

남명 조식(南冥 曹植. 1501~1572) 선생이 1549년에 제자들과 거창 신원면의 감악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라고 합니다. 남명은 감악산 계곡물에 들어가 몸을 씻으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하지요. 조선의 양반이 홀라당 벗고 계곡물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 아마 탁족(濯足) 곧 물에 발을 담그고 이 시를 짓지 않았을까요?

 

남명은 16세기 조선의 대유학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학자가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다니요! 그만큼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겠지만, 유학자의 시치고는 좀 과격하지 않나요? 그러나 항상 은장도 같은 칼을 갖고 다니면서 때로는 칼끝을 턱 밑에 괴고 혼미한 정신을 일깨우기까지 하며, 또 자신이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옷깃에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도 달고 다녔던 남명이라면 능히 이런 시를 지을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남명은 지니던 칼에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라고 새겼는데, 그 뜻은 안으로 마음을 밝고 올바르게 하는 것이 경(敬)이고, 밖으로 밝고 올바름을 실천 단행하는 것이 의(義)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명의 칼을 ‘경의검’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남명은 평생을 안으로는 ‘敬’을 가슴에 새기고, 밖으로는 ‘義’를 강조하는 삶을 살았기에, 시에도 이런 대단한 의기(義氣)를 불어넣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남명의 제자 가운데 곽재우, 정인홍, 김면 같은 의병장들이 나온 것입니다.

 

남명은 경상 좌도에 퇴계가 있다면 경상 우도에 남명이 있다고 할 정도로 퇴계와 쌍벽을 이룰 정도의 유학자입니다. 더욱이 남명과 퇴계는 같은 해에 태어났고, 죽음도 퇴계가 남명보다 2년 먼저 죽었을 정도로 같은 시대를 살아간 유학자입니다. 그렇지만 퇴계는 알아도 남명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퇴계 이황은 주자의 성리학에만 깊이 파고 들어가 조선 성리학의 태두를 이루었음에 견주어, 남명 조식은 장자 소요유(逍遙遊)편에서 따온 것이라는 호 ‘남명(南冥)’에서 보듯이 다른 학문에도 열려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남명은 오로지 성리학 하나로만 흐르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접을 못 받았지요. 그리고 퇴계의 제자들이 성리학의 학풍을 제대로 이어갔음에 반하여, 남명의 제자들은 스승이 강조하는 ‘의(義)’를 실천하는데 더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수제자 정인홍은 광해군 때 집권세력인 북인 중에서도 강경한 대북으로 활동하다가 인조반정 때 참수되었습니다. 이때문에 남명은 더욱 폄하되었을 것입니다.

 

평소 경의검과 성성자를 지니고 다녔다는 남명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浴川(욕천)이라는 이 시를 알게 되어 반가운 김에 한마디 느낌을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