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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不二(불이), 둘은 다르지 않은 것이니...

미망(迷妄)에서만 헤매지 말고, 최소한 하늘 바라보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9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不作蘭畵二十年(부작난화이십년) 난초를 그리지 않은 지 20년이나

偶然寫出性中天(우연사출성중천) 우연히 그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네

閉門覓覓尋尋處(폐문멱멱심심처) 문 닫아걸고 찾고 또 찾은 곳

此是維摩不二禪(차시유마불이선)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이로구나

若有人强要爲口實(약유인강요위구실) 만약 누군가 억지로 설명하라 한다면

又當以毘耶無言謝之(우당이비야무언사지) 당연히 유마거사처럼 말없이 사양하리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자신이 그린 ‘不二禪蘭(불이선란)이라는 난초 그림의 왼쪽 위 여백에 쓴 글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문인화를 그리면 대개 그림 여백에 화의(畵意)를 써 놓지요. 추사는 한동안 난(蘭)을 그리지 않다가 20년 만에 어떤 계기가 있어 난초를 그리게 되었나 봅니다.

 

그림 왼쪽 아래 여백에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시위달준방필, 지가유일, 불가유이 : 애초 달준이를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단지 한 번만 가능하고 두 번은 불가하다)’라고 쓴 것으로 보아, 추사는 달준이를 위해 이 난초 그림을 그렸나 봅니다. 달준은 추사 말년에 추사를 시중들던 시동(侍童)입니다. 불이선란도는 과천의 추사박물관 외벽에 크게 그려져 있듯이, 추사의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시동을 위해 이런 난초 그림을 그린단 말인가요?

 

 

참! 그전에 과천에 왜 추사박물관이 있는지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볼까요? 추사박물관은 양재 화물트럭터미널에서 가까운 과천시 주암동 184-2에 있습니다. 추사박물관 바로 옆에는 단출한 기와집이 있지요. 바로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별서(別墅, 한적하게 지은 집)로 쓰던 건물입니다. 추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를 아예 과지초당 뒷산에 모셨습니다. 바로 청계산 옥녀봉에서 청호봉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지능선(支稜線) 밑에 아버지를 모신 것이지요.

 

추사는 여기에 아버지의 무덤을 모신 뒤, 과지초당에 머물면서 아버지 3년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1852년 8월 함경도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뒤, 아예 과지초당에서 살며 4년 동안의 인생 말년을 여기서 보냈습니다. 그렇기에 과천시에서 추사와의 이런 인연을 그냥 둘 수 없어, 여기에 추사박물관을 세운 것이지요. 그리고 옥녀봉에서 청호봉으로 하여 추사박물관으로 내려오는 등산로도 새로 만들었고요.

 

다시 본래 얘기로 돌아와서, 답은 넷째 연의 ‘此是維摩不二禪(차시유마불이선)’에 있습니다. 당시 추사는 8년 동안 제주 유배에 뒤이어, 1년 동안의 북청 유배까지 당하고 보니, 유교 정치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과지초당에 살면서 가까운 봉은사에 자주 출입하며 불교에 심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불경 중에서도 특히 유마경을 탐독하여 유마거사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위 구절에 나오는 ‘不二禪(불이선)’은 바로 유마경의 <불이법문품>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추사는 유마경을 탐구하다가, 이 ‘不二禪’이라는 구절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나 봅니다. ‘不二’는 ‘선과 악’, ‘미와 추’, ‘삶과 죽음’, ‘너와 나’ 등이 본질적으로 그 근원은 같은 것, 그러므로 둘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절에 가면 ‘不二門’이 있지 않습니까? 불이문을 통과하면서 이러한 ‘不二’의 진리를 깨달아 해탈에 이르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추사는 이런 ‘不二’의 깨달음을 둘째 연에서 ‘性中天(성중천)’으로 표현했습니다. 《추사에 미치다》라는 책을 쓴 빈섬 이상국은 ‘性中天’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내공이 깊이 쌓이면 어느새 탁 트여 버리는 순간이 오고, 인간의 본성이 문득 하늘에 닿는 때가 온다. 그게 성중천이다.” 추사는 ‘불이’를 묵상하다가, ‘선(禪)’과 난초 그리는 것도 둘이 아닌 하나라는 깨달음이 어느 순간 탁 트여 버렸나 봅니다.

 

 

그러니 그 깨달음의 기쁨에 20년 동안 그리지 않던 난초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하늘로 솟구쳤겠지요(性中天). 그래서 달준에게 빨리 먹을 갈라고 시켰을 것이고요. 달준이 붓과 종이를 대령하자, 추사는 그러한 깨달음으로 난초를 그립니다. 이윽고 난초를 다 친 – 난초를 그리는 것을 난을 친다고 하더군요. - 추사는 그림을 들어 바라보면서 만족한 듯 씨익 웃음 한 번 지었겠지요. 그리고 달준에게 난초 그림을 내줍니다. ‘性中天’이라는 깨달음의 순간에 그린 그림이니, ‘只可有一, 不可有二’ 곧 “단지 한 번만 그릴 수 있을 뿐이지,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라고 한 것 같습니다.

 

추사는 불이선란도를 그리면서 서예의 기법으로 난초를 그렸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그림과 서예가 둘이 아니라는(書畵一致), ‘불이’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겠지요. 그래서인가? 추사는 무심하게 난을 쳐 올라가다가 툭 꺾어 올라가기도 합니다. 아마 불이선란도처럼 난초 줄기가 중간에 툭 꺾여 올라가는 그림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사는 다섯째, 여섯째 연에서 누군가 ‘불이’의 깨달음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유마거사처럼 말없이 사양하겠다고 하네요. 깨달음은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것(不立文字)이지요. 그래서 유마거사도 ‘불이’에 대한 물음에 그저 침묵을 지켰을 것입니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라고 있지 않습니까? 석가모니가 영산회(靈山會)에서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여주자, 마하가섭이 그 뜻을 깨닫고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고요. 다 말없이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경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성중천(性中天)! 나에게도 내공이 깊이 쌓이면 어느새 탁 트여 버리는 순간이 올까? 그런 순간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도 그동안 쌓인 것이 어느 순간 내 가슴 언저리를 툭 건드리는 것을 느낄 때가 있기는 있습니다. 착각이겠지만요.

 

청계산은 서울 시민들이 많이 찾는 산 아닙니까? 신분당선의 청계산입구역이 생긴 이후로는 청계산이 몸살이 나겠다 싶을 정도로 더욱 많은 사람이 찾고요. 다음에 청계산 산행할 때는 옥녀봉에서 청호봉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을 내려가서 추사박물관도 한 번 들러보시지요. 참! 봉은사에는 추사의 마지막 작품이 현판으로 걸린 판전(板殿)이 있으니, 봉은사에도 들러 아무 기교도 부리지 않고 무심하게 써 내려간 추사의 마지막 작품도 감상하고요. 그리고 우리 모두 미망(迷妄, 사리에 어두워 진실을 가리지 못하고 헤맴)에서만 헤매지 말고, 최소한 ‘성중천(性中天)’의 하늘을 바라보기라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