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一園春色紫薇花(일원춘색자미화)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피니 纔看佳人勝玉釵(재간가인승옥채)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막향장안누상망)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滿街爭是戀芳華(만가쟁시연방화) 거리의 사람들 모두 다 네 모습 사랑하여 다투리 위는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 ‘강아(江娥)’를 위해 지은 한시 ‘영자미화(詠紫薇花)’ 곧 “자미화를 노래함”이란 한시입니다. 자미화는 무려 100일 동안이나 핀다는 배롱나무, 곧 ‘목백일홍’이지요. 강아는 송강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원의 어린 기생으로 본명은 자미(紫薇)였고, 원래 이름은 ‘진옥(眞玉)’이었으나 정철의 호인 송강의 ‘강(江)’자를 따라 ‘강아’라고 불렸습니다. 송강은 강아를 만나 머리를 얹어주고 하룻밤을 같이했으나, 사랑스러운 딸같이 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송강이 도승지로 임명받아 강아 곁을 떠나 한양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 강아에게 석별의 시 “영자미화”를 지어준 것입니다. 송강은 아마도 이별 뒤에 뭇 사내의 눈길이 그녀에게 머물까 두려워 이런 한시를 썼던가 봅니다. 그 뒤 강아는 정철을 향한 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천도(天道)가 순환하고 민심이 응합하야, 아(我) 대한독립을 세계에 선포한 후 상(上)으로 임시정부가 유하야 군국대사를 주하며, 하(下)로 민중이 단결하야 만세를 제창할 새 어시호(於是乎) 아(我)의 공전절후(空前絶後)한 독립군이 출동되었도다(…)당당한 독립군으로 신(身)을 탄연포우(彈煙砲雨) 중에 투하야 반만년 역사를 광영케 하며, 국토를 회복하야 자손만대에 행복을 여(與)함이 아(我) 독립군의 목적이오 또한 민족을 위하는 본의라.” 이는 대한독립군 사령관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1919년 12월 대한독립군 대장으로서 공포한 유고문(諭告文)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151년 전인 1868년 오늘(8월 27일)은 홍범도 장군이 태어난 날입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그린 것처럼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은 최진동과 안무 장군의 대한북로독군부군, 그리고 이흥수가 이끄는 대한신민단과 연합하여 대승을 거두었지요. 1920년 12월 25일치 <독립신문>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사살되고 수많은 인원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독립군측은 4명의 전사자에 2명의 중상자만을 내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홍범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순종실록》 순종 1년(1908년) 8월 26일 기록에는 “법률(法律) 제22호, 〈동양척식주식회사법(東洋拓殖株式會社法)〉을 재가하여 반포하였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회사는 일본과 한국 이중 국적을 가진 회사로 1908년 3월 제24회 일본 의회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이라는 법안을 통과시킨 다음 한국정부에 강요해 8월 27일 한일두 나라에서 동시 공포하도록 했습니다. 이 회사 창립에는 한국인 33인이 창립위원으로 참여했지만, 83인의 일본인 창립위원에 견주면 심한 불균형이었을 뿐더러 설립위원장을 일본인으로 했으며, 한국인 창립위원은 아무런 권한이 없는 들러리였을 뿐입니다. 여기서 회사의 이름에 ‘척식(拓殖)’이란 말이 들어간 것은 일본이 나라밖의 영토나 미개지를 개척하여 자국민을 이주시켜서 정착하게 한다는 흉계가 담긴 것입니다. 곧 조선 사람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이를 바탕으로 일본 농민들이 조선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1917년까지 해마다 1,000호, 1926년까지는 해마다 350호의 이주를 추진하여 1926년까지 9,096호를 이주시켰는데 일본 이주민은 이주비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 가을볕이 너무 좋아 / 가만히 나를 말린다 / 내 슬픔을 / 상처 난 욕망을 / 투명하게 드러나는 / 살아온 날들을“ 이 시는 박노해 시인이 쓴 <가을볕>입니다. 오늘은 처서(處暑), 24절기 가운데 열넷째이지요. 흔히 처서를 말 할 때 ’땅에서는 가을이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그 위세를 떨치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때입니다. 처서 무렵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해충들의 성화도 줄어들고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지요. 그래서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고 합니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하는데, 처서비에 ‘십리에 천석 감한다.’라고 하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고 하는데 처서에 비가 오면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도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예부터 부안과 청산은 대추농사로 유명한데,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라는 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5년 개봉된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윤옥(전지현 분)의 소재가 된 분이 여성독립운동가 남자현 지사임을 우리는 압니다. 86년 전인 1933년 오늘(8월 22일)은 그 남자현 지사가 만주 하얼빈에서 숨을 거둔 날입니다. 남자현 지사는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왼쪽 약손가락을 잘라 흰 무명천에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써 보내 조사단원들을 놀라게 한 분입니다. 또 남 지사는 그 이전인 1925년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려 권총 한 자루와 탄환 8발을 가지고 국내에 잠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1933년 2월 이춘기 등과 주만일본대사(駐滿日本大使)이며 관동군 사령관인 부토 노부요시(武藤信義) 처단계획을 세웠지요. 만주국건국 1주년 행사가 열리는 1933년 3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2월 27일 거지로 변장, 권총 1정과 탄환, 폭탄 등을 숨기고 장춘으로 향하던 중 하얼빈 교외 정양가(正陽街)에서 미행하던 일본영사관 소속 형사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잡힌 뒤 하얼빈주재 일본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시장은 단기 차익을 노린 개미들의 투전판이 되고 있다.” 주식시장을 말하는 한 신문의 기사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투전은 무엇일까요? 투전(鬪牋)은 종이로 만든 손가락만한 80장의 패로 여기에는 여러 가지 그림과 글자가 적혀있는데 이것으로 끗수를 나타내는 노름용 도구입니다. 정조 때의 학자 성대중(成大中)이 지은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따르면 명나라 말기에 역관 장현이 북경에서 들여왔다고 합니다. 정조 때 문신이자 학자인 윤기(1741년 ~ 1826)의 책 《무명자집(無名子集)》에 나오는 “투전자(投錢者)”란 시를 보면 투전을 하다가 아내의 치마를 벗겨가고, 솥까지 팔아먹어서 식구들이 굶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정조 15년 9월 16일 문신 신기경은 투전을 금하고, 투전을 팔아 이익을 얻는 사람 역시 엄격히 벌을 줄 것을 상소했고 이에 정조는 법으로까지 금지했지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담배를 피우지 않고 투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사람이겠는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지요. 당시 투전의 폐해가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투전 말고도 골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위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의 시 “오감도(烏瞰圖), 1934”란 시입니다. 1910년 오늘은 그 이상 시인이 태어난 날입니다.(어떤 자료에는 9월 23일로 나오기도 함) 이 오감도란 시는 대체로 이해하기 힘든데 읽다 보면 문득 조금은 두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수목원은 지난 8월 3일 경기도 포천 광릉숲에서 천연기념물 제218호이면서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인 장수하늘소 수컷 하나가 발견되었으며, 이에 따라 지난 2014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으로 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장수하늘소는 동북아에서 사는 딱정벌레 종류의 곤충 가운데 가장 크며 중국 길림성과 흑룡강성 일대, 시베리아 우수리스크 지방과 우리나라 경기도 광릉지역 등에 분포하고 있지요. 따라서 장수하늘소는 중국 대륙이나 일본에도 없는 곧 옛 고구려나 발해 땅에만 있으며, 그 수가 적어 보존 가치가 큰 진귀한 곤충입니다. 장수하늘소의 몸길이는 수컷 12cm, 암컷 7∼8cm 정도인데 주로 서어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같은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는 숲에서 살지요. 암컷이 나무줄기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으면, 애벌레는 단단한 나무의 섬유로 이루어진 부분을 파먹으며 삽니다. 장수하늘소 유충이 들어가 있는 나무는 유충들이 파먹은 길 때문에 결국 쓰러지게 되며, 쓰러진 나무토막들은 다시 개미가 분해하여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숲에서 장수하늘소의 구실은 숲을 분해하여 오래된 숲을 새로운 숲으로 태어나게 하는 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낮 땡볕 논배미 피 뽑다 오신 아버지 / 펌프 꼭지에 등대고 펌프질 하라신다 / 마중물 넣어 달려온 물 아직 미지근한데 / 성미 급한 아버지 펌프질 재촉하신다 / 저 땅밑 암반에 흐르는 물 / 달궈진 펌프 쇳덩이 식혀 시린물 토해낼 때 / 펌프질 소리에 놀란 매미 제풀에 꺾이고 / 늘어진 혀 빼물은 누렁이 배 깔고 누워있다." 고영자 작가의 시 '펌프가 있는 마당풍경'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펌프가 있는 마당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습니다. 이 펌프를 우리말로는 ‘작두샘’이라 합니다. 작두는 짚이나 풀 따위 사료를 써는 연장으로 작두질을 하듯 펌프질을 하면 물이 솟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겠지요. 아주 더 예전엔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이나 샘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수돗물을 쓰기 전에는 한동안 집집마다 마당가에 작두샘이 있었습니다. 작두샘은 압력작용을 이용하여 관을 통해 물을 퍼올리는 기계입니다. 널찍한 마당 한켠에 놓여 있던 작두샘은 싸구려 쇠로 되어 있어 검붉은 빛깔로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그 작두샘으로 퍼 올린 물은 목이 마를 때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으스스할 정도로 시원하게 등목을 했으며 아이들은 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제주시 내도동은 반질반질하고 색이 다양한 조약돌로 이루어진 바닷가(알작지)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는 돌로 탑을 쌓아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거욱대[방사탑-防邪塔]”가 있는데 사람 키보다 높은 크기로 돌탑을 쌓아 올린 곳에 언뜻 보면 남성의 상징물 같은 뾰족탑이 서 있습니다. 내도동 거욱대는 제주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밖에도 제주시 이호동,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 남제주군 대정읍 무릉리 등에 38기의 거욱대가 남아 있으며, 그 가운데 17기가 민속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거욱대는 마을 어느 한 방향으로 불길한 징조가 비치거나, 풍수지리설에 따라 기운이 허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액운을 막으려고 세웠는데 거기에 더하여 마을의 안녕을 지키며 전염병과 화재 예방, 바닷일에서의 안전과 아이를 잘 낳게 한다는 속설까지 섞여 있어 섬지방인 제주의 고유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거욱대는 마을에 따라 까마귀ㆍ극대ㆍ거왁ㆍ가매기동산ㆍ거웍ㆍ가막동산ㆍ액탑ㆍ매조자귀 따위로도 불린다고 하지요. 거욱대를 만들 때는 우선 큰 돌로 밑단을 둥글게 만든 뒤 그 안에 잔돌을 채우는데 속에 밥주걱이나 솥을 묻은 후 그 위에 사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