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간송(澗松). 산골에 흐르는 물, 그리고 푸른 소나무를 뜻하는 이 말은 어느새 우리 문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간송은 물려받은 큰 재산으로 우리 문화재를 지켜내는 데 열과 성을 다한 전형필 선생의 호다. 오늘날 국보급 문화재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우리 미술사에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도 간송이 그 모든 것을 지켜내지 않았더라면 요원했을 일이다. 최석조가 쓴 이 책 《조선의 백만장자 간송 전형필,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는 ‘간송미술관’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간송 전형필의 일생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간송에 막 관심을 가진 청소년이 읽기에도 좋다.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수많은 그림과 도자기가 알고 보면 간송의 엄청난 노력으로 이 땅에 남아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간송 전형필은 1906년 서울에서 아버지 전영기,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큰형 형설은 벌써 열다섯이었으니, 정말 늦둥이였던 셈이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었기에 형필은 자식이 없던 작은아버지 전명기의 양자로 들어갔고, 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선대 할아버지 때부터 배오개 장터(지금의 종로)에서 장사한 그의 집안은 나라에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구름 사이로 학이 날아올랐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 스무 마리, 백 마리……. 구름을 뚫고 옥빛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불교의 나라 고려가 꿈꾸던 하늘은 이렇게도 청초한 옥색이었단 말인가. 이 색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영원의 색이고 무아의 색이란 말인가. 세속 번뇌와 망상이 모두 사라진 서방정토(西方淨土)란 이렇게도 평화로운 곳인가.” 위는 《간송 전형필(이충열, 김영사)》에 나오는 글로 간송이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紋梅甁)”을 보고 중얼거렸다는 말입니다. 뒤에 국보로 지정된 이 매병은 원래 전문도굴꾼 야마모토가 강화도 한 고분을 도굴하여 고려청자 흥정꾼 스즈끼에게 1천 원에 팔아넘긴 뒤 마에다 손에 왔을 때는 2만 원으로 뻥 튀겨져 있던 것을 간송 전형필 선생은 흥정 한 번 없이 한 푼도 깎지 않고 샀습니다. 당시 2만 원은 기와집 스무 채 값이었지요. 간송은 이 귀한 매병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걸 걱정했기에 한푼도 깎지 않고 거금을 주고 샀던 것입니다. 높이 42.1㎝, 입지름 6.2㎝, 배지름 24.5㎝, 밑지름 17㎝의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간송문화재단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매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