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27일) 나는 방한 중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 恵美子) 씨와 함께 지난해 돌아가신 오희옥 지사의 참배를 위해 국립현충원 충혼당(납골당)엘 다녀왔다. 지난해 11월 17일, 98살로 숨을 거두기까지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였던 오희옥 지사는 그를 아는 많은 분으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오던 애국지사였다. 국립서울현충원 제2충혼당 <616-023>에 계시는 오희옥 지사의 유해는 무궁화꽃이 돋을새김된 작은 청자단지에 모셔져 있다. “열네살 소녀 독립군이었던 나의 자랑스런 어머니 오희옥 지사”라는 글과 함께 청아한 한복차림의 오희옥 지사 사진은 지난해 영결식 이후 자녀분들이 만들어 붙여둔 듯했다. 마츠자키 씨와 나는 미리 준비한 꽃을 들고 고개 숙여 오희옥 지사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워낙 한분 한분의 유해를 모신 공간이 좁아서 마츠자키 씨가 마련해 온 생화꽃은 망자에게 바치지 못하고 내가 가지고 간 붉은 카네이션만 유리에 붙여두고 충혼당을 나왔다. 밖은 화창한 봄이었다. 충혼당 주변의 벤치에는 삼삼오오 유가족들이 환담하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 커피와 딸기 등 간단한 요기거리를 가지고 왔기에 오희옥 지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가 서경식 선생과 처음 만난 것은 2022년 3월 5일, 고려박물관에서의 강연회 때였다. 강연 뒤 간담회 시간에 《회상과 대화》라는 책에 사인을 받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 서경식 선생은 고려박물관 이사를 거쳐 공석으로 남아있던 고려박물관의 관장을 맡아 주셨다. 관장 취임 이전인 지난해(2023) 7월 31일(9월 전시를 앞둔 모임)에 실시한 <관동대지진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과거에 배우고, 미래의 공생사회를 만드는 교육>이라는 특별 전시계획을 앞두고 서경식 선생에게 전시 아이디어에 대한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그때 선생은 “‘특별 계획이란 박물관 전체의 목표 가운데 개별 기획전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그에 대한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적ㆍ 이성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는 등의 충실한 조언을 해주셔서 전시 기획에 대한 시야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단체인 고려박물관에서 펴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 회보 제67호(2024.3.1.)에서 츠브라야 메구미(円谷 惠) 씨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번 한센병(나병) 전시에서는 “재일조선인 입소자의 생활 실태, 식민지 조선의 격리 정책, 그리고 패전후 국적을 박탈당한 재일조선인 한센병 환자의 고통과 투쟁을 다뤘습니다. 나아가 한센병과 우생사상(優生思想), 부락차별, 문학, 그리고 기쿠치 사건 등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2020년 <한센병과 조선인-차별을 살아내고> 전을 열었을 때 코로나19가 창궐하여 '감염병과 차별'의 문제에 직면했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센병을 둘러싼 차별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이는 며칠전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 운영위원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恵美子) 씨가 보내온 자료 가운데 <한센병과 조선인 벽을 넘어> 소책자의 머리말이다. '한센병과 조선인?' 나는 소책자 제목을 보고 잠시 착각을 했다. 한센병과 조선인 이야기라면 몇 해 전 이미 기사를 쓴 적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마츠자키 에미코(松崎恵美子) 씨가 보내 온 자료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이번 자료는 <한센병과 조선인>에 관한 두 번째 전시를 알리는 자료였다. 내가 전에 쓴 기사는 20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윤옥 선생님, 교토에서 거행될 시인 윤동주의 추도식 정보 감사합니다. 일본에 살고 있어도,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일본은 최근 들어 큰 재해가 잇따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저질화가 진행되고 있어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특히 군마현(群馬県, 도쿄에서 50분)의 다카사키시(高崎市)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전쟁 중 연행되어 강제노역으로 사망한 조선인들을 위령하는 평화의 추도비가 20여 년 전에 세워졌고, 현지인들에 의해 해마다 위령제가 거행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우익들이 시비를 걸어 군마현에 철거를 요구한 결과 군마현지사(群馬県知事)는 이에 찬성하여 추도비를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재판에 호소했지만, 법원에서도 막아내지 못하고 철거가 결정되었습니다. 이어 1월 29일, 불도저로 조선인 추도비는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폭거입니다. 추도비는 한·일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아시아 미래의 평화와 우호를 위해 소중한 징표였는데 이를 없애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들의 철거 반대 목소리가 부족했습니다. 반성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재건할 것을 모두가 맹세했습니다.” 이는 일본 고려박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하였습니다. 화학공업 회사였는데, 회사가 사용하는 전력을 만들기 위해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 있는 압록강에, 당시 제일이라고 알려진 커다란 댐(수풍댐)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은 모두 일본 효고현 아시야(芦屋)에서 살았고, 아버지 혼자 현지에 파견을 나가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윤택하게 살았습니다. 1945년 한국이 광복을 맞자, 아버지는 실직했고, 9인 가족의 생활은 밑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1941년 태어나 일곱 형제의 막내였던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가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한국 사람을 지배하고 그 덕분에 집이 부유하다는 게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일본인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씨다. 나는 지난해(2022) 10월 하라다 교코 씨로부터 일본어로 쓴 책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을 한 권 받았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이라는 책이다. 하라다 교코 씨는 '조선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대표적인 일본인들의 모임'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의 이사장을 지냈던 분(재임기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고려박물관 회원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恵美子) 씨가 지난 24일 방한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자주 서울을 방문했던 마츠자키 씨였지만 지난 3년간 한·일간의 비자 강화 등 왕래가 어렵게 되어 버리는 통에 한국방문이 중단되었다. 서울을 찾은 마츠자키 씨와 24일,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다. 마츠자키 씨는 <고려박물관 회보>(제63호)와, <그림으로 이해하는 이웃나라 ‘한국 ·조선’> 책자를 건네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한일간의 역사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한 고려박물관의 활동 내용을 들려주었다. 건네받은 <고려박물관 회보>(제63호,2022.11.1. 발행)를 살펴보니, 기획전시로 마련한 <그림으로 이해하는 이웃나라 ‘한국 ·조선’> 개막 소식을 비롯하여 <조선고교수업료무상화 배제와의 투쟁, 그리고 지금부터>,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99주년 추도 미니 전시를 마치고> 등 한국과 관련된 기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활동 소식으로 가득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림으로 이해하는 이웃나라 ‘한국 ·조선’: 絵本で知ろう! おとなりの国、韓国·朝鮮の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한국과의 오랜 교류의 역사를 학교에서 상세히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일본과 한국이 교류해온 사실을 알고 더 나아가 일본이 행한 식민지시대의 사실을 알아야 우리 일본인들이 사죄의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고려박물관은 많은 일본인에게 한국과의 역사적 사실과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재일동포를 비롯하여 한국인과의 화해의 길을 열어 좋은 관계 개선을 이루고자 활동해왔습니다.” -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하라다 쿄꼬 지음, 197쪽- 일본의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 이사장을 지냈던 하라다 쿄꼬(原田京子) 이사장(재임기간, 2013.11~2018.10)으로부터 책 한권을 받았다. 이 책의 제목은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이라는 제목으로 책 표지에는 한국어로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하라다 쿄꼬 이사장이라고 하면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듯하다. '조선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대표적인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인 하라다 쿄꼬 이사장은 올해 나이 81살로 그는 2002년 3월, 일본에서 장애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나는 학살 현장인 사할린의 설원에 서게 되면 일본인이 저지른 뿌리 깊은 원죄를 뼈저리게 느낀다. 1923년 9월 1일 관동 지방을 강타한 미증유의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약 6천여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군대와 민간인에 의해 학살당한 사실이 떠오른다. 사할린 사건은 제2의 관동대지진 사건이다. 패전기 혼란 상태라는 상황보다도 일본군과 일본인이 조선인에 갖고 있던 차별의식과 편견이 대량 학살을 낳은 것이다. 전쟁의 엄청난 비극은 병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일반 민중을 할퀴고 지나간다. 일본이 양심이 있다면 강제 연행한 조선인을 맨 먼저 귀국시켜야 했다. 그런데 일본인만 후송하고 조선인은 내버려 둔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위가 용서될 수 있을 것인가? 일본 정부는 남겨진 조선인의 비통한 울부짖음을 외면한 채 그들의 귀국 대책에 눈감았다. 인간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즉각 사죄해야 할 것이다.” - 하야시 에이다이 책 《사할린은 통곡한다》에서 - 이는 일본인으로서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강제 연행 문제를 평생 취재해 기록으로 남긴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林えいだい, 1933-2017) 씨의 ‘일본사죄론’의 핵심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