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하였습니다. 화학공업 회사였는데, 회사가 사용하는 전력을 만들기 위해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 있는 압록강에, 당시 제일이라고 알려진 커다란 댐(수풍댐)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은 모두 일본 효고현 아시야(芦屋)에서 살았고, 아버지 혼자 현지에 파견을 나가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윤택하게 살았습니다. 1945년 한국이 광복을 맞자, 아버지는 실직했고, 9인 가족의 생활은 밑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1941년 태어나 일곱 형제의 막내였던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가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한국 사람을 지배하고 그 덕분에 집이 부유하다는 게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일본인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씨다. 나는 지난해(2022) 10월 하라다 교코 씨로부터 일본어로 쓴 책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을 한 권 받았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이라는 책이다.
하라다 교코 씨는 '조선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대표적인 일본인들의 모임'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의 이사장을 지냈던 분(재임기간, 2013.11~2018.10)이다. 일본어로 된 이 책은 그가 평생 한국에 갖고 있는 ‘반성과 사죄’라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한 글이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읽을 수 없는 책이라 아쉬웠는데 이번에 한국어판을 만들어 다시 보내왔다. 한국어판 제목은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기록》이다.
“일제강점기에 관한 일을 어려서는 잘 몰랐지만 커가면서 한국이 일본에 의해 침략의 역사를 겪어야 했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마음 한구석에 빚진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시아버님은 조선총독부 기계부 기사였고 친정아버지는 북한의 수풍댐 건설 총책임자로 있었기에 마음의 빚은 더 컸던 것이지요.”
그런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하라다 이사장은 한국행을 실천했다. 2004년의 일이었다. 도쿄도립대학에서 심리학 전공을 하고 39년 동안 도쿄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던 하라다 이사장은 2002년 3월, 39년 동안의 교직에서 퇴직하자마자 그해 5월 평소 기독교 신앙으로 알게 된 도쿄 YMCA의 한국인 회원의 소개로 한국 음성 꽃동네와 광명 사랑의 집에서 중증장애인들을 돌보며 2년 동안 교육에 전념했었는데 그때 일기와 편지글들을 모아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기록》이라는 책이 탄생했다. 책은 2002년 5월 19일(일), 일기로 시작된다.
“출발하는 날, 나리타공항은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의 깃발이 휘날리고 축제 분위기로 무르익고 있었다. 대한항공 기내는 축구 관전을 위한 승객이 많아 밝고 즐거웠다. 인천공항도 화려한 환영 현수막으로 가득했다. 지금부터 하는 한국생활을 이렇게 밝은 이벤트와 함께 할 수 있어 아주 기뻤다.” - 2002년 5월 19일(일) -
“나의 업무는 장애아 고아원의 일인데, 오늘 처음으로 고아원 생활관으로 출근하여 10여 명의 직원과 인사를 하였다. 생활관 책임자인 S 수녀는 아주 친절하게 맞아 주셨다. ‘일본에서 봉사하러 오신 분입니다.’ 수녀님이 소개말을 건넨 순간 모두 내게 집중하였다. 그중 한 분이 쏘는 듯 예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왜, 일본인이 여기에?’” - 2002년 5월 21일(화) -
낯선 한국에서 하라다 이사장이 겪은 이야기는 일기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등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하라다 이사장이 한국으로 ‘사죄와 반성의 봉사’를 하기 위해 떠난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남편이 평소 “조선에 큰 빚을 졌다. 언젠가는 화해를 위한 일을 해야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뜻하지 않게 남편이 쉰다섯 살(1997년)의 나이로 암에 걸려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큰 슬픔 속에 빠져있던 하라다 이사장은 가슴에 묻어 두었던 ‘한국’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남편과 함께 ‘한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고 하던 생각이 떠오르자 하라다 이사장은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한국의 장애인 시설인 음성 꽃동네로 건너왔다. 물론 무보수 봉사였다.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기록》(한국어판)은 크게 3장으로 나눌 수 있다. 1장은 음성 꽃동네 시절의 일기와 일본에 보내는 각종 소식들이며 2장은 광명 사랑의 집에서 쓴 일기와 일본 지인 등에게 보낸 글로 구성되어 있다. 3장은 하라다 교코 이사장이 자원봉사를 했던 고려박물관에 관련된 일들을 소개한 ‘고려박물관과 나’라는 항목으로 ① 고려박물관의 성립 과정 ② 고려박물관의 설립목적 ③ 활동 모습 ④ 이사장이 된 내력 등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어디서 알았는지 모르지만, 광명시 홍보과와 신문사에서 3월 1일의 3.1독립운동 기념일 전에 나를 취재하러 오셨다. 질문의 주요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왜 이곳으로 봉사활동을 왔는가?, 일본과 한국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3월 1일이 다가오는데 일본인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앞으로 한일관계에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 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러 왔노라고 이야기하고 일본은 과거의 역사에 철두철미하게 눈을 돌려 잘못한 일을 사죄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 2004년 2월 26일 -
하라다 이사장은 꽃동네 장애우들로부터 ‘하라다 이모’로 불렸다. 한국말을 미리 배워 둔 덕에 일상생활에 대한 소통은 그런대로 가능했기에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에 모든 힘을 다 쏟았다. 그 결과 ‘하라다 이모’는 꽃동네서 인기 만점의 ‘보모 아줌마’였다. 특히 중증 장애아들의 교재 교구와 장남감 등을 일본에서 지원받아 아이들에게 적용하는 등 장애우들이 교육에도 최선을 다했다.
한편, 서로 어색하던 동료들과도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쉬는 날 하라다 이사장을 데리고 한국의 명소 구경을 시켜주었고 집에 초대해 맛있는 한국 음식도 만들어 주는 등 서로 우정을 나눈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기록》에 녹아 있다.
지난해(2022)에 일본어판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부제: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에 이어 올해 한국어판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기록》(번역, 김복례, 인디펍 출판사)의 출간을 통해 일본인 하라다 교코 씨가 갖고 있는 ‘일제강점기’에 관한 솔직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평생을 한일 사이 과거를 직시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힘쓰고 있는 하라다 교코 이사장에게 큰 손뼉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책 소개】
<일본어판>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부제: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 하라다 쿄꼬(原田京子) 지음, 일본 코세이샤(皓星社) 출판, 2022.7
<한국어판>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기록》(번역, 김복례), 인디펍 출판, 2023.10
【일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은 어떤 곳인가?】
1.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한국ㆍ조선)의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지향한다.
2. 고려박물관은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3. 고려박물관은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 없는 공생사회의 실현을 지향한다.
이러한 목표로 1990년 9월 설립한 고려박물관은 순수한 일본 시민단체로 전국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관련 각종 기획전시, 상설전시, 강연, 한글강좌, 문화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기록》을 쓴 하라다 교코 씨는 고려박물관에서 이사장(재임 2013.11~2018.10)으로 봉사했다.
<찾아가는 길>
JR 야마노테선(山手線)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내려 쇼쿠안도오리(職安通)
한국 '광장'수퍼 건너편 광장 건물 7층
*전화:도쿄 03-5272-3510 (한국어 대응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