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79돌 광복절 행사가 정부 주최 경축식과 독립운동단체 주최 기념식으로 각각 열린 것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독립운동단체들은 ‘친일 뉴라이트’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반대하면서 따로 기념식을 단행했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말썽이 된 건국절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광복회는 논평을 통해 “1948년 이승만의 건국절 주장은 선열들의 피로 쓴 독립운동의 역사를 혀로 덮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왜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세 가지 단상이 떠올랐다. 첫째,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에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후유증일 것이다. 1948년 9월에 국회를 통과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이승만의 방해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이 법에 따라 특별재판소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사형 1명을 포함하여 12명밖에 안 되었다. 그마저도 실제 사형 집행은 1명도 없었고, 대부분 감형이나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나치 부역자 6,763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26,529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숙청 재판에 가장 먼저 끌려 나온 피고들은 나치 협력 언론인들이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절정(絶頂) - 이육사(1904~1944)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지난 2011년 광복절 66돌을 맞아 MBC텔레비전에서는 이육사 일대기 '절정'을 방영해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드라마 '절정'은 39년이란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육사의 정신과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된 '절정'은 1940년 1월 발표된 이육사의 대표 시 가운데 하나로 일제 강점기 속 배달겨레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다. 본명이 이원록인 이육사는 '절정'과 '광야', '청포도'를 비롯해 30여 편이 넘는 시를 발표했다. 또 그의 삶을 통틀어 모두 17회 감옥에 투옥됐으며,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1월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구금 중 순국했다. 그런 이육사 시인의 일대기를 방영했던 MBC텔레비전은 이번 광복절에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와 일본 전통 복식인 '기모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