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단국대 국악과에서 1980년대 초, 타악(打樂) 전공과 경서도 민요 전공을 신설하게 된 배경 이야기를 하였다. 일반적으로 대학 국악과의 전공과목은 기악(器樂)이 중심이었다. 이에 견줘 성악 분야는 그 뒤에 가곡(歌曲)과 판소리, 경서도창(京西道唱) 전공들이 신설되면서 해당 분야가 확대되었고, 이어 타악(打樂)이나 국악이론, 국악작곡 등도 전공 교과목으로 개설되었다. 특히, 타악 전공의 중요성은 벌써부터 인지되고 있었으나, 정작 전공분야로는 매우 늦게 선정이 된 셈이다. 서양음악의 지휘 형태와는 달리, 정악(正樂)과 민속악(民俗樂)합주에 있어서 지휘자의 역할은 바로 장고나 북 중심인데도, 타악기가 전공분야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를 일이다. 뒤늦게 타악 전공을 포함하게 된 것은 어쩌면 시대의 요청이 아닌가 한다. 현재, 각 대학에서의 세부 전공 분야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대체로 기악분야로는 피리, 대금, 해금, 거문고, 가야금 외에 소금과 단소, 아쟁, 타악(장고ㆍ꽹과리)등의 기악 분야 전공과 성악분야의 정가, 판소리, 경서도창, 그리고 국악이론과 작곡 분야가 전공 교과목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국악과가 신설되고 첫 입학생들과 함께 1984년 10월, 제1회 국악과 정기연주회를 열었을 때, 예상 밖으로 많은 관객들이 객석을 메웠고, 연주 결과와는 관계없이 분에 넘치는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는 이야기, 그러나 나와 학생들은 공개적인 발표 무대가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곳인가를 경험하게 되면서 곧바로 단국대 농장(충남 청양군 소재)에서 여름합숙 훈련(Summer Camp)을 시작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 합숙 훈련에는 84~85학번 입학생들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새로 입학한 타악 전공자들이 밤새도록 북, 장고, 꽹과리를 치는 소리가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꽹과리의 김병곤(대전시립 연정국악원), 김창석(단국대 강사), 이홍구(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전승희(대전시립 연정국악원) 등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여기서 잠시, 타악(打樂) 전공과 경서도 민요창 전공 분야를 신설하게 된 당시의 배경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국악계 흐름은 기악(器樂) 위주여서 대학 대부분이 기악 전공자 중심으로 입시가 이어졌다. 그 배경은 당시 국악을 전공으로 하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객석에 앉아, 국악과 동문들이 준비한 연주회를 지켜보는 동안, 나는 그들의 열정과 정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과 신설 40년, 또는 50년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대학의 동문들이 음악회를 준비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졸업생 스스로가 모교를 향한 애정과 열정이 없으면 불가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동문 연주회를 지켜보는 동안, 참으로 묘한 감정과 함께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 묘한 감정은 대표 제자들로부터 격려사를 요청받을 때부터 이미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쉽게 억제가 되지 않고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것은, 40년 전,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단국대학교 국악과>와 함께 한 시간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그려지는 회상(回想)은 1983년 흰 눈이 내리던 초겨울의 인상이다. 학교로부터 부름을 받고, 천안 교정을 들어섰을 때, 낯설고 어리둥절해하던 나에게 교직원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와 친절한 안내는 나를 너무도 편안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오래 남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단국대 국악과 창설 40돌 기림 동문연주회 관련 이야기로 악곡 선정에서부터 연습과정, 출연자들의 열의, 등등이 충실한 편이어서 음악회가 알차고, 수준이 높았다고 이야기하였다. 여러 종목이 선을 보였지마는, 특별히 김계희 동문이 생황(笙簧) 협연자로 나선 협주곡, <저 하늘 너머에>라는 작품은 생황 특유의 아름다운 음색도 음색이려니와 협연자의 자신감 넘치는 연주 태도, 그리고 독주악기와 관현악의 신비로운 대화, 등에서 관객은 압도당한 분위기였다. 생황협연곡과 함께 이원희 동문이 연주해 준 퉁소(洞簫) 협주곡 <풍전산곡>이나 박정숙 동문이 출연한 해금협주곡도 다양한 음색과 기교로 객석의 공감을 얻어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추임새를 쏟아낸 순서는 단연 <민요연곡>과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이었다. 민요연곡은 남도민요와 경기민요를 교차로 불러나가는 형식이어서 자칫하면 다른 음악적 분위기가 충돌하여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연습과정으로 이를 무난하게 풀어낸 점도 이채로웠다. 흔히 보면, 한 무대에서 음 체계가 다르고, 표현법이 같지 않은 두 부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한범의 우리음악 이야기』 700회를 맞으며 단국대 국악과 창설 40돌을 기려 동문들이 마련한 음악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다. 이 행사는 단국대 국악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100여 명의 연주 팀이 참여하였으며 졸업 30년이 넘어 40년이 다 되어가는 환갑의 나이가 된 동문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무대에 올린 음악회였다는 점, 공연 내용도 개인의 독주나 소규모 합주곡 위주가 아니라, 대규모 관현악과 협연곡 위주의 7곡을 발표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당일 연주된 7곡 모두는 협연자들과 관현악단과의 어울림이 무난하여 그동안의 연습과정을 충분히 들어내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선곡(選曲) 과정에서 퉁소협주곡, <풍전산곡>이라든가, 생황(笙簧)협주곡, <저 하늘 너머에>와 같은 곡들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이어서 객석의 반응이 집중되었던 순서였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먼저, 틍소협주곡 <풍전산곡-(風傳山曲)>과 관련된 소감이다. 이 곡은 바람이 전해 준 ‘산의 노래’라는 뜻으로 작곡자(계성원)은“산세가 험준하고 고원지대에 있는 함경도 지역의 민요 <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2011년 4월 1일 시작한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가 오늘(10월 8일)로 700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문화신문> 독자에게 쉬운 국악속풀이를 해주신 서한범 교수님께 <우리문화신문>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엎드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편집자 말) 『서한범의 우리음악 이야기』가 이번 주로 700회를 맞는다. 그동안 우리음악 이야기에 관심을 보내주시고, 댓글도 달아 주신 <우리문화신문> 독자 제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글쓴이가 지난 2년여, 601회~699회까지 소개한 이야기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었다. 지운하와 인천 남사당패 관련 이야기, 임방울 국악제와 2022년 대상을 받은 최잔디의 판소리 심청가 이야기, 고 백인영의 제자들이 올리는 10주기 추모제 관련 이야기, <춘천시립국악단>의 창단공연과 앞으로의 활동방향 이야기, 경기소리 과천대회 이야기, 경기 12잡가 중 어려운 노래, ‘적벽가’로 장원한 장은숙의 이야기, 고 성창순의 제자 어윤경이 스승을 기리며 부르는 ‘심청가’ 이야기, 조선 춤 방에서 만난 민천식의 ‘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