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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0년 전의 만남, 마치 어제의 일 같아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0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객석에 앉아, 국악과 동문들이 준비한 연주회를 지켜보는 동안, 나는 그들의 열정과 정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과 신설 40년, 또는 50년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대학의 동문들이 음악회를 준비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졸업생 스스로가 모교를 향한 애정과 열정이 없으면 불가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동문 연주회를 지켜보는 동안, 참으로 묘한 감정과 함께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 묘한 감정은 대표 제자들로부터 격려사를 요청받을 때부터 이미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쉽게 억제가 되지 않고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것은, 40년 전,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단국대학교 국악과>와 함께 한 시간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그려지는 회상(回想)은 1983년 흰 눈이 내리던 초겨울의 인상이다. 학교로부터 부름을 받고, 천안 교정을 들어섰을 때, 낯설고 어리둥절해하던 나에게 교직원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와 친절한 안내는 나를 너무도 편안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첫 입학생들과 함께 1984년 10월, 제1회 국악과 정기연주회를 열었던 당시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단국대학교 장충식 총장님을 위시하여 교수, 직원, 학생 등 단국 가족들이 자리를 함께했고, 각 대학의 국악과 교수와 명인명창, 나와 가깝게 지내는 선후배와 동료들, 그리고 학생들의 가족, 친지들이 참여한 가운데, 첫 발표회를 열었을 때의 일도 생생하다.

 

제1회 연주회가 잘 되고 잘못되는 결과와는 관계없이 분에 넘치는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는 결과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나와 학생들은 공개적인 발표 무대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대상인가? 하는 점은 매우 귀하게 경험하였던 것이다.

 

 

40년 전, 제1회 정기연주회를 경험한 나와 학생들은 다음 해부터 충청남도 청양군에 있는 단국대 농장에서 여름합숙 훈련(Summer Camp)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전공실기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학교 수업과는 별도로 합숙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학생들이 더 강하게 경험하였기 때문에 합숙 훈련이 다소 고되고 힘들었지만, 참여 학생들 모두는 별 이의 없이 잘 따라 주었다.

 

이처럼 학생들의 실기능력 향상이라는 목표가 분명하였고, 교수와 학생 사이 유대가 돈독해지고, 아울러 선후배 사이 친목 도모에도 큰 도움을 주었던 점에서 그 필요성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 청양 농장에서 실시했던 여름합숙 훈련을 생각하면 스스로 미소를 짓게 되는, 그야말로 잊히지 않는, 인상 깊었던 경험으로 남아있는데, 과정이 좋았기에 결과도 좋았다는 점이 우리 모두의 결론이었다.

 

특히, 10일 동안의 합숙훈련이 끝나는 날, 참여한 학생들 대부분은 눈물을 흘리며 유익한 경험의 기회를 서로 자랑삼아 이야기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다음 해부터는 합숙의 기간도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으기도 하였다.

 

합숙을 통해 어느 정도 실기 능력이 향상되면서 학생들은 개인적인 실기 능력은 물론이고, 합주의 묘미를 알게 되면서 자신감도 표출하였다. 자신감을 느끼게 되면서 우리들 모두는 뜻밖의 유익한 결과를 안겨 주기도 했다.

 

그 유익한 결과라는 것은 <86 아시안> 게임과 그로부터 2년 뒤에 열린 '88 서울올림픽'과 관련하여 <스포츠과학 학술대회>가 열렸는데, 우리 국악과가 이 대회에 특별 공연 팀으로 초대되어 성공적인 평가를 받게 된 것이었다.

 

 

우리 국악과의 이러한 긍정적 공연 평가는 그다음 해에도 이어졌다. 바로 미국 자매대학 순회공연에 초대되어 학교의 명예를 높이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사례들은 충청남도와 천안시의 지역적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그 지역적 관심이란 것이 바로, 천안시(市)가 준비하고 있던 <충남국악관현악단> 창단의 실마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90년대 후반, 단국대 국악학과는 천안 교정에서 서울캠퍼스로 이전을 하게 되면서 더욱 경쟁률도 높아졌고, 우수한 지원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또한 석사과정에 이어 박사과정도 신설되어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학위 취득이 가능해지면서 국악학과의 위상은 더더욱 상승곡선을 그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1999년도에 단국대 교강사, 졸업생들과 함께 <한국전통음악학회>를 설립하고, 실기 분야뿐 아니라, 국악학(國樂學) 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