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이 불화는 <감로도(甘露圖)>, 달콤한 이슬이 내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을 한번 바라보세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조금은 혼란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사람들, 신선, 관료, 아귀, 부처, 음식이 차려진 상까지 화면에는 수많은 요소가 펼쳐져 있으니 말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달콤한 이슬’이라는 이름과는 썩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감로’란 굶주린 영혼을 달래는 법식(法食), 곧 부처의 자비와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감로도>는 ‘수륙재(水陸齋)’라는 불교 의례와 관련이 있으며, 영혼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시식(施食) 의례에 두루 사용한 도상입니다. 수륙재는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귀(餓鬼) 등 모든 존재에게 구원의 감로를 베푸는 의식입니다. 따라서 <감로도>는 고통받는 모든 영혼에게 의례를 통해 타는 목마름을 달래줄 달콤한 이슬을 베푸는 그림입니다. <감로도>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영혼을 위로하는 감로와 그 속에 담긴 옛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림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아래에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조선 후기 괘불도인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하였다. 「달성 유가사 영산회 괘불도(達城 瑜伽寺 靈山會 掛佛圖)」는 1993년 도둑맞았다가 2020년 환수한 유물로, 화기(畫記)를 통해 1784년이라는 제작 연대와 ‘영산회’라는 주제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다. * 화기: 불화 하단에 제작 연대, 봉안 장소, 제작 목적, 시주자, 제작자 명단 등을 적은 것 도난 과정에서 화기 일부가 훼손되어 이 불화를 그린 승려들은 알 수 없지만 머리와 얼굴의 형태, 신체의 비례와 표현 감각, 각 도상의 배치와 곳곳에 쓰인 다양한 무늬 소재 등으로 볼 때 18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유성(有城) 화파(畫派)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괘불도는 석가여래를 압도적으로 크게 그리고,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을 화면 상단에 작게 배치한 삼신불 형식을 띠고 있다. 서산 개심사 영산회 괘불도(1772년)에서도 이와 같은 구도가 확인되지만, 본존이 앉아 있는 형태인 좌상(坐像)으로 표현된 괘불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이 시기의 괘불이 대부분 10m를 넘거나 이에 조금 못 미치는 데 반해, 이 괘불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문화재청은 지난 5월 27일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를 국보로 지정했습니다. 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이십여 년 만에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는 송광사 영산전에 봉안하기 위해 한꺼번에 그린 불화로, 영산회상도 1폭과 팔상도 8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의 생애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8개의 주제로 표현한 불화로, 팔상은 불교문화권에서 공통으로 공유되는 개념이지만 이를 구성하는 각 주제와 도상, 표현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초기에는 《월인석보(月印釋譜)》의 불교경전 내용이나 교리를 알기 쉽게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변상도를 빌린 팔상도를 그리다가 후기에 접어들면서 《석씨원류응화사적》에서 제시된 도상으로 새로운 형식의 팔상도가 유행하였는데, 후기 팔상도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순천 송광사 팔상도입니다. 현재 송광사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는 화기(그림의 제작과 관련하여 발원자, 작가 등의 내용을 담은 기록)를 통해 1725년(조선 영조 1)이라는 제작 연대와 의겸(義謙) 등 제작 화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