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49년(세종 31년), 세종은 황희와 하연을 영의정 부사로 삼았다. 황희는 재상의 자리에 있는 동안 너그럽고 후덕했으며 백성들의 여론을 귀담아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명재상으로 불렸다. 하지만 하연은 까다롭게 살피길 좋아하고 노쇠한 탓에 일을 할 때 실수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벽에다 한글로 ‘하 정승아, 또 공사를 망령되게 하지 마라.’라고 써 놓았다. 이 벽서를 쓴 사람은 하급 관리일 것이다. 세종이 가장 먼저 한글 교육을 시킨 대상이 하급 관리였으며, 잘못된 정책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도 하급 관리였기 때문이다. 이 벽서 사건은 백성 누구나 생각을 적어 알릴 수 있게 되었고, 백성과 관료, 백성과 백성 사이에 자기 생각을 소통시킬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Lower Officials Write a Notice in Hangeul In 1449 (the 31st year of Sejong’s reign), King Sejong appointed Hwang Hui and Ha Yeon as the Prime Minister and Vic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닫은 채 제 안의 마침표만 벼리는 세상, 슬픔은 공명(共鳴)되지 못해 비린 소음으로 흩어지고 기쁨은 맞장구 없는 독백이 되어 차갑게 식어간다. "그랬구나"라는 낮은 닻 하나 내리지 못해 서로의 진심이 유령처럼 부유하는 정적의 도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유려한 문장이 아니라 타인의 숨 가쁜 괄호 속으로 기꺼이 젖어 들수 있는 온기의 언어다. 이제 메마른 입술을 열어 잊힌 이름들을 불러내보자. 끊어진 서사를 잇는 가교가 되어 "그렇지", "암, 그렇구말고"라며 서로의 등에 다정한 곁불을 지피자. 서툰 춤사위 위로 "잘한다", "얼씨구"라는 눈부신 추임새를 던져 고립된 섬들을 하나로 묶는 화음이 된다면, 시린 여백뿐이던 우리의 계절도 비로소 타인의 심장 소리로 박동하는 축제가 되리라. 글 이윤옥, 그림 이무성 화백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두 달이 지난 1444년(세종 26년) 2월에 최만리를 비롯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이 한글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한글 창제는 중국을 떠받드는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학문에 정진하는 데 한글이 손해를 끼치며, 억울한 죄인이 생기는 것은 죄인을 다루는 관리들이 공정하지 못한 탓이지 죄인들이 문자를 몰라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중국의 것을 따를 것은 따르되 우리의 것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말했고,, 한글 창제는 학문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편안하게 쓰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세종대왕은 신하들을 설득해 더욱더 철저하게 한글 반포를 준비했다. The Officials Petition Against Hangeul Two months after King Sejong the Great created Hangeul, in February 1444 (the 26th year of Sejong’s reign), an incident occurred where officials, including Choi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바늘구멍 틈새로 황소바람 들이치니흙벽 사이 한기가 칼날처럼 매섭구나윗목 숭늉 사발은 이미 하얗게 얼었는데 낡은 이불깃 끌어당겨 시린 몸 녹여본다. 글 이윤옥, 그림 이무성 화백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목이자 민족문화의 수호자이셨던 이무성 화백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선생님은 1972년 새마을노래 제작을 총괄하시며 1,000여 작품의 음반을 기획하신 음악계의 거장이셨습니다. 특히 김민기 선생의 ‘아침이슬’ 음반을 기획하여 한국 민중가요의 새 지평을 여신 분이기도 합니다. 대도레코드사 전무이사로 35년 동안 재직하시며 한국 대중음악 발전에 헌신하셨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원, 한국음반산업협회 대의원으로 활동하시며 음악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음악인으로서뿐만 아니라 탁월한 화백으로서, 평생을 한국화와 역사 기록화를 그리며, 우리 민족의 정신을 화폭에 담아내셨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한국문화와 한글, 그리고 여성독립운동가 그림을 그리실 수 있었던 것은 <우리문화신문>과의 특별한 인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 2월 16일 첫 작품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무려 700여 편의 작품을 <우리문화신문>에 올리시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셨습니다. 이무성 화백님과 이윤옥 시인이 함께 여신 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은 <우리문화신문>이 서울 중구청 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15년 전 오늘(8월 29일)은 일제의 강압과 친일파의 결탁으로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딱 한 번, 나라를 빼앗긴 치욕의 날, 경술국치일입니다. 그 뒤 35년 동안 우리 겨레는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나라 밖 곳곳에 흩어져서도 해마다 국치일이면 세끼 밥을 굶었다고 합니다. 나라 잃은 아픔과 치욕을 각별하게 기억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상해임시정부도 국치일을 5대 기념일의 하나로 정해 해마다 행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광복 이후로 국치일은 달력에서, 그리고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국치일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날을 뭐 하러 굳이 기리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2차대전 패전일을 기억하려는 일본, 난징대학살을 절대 잊을 수 없다는 중국,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고난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등을 우리는 봅니다. 역사를 잊는 겨레는 미래가 없다고 합니다. 치욕스러운 역사를 기억해야만 뒷날 다시는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우리문화신문> 독자에게는 국치일 말고도 어제 세상을 뜨신 이무성 화백님을 길이 기억해야 합니다. 이 화백님은 2007년 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겨울보다 추운 '입춘 추위' 이윤옥 이제 곧 입춘이니 겨울이 다 갔다고 하던 사람들 입이 얼어붙었다 슬슬 두꺼운 옷을 집어 넣고 조금 가벼운 옷을 입으리라던 기대 마저 쑥 들어가 버렸다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것은 좋다 그렇다고 섣불리 방정을 떨면서 봄을 찬양하지는 말라는 듯 내일은 영하 10도란다 내일은 1월 그 어느날 추위보다 더 춥단다.
[우리문화신문=이무성 작가] 우리문화신문은 한국화가 이무성 작가의 그림에 이윤옥 시인의 시를 붙여 <이무성 작가의 그림 나들이> 방을 만들었습니다. 이무성 작가는 지난 2007년부터 우리문화신문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어언 18여 년 동안 수백 편의 그림을 그려주었습니다. 특히 한국문화 관련 그림을 맛깔스럽게 그려 우리문화신문의 격을 한껏 높여주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또한 이윤옥 시인의 여성독립운동가 관련 글에도 이무성 작가 특유의 그림으로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얼마 전 이무성 작가는 자신이 소중하게 보관하던 '원화'들을 우리문화신문사에 보내주었기에 우리문화신문은 <이무성 작가의 그림 나들이>에서 이를 시와 함께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그림 이무성 작가) 눈을 뚫고 봄을 알리는 '설중매' 이윤옥 네가 만일 눈 속에서 피어나지 않고 오월에 피는 뭇꽃들 속에 피어났다면 네가 만일 눈보라 속 추위를 뚫고 향기로운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았다면 수 많은 시인묵객들이 너를 어루만지며 사랑 고백은 하지 않았으리 너를 고요한 묵향 속에도 부르지 않았으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동지를 팔아먹지 마라 결코 팔아먹지 마라 혼절 속에 들려오던 아버님 말씀 새기던 나날 광야의 육사도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갔으리 뼈 삭는 아픔 숯 검댕이 영혼 부여잡으면서도 그러나 결코 비굴치 않았으리라 먼데 불빛처럼 들려오는 첫 닭 우는 소리를 어찌 육사 혼자 들었으랴. - 이병희(1918~2012) 애국지사 시 가운데- 동포들아 자유가 죽음보다 낫다 목숨을 구걸치 말고 만세 부르자 졸업장 뿌리치고 교문 밖 뛰쳐나온 열일곱 소녀 무안거리 가득 메운 피 끓는 심장소리 뉘라서 총칼 겁내 멈춰 서랴 항구의 봄바람 머지않아 불어오리니 삼천리 금수강산에 불어오리니 -김귀남(1904~1990) 애국지사 시 가운데- 의성 김 씨 김진린의 귀한 딸 시집와서 남편 이중업과 두 아들 동흠 중흠 사위마저 왜놈 칼 맞고 비명에 보낸 세월 쉰일곱 늘그막에 기미년 안동 예안 만세운동 나간 것이 무슨 그리 큰 죄런가 갖은 고문으로 두 눈 찔려 봉사 된 몸 두 번이나 끊으려 한 모진 목숨 11년 세월 그 누가 있어 한 맺힌 양가(兩家)의 한을 풀까? -김락(1863~1929) 애국지사 시 가운데- 이 시들은 필자가 지난 십수 년 동안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