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언어 사이 ‘중간언어’로서의 기능 기대한다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한글날이 들어있는 10월에 훈민정음 창제의 반대를 외친 최만리를 이어 조명해 본다. 결코 인간 최만리가 아닌 역사 속 최만리의 의식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다. 세종 25년(1443) 훈민정음을 창제했음을 알린다. 창제 몇 달 뒤 세종 26년(1444)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6가지 항의 상소를 한다.(지난 3항에 이어 나머지 항을 보자.) 1. (넷째) 만일에 말하기를, ‘사형 집행 같은 것을 이두 문자로 쓴다면, 문리(文理)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가령 옥에 갇혀 있는 죄수로서 이두를 해득하는 자가 직접 구두 진술을 읽고서 허위인 줄을 알면서도 매를 견디지 못하여 그릇 항복하는 자가 많사오니, 이는 글 뜻을 알지 못하여 원통함을 당하는 것이 아님이 명백합니다. 만일 그러하오면 비록 언문을 쓴다고 할지라도 무엇이 이것과 다르오리까. 이것은 형옥(刑獄)의 공평하고 공평하지 못함이 옥리(獄吏)가 어떠하냐에 있고, 말과 문자의 같고 같지 않음에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한다는
-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 2022-10-27 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