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정 박성춘이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98년 10월 29일 가을빛이 완연한 종로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양반과 천민, 선생과 학생, 양가 부인과 기생, 선비와 승려, 갓바치, 백정 등등 금방 수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다. 앞에 단상이 놓여있다. 행사 사회를 보는 독립협회 인사가 연설자를 소개한다. 그 순간 군중들 사이에 일순간 침묵이 흐른다. 이내 ‘우와…’ 함성이 터진다. 첫 연설자로 소개된 사람, 그는 뜻밖에도 박성춘이라는 백정이 아닌가. 박성춘이 뚜벅뚜벅 단상으로 걸어가 열변을 토한다. “이 사람은 대한에서 가장 천하고 무지 무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나라와 인민을 이롭게 하는 길은 관과 민이 합심하여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 차일(遮日: 햇볕가리개)에 비유하건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치면 역부족이지만 많은 장대를 합하여 받치면 그 힘이 매우 공고해집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관과 민이 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만만 년 이어지도록 합시다.” 청중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리고 박수가 터진다. 사회 저명인사가 아닌 천민 중의 천민인 백정이 만민 앞에 우뚝 선 것 자체가 뇌성벽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