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그녀만 만나면은 그녀만 만나면은 내 가슴 울렁울렁 거려 위 노래는 지웅 작사, 홍현걸이 작곡으로 윤형주가 부른 ‘꽃집의 아가씨’란 노래다. 예전엔 제법 알려져 많은 사람이 따라서 부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하철 신당역 지하도를 걷다 보니 꽃집이 하나 보인다. 꽃집에 전시된 꽃들이 참 예뻐 보이고, 문득 꽃집 안을 얼핏 들여다보니 꽃집 주인으로 보이는 아가씨도 윤형주 노래처럼 참 예뻐 보인다. 그런데 아쉽게도 간판은 ‘꽃집’이 아니라 ‘Flower shop’이다. 이 가게도 오는 손님 대부분이 내국인일 텐데 꼭 저렇게 영어로 써야 했는지 묻고 싶다. 이왕이면 ♥OO꽃집♥이라고 한글로 쓰고 그 옆이나 아래에 영어로 표기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한국외국외국어대학교 서울 이문동캠퍼스에 가니 학생들이 “韓國外大”라고 한자로 쓰인 점퍼를 입고 다녔다. “韓國外國語大學敎”라고 전체를 다 쓴 것도 아니고 줄여서 쓴 한자를 학교가 아닌 밖에서 보면 중국인들도 잘 이해할 수가 없을 듯싶었다. 그냥 “한국외대”라고 쓰면 될 터인데 세계 공통어라고 할 영어도 아니고 굳이 한자로 쓰는 까닭이 무엇일까? 지난 4월 17일에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의 우리문화편지에 고등학교 야구 중계에 나온 선수들의 운동복에는 학교 이름이 한자로 쓰인 것을 꾸중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사진을 보면 ‘全州’, ‘慶北高校’라고 한자로 쓴 운동복이 아니던가? 김 소장은 이 글에서 “운동복에 학교 이름을 쓰는 것은 자기의 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알리려는 뜻일 텐데 굳이 한자로 쓰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학교의 이름을 몰라도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라고 개탄하고 있다. 세계 으뜸 글자라는 한글을 가진 겨레가 이렇게 스스로 얼빠진 짓을 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얼마 전 우리는 제577돌 한글날을 지났다. 이때 많은 행사를 하는데 그런 정신으로 행사만 하면 무엇할까? 제발 스스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웃 사람 - 허홍구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가 가끔 낯선 분의 인사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웃음꽃 피우며 지나가신다. 어, 내가 아는 사람인가? 누구지 하고 궁금했었다 나는 모르겠는데 저분은 나를 어떻게 알까? 다음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해야지 그래, 우리 서로 모른다 한들 어찌 이웃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낯설어도 같은 동네 가까운 이웃이다. 예전 농가에서는 한로, 상강 무렵 가을걷이로 한창 바빴다.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를 보면 이때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쓸모없는 부지깽이도 필요할 만큼 바쁘고, 존귀하신 대부인까지 나서야 할 만큼 곡식 갈무리로 바쁨을 나타낸 말들이다. 이렇게 바쁘게 일하다 허기진 농부들에게 기다려지는 게 새참 때였고 이때 빠질 수 없었던 것은 막걸리였다. 막걸리는 이른바 '앉은뱅이 술' 가운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상하다 - 허홍구 마주 앉으면 싸우는 놈들 있다. 눈살 찌푸리게 하고 짜증 나게 한다. 더럽고 험한 말 하는 입에는 악취가 풍기지만 저들만 모른다. 거짓말 같은 참말도 있다고 하더라만 참말 같은 거짓말도 있다고 하더라! 누구의 입에는 오리발이 붙었다 하더라 곳곳에 땅이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나고 산불이 나고, 산이 무너지고 이상하다. 세계 곳곳에 기후도 이상해져 간다. 사람도 세상도 점점 더 이상해져 간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세상이고 자식은 또 부모를 죽이는 미친 세상이다 무엇이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 무슨 까닭일까? 그냥 있을 건가? 물속을 헤엄치면서 사는 오리발에 있는 물갈퀴가 뭍에 사는 닭에게는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우리 옛 속담에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라는 것이 전한다. 닭을 잡아먹고는 '내가 먹은 건 닭이 아니라 오리다.'라고 뻔뻔하게 시치미를 떼며 오리발을 증거랍시고 보이는 것에 빗댄 표현이다. 특히 정치판에서 정당이나 정당 내 파벌의 우두머리가 소속 국회의원과 주요 당직자들에게 명절이나 선거철 등에 비공식적으로 또는 정기적이나 부정기적으로 주던 음성적 활동자금도 오리발이라고 했다. 판공비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길가에 가다 보니까 한 커피 전문점 창구에 ‘오더 넣는 곳’이란 단말기가 있다. 나처럼 나이 든 사람에게 생소한 것이어서 무엇인가 몰라 한참 쳐다보았다. 조금 있으니 젊은이가 와서 단말기에 보이는 대로 커피 주문을 한다. ‘오더 넣는 곳’이란 말이 ‘ORDER HERE’을 곧 주문을 뜻하는 것인가 보다. 요즘은 주문도 사람이 받지 않고 기계가 받는다. 그런데 이처럼 ‘오더 넣는 곳’으로 쓰지 말고 ‘커피 주문하는 곳’이라고 쓰면 어디 덧나는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는가? ‘오더’란 외래어를 쓰는 것은 잘난 모습이 아니라 민족주체성을 버린 한심한 사람으로 비출 수 있음을 왜 모르는가?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길에 지나가다 보니 젊은이들에게 세련되었다고 느낄만한 건물이 하나 보인다. 무엇하는 곳일까? 그런데 간판은 작은 영어 글씨로 써놓았다. 잘 알 수가 없는데 마침 밖에 나오는 사람이 있어서 물어보니 카페란다. 왜 이렇게 영어로 작게 써놓았느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해야 젊은이들이 좋아한단다. 보아하니 외국인들이 주로 찾아오기보다는 내국인 손님이 대부분인 듯한데 굳이 영어로만 가게 이름을 쓴 가게 주인이나 이를 선호한다는 젊은이들이 참 안타깝다. 특히 가게에서 취급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간판에 쓰여 있지 않아 가게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무슨 가게인지 알 수가 없도록 한 것은 광고 효율성 면에서 볼 때도 잘못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출입금지 한다는 팻말을 달아 놓아 놓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장사 하나 하더라도 민족주체성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세계 으뜸 글자 ‘한글’을 가진 나라에서 이렇게 한글을 홀대하고 영어에 목맨 듯한 모습을 보면서 외국인들은 무어라 할 건지 두렵기만 하다.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어린이날을 앞둔 장충초등학교 정문 앞에 펼침막이 걸려 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9회 꿈을 먹고 살지요."라고 하여 우리말을 한글어로 써놓아 칭찬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옆에 달린 내용은 "HPPY CHILDREN'S DAY <Let's Go, Let's Play>"라고 온통 영어로만 써 놓았다. 굳이 영어로 써놓아야만 되는지 참으로 기가 막히다. 민족주체성이 결여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듯 하여 안타깝다. 조금 있으면 세계 으뜸 글자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그 세종대왕 탄신일을 우리는 스승의 날로 기린다. 하지만, 이렇게 위대한 스승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슬픈 눈물을 흘릴 것 같아 마음이 내내 무겁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가 면 - 허홍구 당신은 누굽니까? 늑대입니까? 양입니까? 언 듯 언 듯 더럽고 치사한 나의 얼굴도 보입니다 이제 우리 가면을 벗어 던집시다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그믐 전날, 탈을 쓴 방상씨(方相氏)가 <처용무(處容舞)>를 추면서 잡귀를 쫓아내는 놀이 곧 <나례(儺禮>를 했다. <처용무>는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처용가’를 바탕으로 한 궁중무용이다. 《삼국유사》의 <처용랑ㆍ망해사> 조에 보면 동해 용왕(龍王)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으로부터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있다. 그런데 처용무의 특징은 자기의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을 분노가 아닌 풍류와 해학으로 쫓아낸다는 데 있다. 우리 역사에 보면 <나례> 말고도 탈 곧 가면을 쓰고 놀았던 탈놀이들이 많은데 크게 황해도 지방의 ‘탈춤’, 중부지방의 ‘산대놀이’, 영남지방의 오광대ㆍ들놀음[野遊], 동해안지역의 ‘별신굿놀이’ 등이 있다. 그 탈놀이 가운데 고성오광대를 보면 말뚝이를 내세워 신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