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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연의 이육사 시화 40] 해조사(海潮詞)

[우리문화신문=마완근 기자] 

 

해조사(海潮詞)  

                                                                                  이육사

동방(洞房)을 찾아드는 신부(新婦)의 발자취같이
조심스리 걸어오는 고이한 소리!
해조(海潮)의 소리는 네모진 내 들창을 열다
이 밤에 나를 부르는 이 없으련만? 

남생이 등같이 외로운 이 서-밤을
싸고 오는 소리! 고이한 침략자여!
내 보고(寶庫)를 문을 흔드는 건 그 누군고?
영주(領主)인 나의 한 마디 허락도 없이. 

코카서스 평원을 달리는 말굽 소리보다
한층 요란한 소리! 고이한 약탈자여!
내 정열밖에 너들에 뺏길 게 무엇이료
가난한 귀향살이 손님은 파려하다.
 

올 때는 그리 호기롭게 올려와서
너들의 숨결이 밀수자(密輸者)같이 헐데느냐
-그것은 나에게 호소하는 말 못할 울분인가?
내 고성(古城)엔 밤이 무겁게 깊어 가는데. 

쇠줄에 끌려 걷는 수인(囚人)들의 무거운 발소리!
옛날의 기억을 아롱지게 수놓는 고이한 소리!
해방을 약속하던 그날 밤의 음모를
먼동이 트기 전 또다시 속삭여 보렴인가? 

검은 베일을 쓰고 오는 젊은 여승(女僧)들의 부르짖음
고이한 소리! 발밑을 지나며 흑흑 느끼는 건
어느 사원을 탈주해 온 어여쁜 청춘의 반역인고?
시들었던 내 항분(亢奮)도 해조처럼 부풀어 오르는 이 밤에. 

이 밤에 날 부를 이 없거늘! 고이한 소리!
광야를 울리는 불 맞은 사자(獅子)의 신음인가?
오 소리는 장엄한 네 생애의 마지막 포효(咆哮)!
내 고도(孤島)의 매태(莓苔)낀 성곽을 깨뜨려다오! 

산실을 새어나는 분만의 큰 괴로움!
한밤에 찾아올 귀여운 손님을 맞이하자
소리! 고이한 소리! 지축(地軸)이 메지게 달려와
고요한 섬 밤을 지새게 하난고녀. 

거인의 탄생을 축복하는 노래의 합주!
하늘에 사무치는 거룩한 기쁨의 소리!
해조(海潮)는 가을을 불러 내 가슴을 어루만지며
잠드는 넋을 부르다 오-해조! 해조의 소리

 


         
  * 해조(海潮) : 아침에 밀려들었다가 나가는 바닷물
            * 항분(亢奮) : 흥분, 경련
            * 매태(莓苔) : 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