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경북 상주 이윤옥 기자]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지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어리는 겨레라. 그러하므로 말은 겨레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겨레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겨레도 내리 나니라. 이러하므로 겨레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닦아지나니라”
이 말은 힌힌샘 주시경 선생의 <보중 친목회보> 창간호 1910년 6월호 ‘한겨레 말 ’가운데 일부이다.
오늘은 평생 겨레말을 올곧게 사랑하고 실천하신 주시경 선생의 102주기 날이다. 이 날을 맞아 경북 상주의 마음닦기 수련원인 푸른누리(대표 최한실)에서는 아침 8시 조촐한 추도식이 있었다. 오늘 모임은 <겨레말 살리는 이들>의 ‘배달 겨레말 여름 모임’을 위한 전국 모임이다.
*주시경 (1876.12.22~1914.7.27) 선생은?
국어학자로서 우리말의 정리와 보급에 크게 힘썼다. 그의 연구는 어문생활을 바로잡고 교육할 목적으로 행해진 것으로서 그 필요성은 이미 1897년의 〈국문론〉에서부터 강조되어온 것이었다. 암울한 시대에 국권을 회복하고 민족의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민족적 자각은 국민의 계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이 국어·국문의 연구와 보급을 열망하게 만들었다. 이는 곧 어문민족주의를 표방한 애국계몽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가 우리말과 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학을 배우면서였다. 한학의 까다로움을 체득한 그는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연구를 결심하게 되었고, 이는 일반 민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국문전용의 독립신문을 발행할 뜻을 갖고 있던 서재필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꽃을 피웠다. 그는 과로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급서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