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전도사’라고 불렸던 이재오 전 의원이 2016년 8월 17일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서 당시 언론에 보도되었던 낙동강과 금강의 녹조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녹조라고 하는 것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다. 덥고, 햇볕이 많이 내려쬐고 특히 금년처럼 30도가 넘는 날이 연일 이어지면 녹조는 생기기 마련이다. 4대강의 수질을 개선하려면 지천이나 하천을 정비해야 한다. 전국에 4대강으로 들어오는 지천이 300여 개가 넘는데 후속조치로 이를 꾸준히 정비하고, 지천에서 흘러들어오는 오폐수나 생활폐수의 수질을 개선해야 한다." 아직도 일부 국민들은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재오 씨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사실을 잘 모르고 왜곡한다고 해서 크게 탓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전문가가 사실을 왜곡한다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한국수자원학회 회장을 역임한 전문가인 심명필 교수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2015/11/28 인터넷 동아일보 보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자: 소위 ‘녹조라테’ 등 (4대강 사업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심교수: 그것 역시 조금만 길게 보고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 강에 녹조가 발생한 것은 자연 현상으로 그런 현상이 생긴 것이 4대강 사업 때문인지 판단하기 이르다. 올해(2015년) 생겼던 녹조현상이 내년, 또 2년 후에는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4대강 사업에서는 4대강 본류에 16개의 대형보를 막아서 많은 물을 저장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을 보로 막아서 물그릇이 커지면 수질이 개선될 것이라고 4대강 찬성론자들은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을 ‘물그릇 이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물그릇 이론은 얼핏 생각하면 매우 그럴듯한 주장이다.
“물그릇이 커지면 수질이 개선된다.”는 주장을 들었을 때에 많은 주부들은 국을 끓이는 경험을 떠올릴 것이다. 주부들은 경험적으로 안다. 국을 끓였는데 맛을 보니 조금 짜다. 주부는 물을 더 넣는다. 그러면 국물의 소금기가 묽어져서 국은 덜 짜게 된다. 마찬가지로 직장인들은 물그릇 이론을 들으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는 경험을 떠올릴 것이다. 커피가 조금 진하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물을 조금 더 부으면 커피는 연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4대강에서 보를 막아서, 즉 물그릇이 커져 수량이 늘어나면 수질은 개선되지 않겠는가?
필자는 2009년에 서울지방법원에 출두하여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증언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4대강 찬성론자였던 ㅂ교수는 콜라의 예를 들었다. “콜라를 컵에 따랐다. 거기에 생수를 더 부으면 어떻게 되는가? 콜라 색깔은 연해지고 농도는 낮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4대강에서 물그릇이 커지면 수질은 좋아질 것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럴듯하지 않은가?
당시 법정에서 필자는 물그릇 이론을 깰 목적으로 ‘소주잔 이론’을 설명했다. “판사님은 친구를 만나 저녁식사를 할 때에 소주를 마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소주의 알콜 농도가 얼마입니까? (당시 소주의 알콜 농도는 19도이었다.) 19도입니다. 소주를 작은 소주잔에 따르면 알콜 농도는 얼마입니까? 소주를 맥주잔에 채우면 알콜 농도는 몇 도입니까? 알콜 농도가 달라집니까? 소주를 바가지에 담아서 그릇이 커지면 알콜 농도가 달라집니까? 소주를 욕조에 가득 채운다고 가정합시다. 알콜 농도 19도가 달라집니까? 마찬가지로 4대강에 보를 막으면 물그릇이 커지지만 들어오는 물의 오염농도는 똑같으므로 수량만 늘어날 뿐 수질은 똑같습니다. 물그릇이 커진다고 오염농도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론은 그렇다 치고 현실은 어떠한가? 흐르던 강물을 보를 막아 고이게 하니 수질이 나빠져서 녹조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2011년 10월에 4대강 사업을 준공한 이후 2012년 여름부터 매년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에서 녹조가 발생하게 되었다. 녹조가 발생한 물을 컵에 담아보니 흡사 녹색의 라떼처럼 보인다고 해서 환경단체에서는 ‘녹조라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면 녹조는 왜 생기는 것일까? 앞에서 인용한 이재오 씨의 주장처럼 이상 고온현상으로 수온이 높아져서 나타난 것일까? 높은 수온은 녹조 발생의 필요조건의 하나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녹조가 발생하려면 3가지 필요조건이 동시에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는 높은 수온이다. 겨울에는 수온이 낮아서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 수온이 높아지는 기간에만 녹조가 발생할 수 있다. 둘째는 많은 영양염류가 필요하다. 녹조는 남조류(藍藻類)라는 이름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급격히 많아지는 현상이다. 모든 생물체는 먹이가 필요한데, 남조류는 특히 인(燐)성분이 많아지면 급격히 번식한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하천에는 공업용 세제, 인산 비료, 그리고 하수처리한 물이 흘러들어서 인의 농도는 충분하다.
셋째로 물의 체류시간이 길어야한다.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울 때에 수도꼭지를 조금 틀어놓으면 세게 틀어놓을 때에 비해서 욕조를 채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체류시간은 물그릇이 클수록 길어진다.
녹조는 이러한 세 가지 필요조건이 동시에 모두 갖추어지면 그 때에 발생하게 된다. 두 가지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겨울에는 수온이 낮아서 우리나라 하천 어디에서도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 소양강 호수는 상류에 오염원이 적어서 곧 인의 농도가 낮아서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 낙동강에서는 과거에는 강물이 흘러서, 곧 체류시간이 짧아서 녹조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낙동강에 8개의 보를 막아서, 곧 물그릇이 커져서 체류시간이 늘어나게 되자 여름에 녹조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4대강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듯 물그릇이 커지면 희석에 의해서 수질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체류시간이 늘어나서 수온이 높은 여름에 녹조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체류시간이 늘어나면 왜 녹조가 발생하는가? 조류(藻類)는 남한에서는 플랑크톤(Plankton)이라고 영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북한에서는 ‘떠살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사용한다. 떠살이는 ‘떠서 사는 생물’을 가리키는 매우 근사한 우리말이다. (우리가 북한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이처럼 외래어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언어 주체성이다.)
녹조를 일으키는 남조류는 스스로 광합성(光合成) 작용을 해서 영양분을 만들 수가 있다. 조류가 광합성을 하려면 햇빛을 잘 받아야 하므로 물 위에 떠서 살아간다. 흘러가는 물에서는 조류가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흘러가버리므로 번성할 수가 없다. 저수지처럼 물이 고여 있으면 조류는 한 곳에 머무를 수가 있어서 다른 조건이 맞으면 급격히 번성할 수가 있게 된다.
4대강 사업 후에 흐르는 강물이 4대강 보에서 정체되자, 곧 체류시간이 늘어나자, 수온이 높은 여름에 녹조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속담은 이러한 녹조 현상을 직관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낙동강에서 과거에도 녹조가 발생했는가? 과거에는 낙동강 하구둑이 생긴 후 물이 정체되는 하류에서만 녹조가 발생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이 끝나고 낙동강에 8개의 호수가 새로 만들어지자 낙동강의 하류는 물론, 중류와 상류에서도 녹조가 발생하게 되었다.
법정에서 증언할 때에 필자는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을 인용하였다. 그러자 4대강 찬성론자인 ㄱ교수가 증언하였다. “고인물은 썩는다는 속담은 감각적인 진리일 뿐 과학적인 진리는 아니다.” 오랜 동안의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속담까지도 부정하는 그 교수의 법정 발언을 듣는 순간 필자는 귀를 의심하였다.
유명 작가인 이외수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못 배운 자의 무지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배운 자의 억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