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비너스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주재하는 여신의 이름이다. 따라서 비너스의 동상은 고대그리스로마 당시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미학적인 감각과 동경을 그녀 한 몸에 담아서 정성껏 빚어낸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월이 퍽 흐른 뒤에 신화역사의 두터운 지층 속에 묻혀있던 그 비너스동상이 발굴되어 후세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처럼 아름다운 여신의 몸은 두 팔 없는 상태였다.
미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동상이 두 팔을 가진 원래 모습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한없는 아쉬움을 안고 사람들은 여신상의 원래 모습을 복구하려고 여러 가지로 시도하여 보았다. 팔을 들어 머리위에 손을 얹어보게도 하였고 팔을 내려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는 치맛자락을 쥐여보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자세를 취하든 만족스럽지 못하였으며 두 팔이 없는 비너스보다 못하게 보였다.
두 팔이 없는 비너스, 비너스는 두 팔을 버림으로써 후세의 우리들에게 무한한 상상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두 팔이 없는 비너스를 마주 보면서 저마다 각기 무수하게 많은 아름다운 팔을 비너스에게 달아주면서 가장 완미한(완전하여 결함이 없는) 자세를 그려보게 된 것이다. 두 팔이 없는 비너스 앞에서 우리의 상상은 무한히 나래를 펼쳐 끝 간 데 없는 공간을 넓혀 갔던 것이다.
상상은 이와 같이 우리를 이끌고 무한히 넓은 세계에로 내달리게 한다. 상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비너스의 동상에 무수한 형태의 팔을 달아주듯이 아무 것이든 다 이루어 낼 수 있으며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고 어떤 일이듯 마음껏 다 할 수 있다. 하늘을 날고 싶으면 하늘을 날고 바다를 가르고 싶으면 바다를 가르면서 거칠 것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상상의 세계이다.
이와 같이 풍부한 상상은 우리의 인생을 풍부하게 한다. 하늘을 나는 상상이 비행기를 만들어 내고 바다 속 깊이 닿는 상상이 잠수함을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상상은 우리에게 꿈을 낳게 하고 그 꿈이 움트고 눈을 떠 현실의 밑그림이 되고 그 밑그림은 2차원, 3차원으로 형태를 갖추어 내일의 모습을 이루어내었던 것이다.
“얼마만큼 생각하면 얼마만큼 큰다.”고 옛사람들이 가르쳤다. 자기 안에서 자기 울타리 안의 것만 보는 사람은 그만큼 좁은 것밖에 보지 못할 것이지만 눈을 들어 밖을 내다보고 고개를 하늘을 쳐다보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만큼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될 것이다. 공자 가라사대 “동산마루에 올라가 보고 노나라가 작은 것을 알고 태산에 올라가 보고 천하가 작을 것을 알았다.(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이 말과 같이 높은 곳에 올라 저기 먼 곳에 생각의 비둘기를 띄워 보낸다면 그만큼 크고 넓은 것이 가슴 속에 가득 들어차게 될 것이다.
비너스의 팔― 그 두 팔의 부재가 비워준 공간은 우리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최종적으로 우리들의 상상의 공간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완성하게 하였다. 상상은 이처럼 우리 생명에 활력소가 되는 비타민과 같이 우리의 정서에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주어 우리의 삶을 늘 싱싱하게 가꾸어준다.
그대들이여, 꿈을 꾸라.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치라. 저기 오늘보다 더 밝은 래일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