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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풍경

안데스의 여명 속에 피어난 산티아고의 노래

멕시코인 주방장이 정성껏 만들어 준 제육볶음과 비빔밥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멀리 아련하게 안데스산맥의 여명이 밝아오며 동쪽 하늘이 트이더니, 시끌벅적한 산티아고의 아침이 찾아왔다. 숙소 베란다 아래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모여 국기를 흔들며 외치는 소리와 지나는 차들의 경적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타국의 불안한 정국이 이 먼 땅까지 일렁이는 것이 못내 마음 쓰이면서도, 새로운 정치를 향한 그들의 집회가 아침 공기를 뜨겁게 달군다.

 

 

 

 

길을 나서 '산타루시아언덕'으로 향하는 길. 거대한 벽화 하나가 발길을 붙잡는다. 남미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미스트랄'을 기리는 벽화다. 그녀는 시인이자 외교관이었고 무엇보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머니 같은 교사였다. 벽화 속 그녀의 눈빛에는 소외된 이들을 향한 애정과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강인한 정신이 깃들어있다.

 

'산타루시아 '언덕은 시내 중심에 보석처럼 박힌 작고 예쁜 공원이었다. 마푸체족 전사의 조형물과 고즈넉한 성벽, 그리고 잘 가꾼 푸른 식물들 사이를 거닐며 시민들은 저마다의 휴식을 누린다. 언덕을 내려와 들른 가브리엘 미스트랄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80년 전 노벨상의 영광보다 더 깊게 뿌리내린, 한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무게를 실감한다.

 

 

 

 

 

다음 날 찾은 '산크리스토발' 언덕은 푸니쿨라와 케이블카가 연결해 주는 하늘정원 같았다. 정상에서 팔을 벌리고 도심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성모상이 이채롭다. 산 정상에 이토록 장엄한 성모상을 세운 곳이 세계에 또 있을까 싶어 인상적이었다.

 

돌아오는 길, 칠레 제1국립대학 근처 지하철역 지하벽면에서 또 한 번 압도적인 벽화를 마주했다. '지하도의 시각적 기억'이라 불리는 '마리오 토랄'의 이 거대한 작품은 정복 이전의 시대부터 독재의 아픔을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칠레의 영광과 상처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지하 공간을 채운 강렬한 색채와 형상들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 산티아고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과 역사를 끊임없이 속삭이는 듯하다.

 

산티아고의 여름은 3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볕을 가졌지만, 지중해성 기후답게 습하지 않고 상쾌하다. 열흘 이상 이어진 칠레 남부 여행에서 전혀 맛보지 못한 한국 음식이 그리워 질 즈음 '보글보글'이라는 작은 가게를 만났다. 멕시코인 주방장이 정성껏 만들어 준 제육볶음과 비빔밥 한 그릇을 싹 비웠다. 한국 아줌마의 엄지척! 칭찬에 고무되어 주방에 웃음이 가득했다.

 

 

 

근처 젊은이들이 많은 쇼핑몰에서 만난 '빨리빨리' 간판과 BTS사진은 우리 문화가 이 먼 땅 젊은이들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 들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숙소로 걸어오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한 무리의 젊은이를 보았다. 그런데 자전거 전용도로가 대로 한가운데로 나 있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 버스 전용도로처럼 말이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통의 무게와 역동성, 그리고 예술의 숨결이 공존하는 산티아고! 그 뜨거운 여름날의 기억이 안데스의 바람처럼 시원하게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