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새해 아침의 떡국
가족 둘러앉아 새 아침 떡국 (달)
그런 날 얼마나 오래 전인가 (돌)
핏줄 공동체마저 깨진 시대 (초)
인공지능 시대 준비하나 봐 (심)
... 26.1.1. 불한시사 합작시
어느새 세월이 흘러, 새해 아침이면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떡국을 먹던 풍경은 이제 그립고도 아련한 기억이 되었다. 부모와 부부, 아들딸과 손자들까지 한 상에 모여 앉아 후룩후룩 김 오르는 떡국을 나누어 먹던 대가족의 아침. 그런 시간이 과연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마음을 스친다.
왜 하필 새해 아침의 떡국이 떠올랐을까. 대가족 문화의 소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눈이 소복소복 쌓인 차갑고 시린 새해 아침, 부엌에서 피어오르던 국물의 김과 그 온기는 단순한 물질적 온도로만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해를 함께 시작한다는 마음의 온기였고, 혈연 공동체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던 의식과도 같았다. 농경사회의 전통 속에서 자라난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저마다 이런 기억 하나쯤을 품고 있을 것이다.
밥과 떡은 농경사회가 시작된 이래 오랜 세월 우리의 주식이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먹는 떡국, 곧 백탕(白湯)ㆍ병탕(餠湯)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늦은 시기에 나타난다. 문헌상으로는 조선 정조 19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기록에서 유사한 형태가 보이며, 이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백탕과 병탕이라는 이름이 분명히 등장한다.
그러나 기록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떡국은 훨씬 오래전부터 새해를 맞는 음식으로 자리 잡아 왔을 가능성이 크다. 흰 떡과 맑은 국물에 담긴 정결함과 새로움의 상징성은, 한 해의 시작에 더없이 어울리는 것이었을 것이다.
떡국은 우리 전통 음식 가운데서도 유난히 소박하면서도 품격이 있다. 귀한 재료를 쓰지 않아도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 그릇씩 돌아간다. 그 한 그릇에는 나이 한 살을 더한다는 의미,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새 시간을 맞이한다는 다짐,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있음’이라는 공동체의 감각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새해 떡국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떡국을 둘러싼 풍경,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국을 나누던 가족의 온기와 인정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듯하다. 식어가는 떡국을 앞에 두고, 우리는 단지 음식 하나를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깃들어 있던 시간과 관계의 밀도를 함께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옥광)
|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행 44자로 정착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으로 싯구를 주고받던 옛선비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