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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편강렬 의사, ‘동경에 조선인 총독을 두겠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1년 전인 1929년 오늘(1월 16일)은 독립운동가 편강렬(片康烈) 의사가 순국한 날입니다. 편강렬 의사는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당하고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16살의 어린 나이에 직접 의병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때 이강년(李康年) 의병장을 찾아가 군사를 모집하는 소모장으로 발탁되었지요. 1908년 3월 각도 의병대장들은 이인영(李麟榮)을 13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였는데 이때 이강년 의병진의 선봉장으로 발탁되어 100여 명의 선발대를 인솔하여 양주에서 일전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군사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퇴하였습니다.

 

그 뒤 구월산주비단사건(九月山籌備團事件)에 관련되어 해주형무소에서 1년 동안 복역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형무소를 수차례 드나들었으며, 1923년 7월 산해관(山海關)에서 김이대(金履大), 백남준(白南俊) 등과 함께 의성단(義成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었습니다. 의성단은 장춘(長春), 길림(吉林) 등 대도시를 활동무대로 삼아 남만주철도주식회사 파괴, 조선총독과 관동장관 암살, 조선 내 관공서 파괴, 군자금 모집을 주된 활동목표로 삼았지요.

 

 

그러다 1924년 7월 24일 의성단에 잠입하여 밀정 활동을 하던 승정윤의 밀고로 하얼빈에서 체포되었고,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되었으며, 9월 27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제1회 공판이 열렸는데 이때 편 의사는 “처음에는 동지를 규합할 결심이었고, 그다음에는 20만 명의 부하를 인솔하고 원수를 갚겠다는 결심, 마지막으로는 나의 목숨이 떨어질 때까지 싸우고 싸워 동경에 조선인 총독을 두려고 결심했다.”라고 호언하였지요.

 

1925년 3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되었고, 신의주형무소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하였는데 옥중에서 인후병, 폐렴, 결핵, 척수염 등을 앓았습니다. 결국, 척수염이 악화하여 1927년 4월 15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지만, 1929년 1월 16일 순국하였지요.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