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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큰 반향 일으킨 도올 독립운동사 다큐멘터리

우린 너무 몰랐다 2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으면서 철학자인 도올이 어떻게 현대사에도 정통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풀렸습니다. 2004년에 EBS에서 <명동백작>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하였습니다. 명동을 무대로 활동하던 박인환, 김수영, 전혜린, 변영로, 이봉구 등 문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 것이지요. 명동백작은 이봉구의 별명입니다. 명동에 가면 명동예술극장 근처에 ‘은성주점 터’라는 표석이 있습니다. 이들이 드나들던 술집이 있던 곳을 알리는 표석이지요. 이 은성주점은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술집입니다. 명동에 나가실 일 있으면 한 번 이 표석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도올이 이 드라마의 광팬이었던 모양입니다. 도올은 드라마가 종영되는 날 밤 새벽에 흥에 겨워 <명동백작>이라는 시를 하나 씁니다.

 

오랜만에 보았다

명동의 백작들을

...

김수영처럼 무엔지도 모르는 말장난이 아닌

물흐르듯 토해내는

피를 잉크 삼아

끄적거리고 싶어졌다

평범을 거부하며

자유를 구가하고

순간의 해탈을 위해

삶의 시각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려야 했던

그 군상들의 군더더기조차

이젠 소중한 생명의 저음

........

이 짧은 자유라도 만끽할 수 있다는

이 역사의 굼벵이 걸음마에

우리는 경의를 표해야 한다

조선의 아침과 선명함이

우리 영혼의 안식이 될 때까지

 

도올은 이 시를 써서 EBS 사장실로 보냅니다. 이 시를 본 고석만 사장이 도올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EBS는 광복 60주년을 앞두고, 그 광복 환갑의 날을 전후하여 새로운 국가정체성을 확립하는 기념비적인 독립운동사를 방영하는 것을 EBS 최대 프로젝트로 기획하고 있었답니다. 그걸 도올에게 맡아달라고 한 것입니다. 도올은 전문가들도 엄두를 못 내는 이 마당에 백지의 문외한에게 이 거대한 국가사업을 맡기려는 고석만의 깡다구도 정말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도 고석만 못지않은 깡다구가 있다고 합니다. 도올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깡다구는 1,000% 무지에서 나오는 깡다구였는데 그것은 순결한 향학심의 발로였다. 하여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전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배움에 대한 매력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까짓것 공부하면서 해결하지! 어떤 사람은 뛰기 전에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먼저 뛰고 난 후에 생각한다고 했는데, 나는 뛰면서 생각해야만 한다. 우선 뛰자!

 

고석만의 제의를 수락한 도올은 그날부터 독립운동사에 무섭게 파고듭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가 된 뒤에는 4달 동안 러시아, 중국, 대만, 한국, 일본 등 독립운동과 관련되는 모든 곳을 직접 발로 밟고 다닙니다. 그리고 도올 자신이 각본을 쓰고, 출연하고, 감독하고, 기획하고, 현장에서 멘트하고 내레이션을 합니다. 그렇게 하여 약속된 날짜에 도올은 제작한 다큐멘타리를 EBS에 납품하고, 이 다큐멘타리가 EBS의 전파를 타면서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요.

 

 

저도 이 다큐멘타리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당시 이 다큐멘타리를 보면서 ‘도올이 현대사까지 하나?’ 하며 의아해하였는데, 거기에 이런 숨은 비화가 있었군요. 저는 이 다큐멘타리를 보면서 우리 선조들이 피땀 흘리며 독립운동한 역사를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참 부끄러움을 느꼈지요. 그리하여 도올의 다큐멘타리를 계기로 독립운동사에도 관심을 두고 그 후 안중근 아카데미에도 등록하였습니다.

 

당시 도올이 우당 이회영 선생이 체포된 대련의 세관 건물 앞에서 내레이션을 하며 울먹울먹하던 생각이 납니다. 도올이 저렇게 울먹울먹하며 내레이션을 하는 우당 선생은 어떤 분일까? 그래서 곧바로 우당 선생에 관해 공부하였습니다. 삼한갑족이 그 많은 재산 팔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자신의 가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정말 우당 선생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우당 선생을 제가 제일 존경하는 독립운동가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하여튼 당시 도올 덕분에 선열들의 고귀한 독립운동사에 눈을 떴었는데, 이번에는 도올 덕분으로 해방 이후 어지러운 공간에서 일어난 비극인 4.3 민중항쟁과 여순 민중항쟁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겠군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