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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부당한 명령 거부, 295명을 살린 경찰

우린 너무 몰랐다 6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해진 오스카 쉰들러(1908~1974)라고 아시지요? 쉰들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유대인 약 1,200명을 자신의 공장 노동자로 빼돌려 자기 재산을 소모해가며 끝까지 지켜낸 독일계 체코인 사업가입니다. 한국에도 그런 의인이 있어 한국판 쉰들러라고 불리지요. 도올의 책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으면서 알게 된 한국의 쉰들러는 바로 6. 25 당시 제주 성산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문형순 경감(1897~1966)입니다.

 

 

문 경감은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직전에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입니다. 그는 광복 뒤 경찰에 투신하여 1947년 7월 제주도로 부임합니다. 그다음 해에 4.3 민중항쟁이 발생하였으니, 문 경감은 4.3 민중항쟁을 직접 몸으로 겪으신 분입니다. 1948년 12월 말 무렵에 진압군인 제9연대는 여순진압 작전에 공적을 세운 제2연대와 맞교대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9연대는 떠나기 전에 자기들도 제2연대의 여순진압에 필적할만한 공적을 세우기 위해 군인으로서 기본적인 양심도 버립니다.

 

곧 이들은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사라진 사람이 있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며 가족들을 모두 총살하고(이른바 代殺), 자수하면 살려주겠다고 해놓고는 정작 자수하자 자수자들을 모아 총살합니다. 그런가 하면 무장대 복장을 하고 마을을 찾아가 이들이 협조하면 무장대에 협조하였다고 총살합니다. 이른바 함정토벌이지요.

 

그런데 이런 함정토벌은 자발적 협조자만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무장대 복장을 하고는 총을 들이대며 강압적으로 협조하게 하고는, 겁에 질려 협조한 사람들도 총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협조자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싸그리 죽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경감은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도 자신에게 자수한 사람들은 다 훈방조치로 목숨을 살려줍니다. 일제경찰 출신이었으면 감히 이러지 못하였을 텐데, 광복군 출신 경찰관은 역시 다르군요.​

 

4.3의 비극은 4.3이 끝나면서 바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4.3으로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있던 사람들은 6.25 전쟁이 일어나자 교도소에서 살해됩니다. 당시 4.3 구금자들은 제주도 내 교도소만으로 다 수용할 수 없어서 전국 각지 교도소로 흩어져 수용되었는데, 이들이 6. 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다 살해된 것이지요. 그리고 구속되지 않았더라도 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을 예비구금한 뒤 이들의 등급을 분류하여 사살하였습니다.

 

1950. 8. 30. 당시 성산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문 경감에게도 예비구금 중인 C급, D급을 총살하라는 제주계엄군 소속 해병대 문서가 하달됩니다. 여기서 문경감의 깊은 고민이 시작됩니다. 문 경감이 보기에 이들은 결코 총살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민고민 하던 문 경감은 하달된 문서 상단에 이렇게 씁니다. “不當(부당)하므로 不履行(불이행)”

 

 

지금도 게엄령 하에서 이렇게 하달된 문서에 부당하므로 이행하지 않겠다고 쓸 수 있는 경찰관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아마 문 경감이 담배 피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문 경감 책상 위의 재떨이에는 타다 만 담배꽁초가 무수히 쌓였을 것 같습니다. 문 경감이 이렇게 명령 불복종하면서 구해낸 목숨이 295명입니다. 그렇기에 문 경감을 한국판 쉰들러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이런 올곧은 경찰관이 자유당 독재정권 아래 독재의 주구로 활동하는 경찰에서 제대로 클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문 경감은 1953년 경찰에서 퇴직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이런 일 저런 일 하다가 마지막에는 극장 매표원으로 일하던 중 1966년 쓸쓸히 눈을 감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신의 장례를 치러줄 후손도 두지 못하고요. 경찰에서도 이런 문 경감을 뒤늦게 높이 사 2018년에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뽑았습니다. 과연 경찰 영웅으로 뽑을 만하지 않습니까?

 

도올은 경찰의 날에 대해서도 한마디 합니다. 10월 21일이 어떤 연유로 경찰의 날이 되었는지 아십니까? 10월 21일은 조병옥이 미군정청 경무국 경무과장에 취임한 날이라고 합니다. 한 인물이 경무과장에 취임한 날을 경찰의 날로 기린다는 것은 그만큼 조병옥을 경찰에서는 높게 친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도올에 따르면 조병옥이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가였지만, 광복 뒤 경찰총수가 되면서는 친일파 경찰을 대거 등용하고 미군정의 주구 노릇을 기쁘게 했답니다.

 

그러므로 어찌 이런 인물이 경무과장에 취임한 날을 경찰의 날로 기려야 하느냐며 통탄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도올은 백범 김구가 1919. 8. 12.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취임한 것을 기려서, 오히려 8월 12일을 경찰의 날로 기려야 한다고 합니다.

 

도올 덕분에 문형순 경감이라는 존경할 만한 경찰관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검경 수사권 분리 독립으로 비대해진 경찰권력이 앞으로 어떤 칼을 휘두를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형순 경감 같은 경찰관들이 많이 나오고, 또 문 경감을 존경하는 경찰관들이 많아진다면 그런 걱정을 잠재울 수 있는 그야말로 민중의 지팡이로 거듭나는 경찰이 될 수 있겠지요. 꼭 그런 경찰이 되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