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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10년 오늘, 안중근 의사 순국하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30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여한이 없겠노라.” 이는 순국 직전 동포들에게 남긴 의사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1910년 오늘(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날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새벽 하얼빈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브러우닝 권총으로 처단했습니다. 당시 러시아군에 의해 체포될 때 의사는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연호하였다고 합니다. 의사는 거사 직전 "여러 해 소원한 목적을 이루게 되다니. 늙은 도둑이 내 손에서 끝나는구나!" 하며 남몰래 기뻐하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안중근 의사의 재판은 일본인들 만에 의해 형식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2월 14일 공판에서 의사는 일제의 각본대로 사형을 선고받았지요.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의사는 이후 공소도 포기한 채, 여순감옥에서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의 저술에만 심혈을 쏟다가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