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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국가는 말글문제에 끼어들지 말라고?

한겨레신문 김진해의 <말글살이>를 꾸짖는다

[우리문화신문=김영환 교수]  한겨레신문이 연재하는 김진해 님의 글 <말글살이>(6월29일 치, ‘말을 고치려면’)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언어는 퇴행하지 않고 달라질 뿐, 걱정도 개입도 말라’는 내용이었다. 말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회적 개인’의 몫이며 국가는 개인의 말에 대해 ‘맞고 틀림’을 판정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말의 발산과 수렴’의 장마당(언어시장)이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민간 자율을 내세워 정부가 경제정책에 개입하는 것을 금기로 아는 하이에크류의 신자유주의를 언어 영역에까지 적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외국 이론을 들여와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우리가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다. 동시에 말글이 갖는 역사성과 문화성을 부정한 이론이다.

 

김진해 님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처럼 시장(선)-국가(악)이란 이분법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조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언어학에서도, 한때 유행하다가 지금은 잊힌 이론이다. “‘쉬운’ 한국어는 단어가 아닌 글쓰기나 말하기 역량의 문제이다.”라고 하였으나 쉬운 말은 우선은 낱말의 문제다. “異民族箝制의痛苦를嘗한지今에十年을過한지라.”보다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 년이 지났다.”가 쉬운 것은 낱말의 문제다.

 

 

혁명가와 구경꾼의 사이를 흐른다는 큰 강도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쉬운 말 쓰기는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언어 민족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려운 글자, 어려운 말은 대부분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도 시간적 공간적 맥락에 따라 여러 얼굴로 나타난다.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분단된 채 강대국에 둘러싸인 환경 탓이며 능동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삶을 위하여 강요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

 

지배층의 뿌리 깊은 사대주의와 외래어 그리고 외국 문물 숭배가 늘 문제였다. 가장 빼어난 글자 한글을 ‘언문’이라며 멸시하였다. 강화도 조약(1876) 3관은 "장차 양국의 왕래공문에 있어 일본은 자기 나라 국문을 쓰되 지금부터 10년간은 한문 역본 한 통을 따로 갖추고 조선은 진문(眞文)을 사용한다." 1899년 한청통상조약 15관은 “한중 양국은 본래 같은 글을 써 왔다. 이번에 체결한 조약 및 앞으로 공문서는 모두 중국 글을 사용하여 간이하게 한다”

 

어느 모로 보나 조선은 독자적 글자가 없는 나라로 너무나 쉽게 언어 주권을 포기하고 있다. 최소한의 정당한 자기주장마저 없음에 우리는 무척 당황하게 된다.

 

경제 영역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약육강식을 낳았던 신자유주의를 대표적인 공공자산인 언어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강대국의 ‘밥’이 되기를 스스로 바라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민족주의도 그늘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민족주의란 죄다 버려야 할 것인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글을 스스로 무시해 온 역사적 맥락을 애써 기억할 필요가 있다.(6월22일 치에 실린 ‘한글의 역설’도 문제가 많으나 여기서는 일단 결론만 말해 두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