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위는 김광규 시인의 “대장간의 유혹”이란 시입니다. 우리는 조선 풍속도의 대가라고 하면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 ~ ?)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 김홍도의 그림 가운데 “대장간”이 있는데 또 다른 풍속화가 김득신(金得臣, 1754 ~ 1822) 그림에도 “대장간”이 보입니다. 김득신은 김홍도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 김득신의 ‘대장간’은 김홍도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먼저 김홍도의 그림에서 보이던 대장장이가 아닌 낫 갈던 녀석을 김득신은 과감히 빼버렸습니다. 대신 대장장이들이 훨씬 젊고 힘 있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김홍도는 대장간을 사실 그대로 그렸지만, 김득신은 생략할 건 생략하고 그 대신 대장간에 걸맞게 생동감 있고, 힘 있는 표현을 하고 있지요. 또 한 가지 더 김홍도의 "대장간"에는 배경이 생략되어 있으나, 김득신의 "대장간"에는 배경이 그려져 있는 점도 다릅니다. 이제는 그 많던 대장경 풍경은 사라지고, 그림이나 시로만 우리 곁을 지키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