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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탈원전은 정말 성급한가?

독일은 이미 30기를 중단시키고 6기만 남아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4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배출원은 화력발전소다. 전국에 있는 60기의 석탄 화력발전소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28%, 국내 발생 미세먼지의 10%를 차지한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가장 먼저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화력발전소를 중단한다면 전기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석탄 화력발전의 대안으로서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아래 원전이라고 줄임)이 거론된다.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서 점점 중요해진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원료가 공짜고, 화력발전의 단점인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이다.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1) 화력발전은 단계적 폐쇄 2) 원전도 단계적 폐쇄 3) 재생에너지는 대폭 확장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했다. 세 가지 목표 중에서 두 번째인 원전의 단계적 폐쇄에 대해서는 국론이 분열되어 있다. 화력발전을 줄이자는 목표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이 반대하고 있다.

 

탈원전 활동가들이 ‘원전 마피아’라고 깎아내려 부르는 원자력 업계는 원자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밥그릇이 걸려 있기때문에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는 원전 산업의 진흥을 촉진하기 위하여 2010년에 12월 27일을 ‘원자력의 날’로 제정하여 법정기념일로 선포할 정도로 친원전 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탈원전에 대한 최근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반대가 많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보수 언론의 영향으로 보인다. 조중동과 경제지 등의 보수 언론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기사를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 왜 그럴까? 한겨레에서는 2020년 11월 24일자 “조선일보와 경제지들은 왜 ‘탈원전’을 싫어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추정하였다.

 

“보수언론과 경제신문 등이 원자력 발전의 긍정적 면을 주로 보도하는 데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나왔다. 2017년 공개된 한국수력원자력 광고비 집행 내역(1~7월)을 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및 그 계열사에 가장 많은 광고비가 집행됐다.”

▶ 기사 원문보기:

 

내 주변에서도 동창생이나 친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전은 사고가 나면 위험하고, 재생에너지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재생에너지는 아직은 원전에 견줘 비싸므로 당분간은 원전을 이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방향은 좋지만, 경제성 측면에서 시기상조이며 성급하다는 주장이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야당의 반대는 분명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20년 11월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원자력 바로 알리기 전국 릴레이 특강'에서 "에너지 전환은 수십 년이 걸리는 중요한 정책인데 문재인 대통령과 측근은 '판도라'라는 잘못된 영화를 보고 이상한 편견과 확신에 사로잡힌 것 같다"라고 탈원전 정책을 공격했다. 경제학자 출신인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전세계에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르네상스가 벌어지고 있다"라며 영국이 2030년까지 44개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려 하고, 러시아는 24기, 인도도 24기를 지으려 한다"라고 발언하여 간접적으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필자는 여기에서 탈원전 정책의 각론에 대해서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원전 관련 보도를 관심있게 추적하면서 일게 된, 탈원전 정책에 대한 일반인들의 분명한 오해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1. 문재인 대통령이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묘사한 영화 판도라를 보고서 탈원전 정책을 결정했다는 설은 명백한 가짜 뉴스이다. 영화 판도라는 2016년 12월에 개봉되었다. 정치인 문재인은 낙선한 2012년 대선에서도 이미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탈원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오래된 소신이다.

 

2.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의 르네상스가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은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오류다. 전 세계 원전 발전 비중의 변화를 살펴보면 1995년 17.7%, 2005년 15.1%, 2015년 11.1%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2017년 기준으로 OECD 35개국의 원전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5개 국가가 탈원전을 추구하고 있다.

 

탈원전의 선두 주자인 독일은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때 원전 발전 비중이 75%까지 차지했던 프랑스는 2035년까지 원전 비중을 50%로 감축하는 탈원전 노선을 밟고 있다. 이탈리아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투표에서 95%의 찬성으로 탈원전을 선택하였다.

 

3. 탈원전 정책은 성급하지 않다. 정부가 2017년 6월에 선언한 탈원전 정책은 매우 소극적인 연착륙 정책이다. 우리나라는 24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건설 중인 2개의 원전은 중단 없이 계속 건설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것이 탈원전 정책의 핵심이다. 현재 가동 중인 24개의 원전과 건설 중인 2개의 원전은 설계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운영될 것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원전이 모두 퇴장하는 해는 탈원전을 선언한 후 60년이 지난 2077년이 될 것이다.

 

무려 60년 동안 서서히 원전을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탈원전 정책을 성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답답할 정도로 느린 정책이다. 수도권 주민들은 거리가 멀어서 못 느끼겠지만 부산, 울산, 포항, 경주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은 지진 위험이 상존하는 원자력 발전소 가까이에 살면서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참고로, 독일은 36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중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은 이미 30기를 중단시키고 6기만 남았다. 독일은 불과 1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모든 원전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4. 원전은 경제성이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정확하다. 필자는 수십 년 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원자력은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배웠다. 내 주변 사람들은 자기가 본 신문, 잡지, 유튜브에서 본 통계를 인용하면서 원자력이 재생에너지보다 발전 단가가 싸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맹점이 있다. 원전의 발전 단가 분석에서 건설비용과 운영비용만 고려하고 원전 폐쇄 후에 발생할 해체 비용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비용을 대부분 고려하지 않는다.

 

수명이 다한 원자력 발전소는 핵폐기물의 방사능 때문에 해체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2017년에 폐쇄된 고리1호기를 해체하는 데 15년이 걸리고 해체비용은 8,129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였다. 해체비용 외에도, 원전을 가동하면서 만들어진 핵폐기물의 처리 문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2017년 산업자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비용을 53조 원으로 추산하였다. 그러므로 원전 1기당 1조 원 이상의 폐기물 보관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다. 해체비용과 핵폐기물 보관비용을 포함하면, 원전은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탈원전 정책을 계속 추구할 것인가 친원전으로 복귀할 것인가는 2022년 대선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것 같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020년 10월 26일 탈원전 정책에 대해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노후 원전은 폐쇄하고, 무리한 수명 연장은 중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재명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탈원전은 가야 할 길…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안 됩니다'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싸고 효율 높은 원자력 의존도가 높아 국토 대비 원전 수 세계 1위, 원전밀집도 최고를 자랑합니다. 원전 인구밀도 역시 최상위로 후쿠시마 원전 (30km 이내) 주변 인구가 17만 명인 데 비해 고리는 380만 명이나 됩니다. 2016년 경주, 2017년 포항의 진도 5 이상 대규모 지진은 더 이상 우리가 지진 안전국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이로써 월성, 고리 등 인근 원전지역의 안전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제기되었습니다. 지역 주민들 역시 지금껏 불안한 마음으로 원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원전을 경제 논리로만 따져 가동하는 일은 전기세 아끼자고 시한폭탄을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 이상 물질적 풍요를 누리겠다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뒷전에 둘 수 없습니다. 우선순위가 바뀌면 언젠가 우리도 후쿠시마 같은 위기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인 코로나가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세계 경제가 비틀거리고 있다. 세계인의 일상생활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코로나가 인류에게 가르쳐 준 교훈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삶에서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는 엄숙한 사실이 아닐까?

 

나와 당신에게 생명 값어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