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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구두, 버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5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헌 구두

 

                              - 허태기

 

 

       발가락 굳은 살

       신발이 불편하다

       새 구두로 멋 부릴 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새 신발이

       꺼림칙하다

 

       신발장 넣어 둔

       뒤축 달은 헌 구두

       발에 맞춰보니 그렇게 편하다

       버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

 

       낡은 뒷창 고치고

       터진 실밥 기워주면

       새 구두 못지않게

       신명 나게 걸어간다

 

       세상살이 별거던가!

 

       낡았다 버리지 말고

       늙었다 홀대 마라

       길지 않은 삶

       기워주고 고쳐가며

       마음 편히 사는 것이

       최상의 행복.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우리는 어린 시절 손등에 모래를 잔뜩 쌓아놓고 단단하게 다지면서 두껍이에게 새집과 헌집을 바꾸자고 놀이하고 노래했었다. 지금이야 도시생활에 찌들어, 흙 자체를 만져보기도 어려운 삶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던 집이 조금만 낡으면 미련없이 헐고 새집을 짓는 ‘재개발사업’에 사람들은 미쳐간다. 낡은 것은 무조건 버려야 할 것들인가?

 

지금부터 한 15년 전쯤 나는 독일 함부르크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엔 지은 지 200~300년쯤 된 낡은 집들에 자랑스레 팻말을 붙이고 마치 문화재 보호하듯 하는 것을 보고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굳이 독일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오래된 유물들을 국보나 보물로 지정하면서 자랑스레 보존하고 전시한다. 또 오래 전승돼온 무형문화재들은 그 전승자들에게 무형문화재 보유자란 이름을 붙여주며 인간 보물 대접을 한다. 오래된 낡은 것들이 오히려 보물이 될 수 있음이다.

 

여기 허태기 시인은 그의 시 <헌 구두>에서 “뒤축 달은 헌 구두 / 발에 맞춰보니 그렇게 편하다”라고 노래한다. 그러면서 “낡았다 버리지 말고 / 늙었다 홀대마라 / 길지 않은 삶 / 기워주고 고쳐가며 / 마음 편히 사는 것이 / 최상의 행복”이라며 속삭인다. 낡은 것이 보물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오히려 맘 편한 것임을 외치고 있다. 낡은 인생도 뒤축 달은 헌 구두처럼 내게 상처 내지 않고 편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리라.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