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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양기탁 선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58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의 진흥을 위해 운영되는 사단법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 1층 로비에는 커다랗게 확대한 대한매일신보를 배경으로 대한매일신보를 만들었던 양기탁 선생과 배설(베델) 선생 흉상이 있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어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고 민족의식을 드높여 신교육에 앞장섰으며 애국계몽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던 신문이지요.

 

83년 전 오늘(4월 19일)은 양기탁 선생이 병을 얻어 중국 강소성에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날입니다. 선생은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펼쳐진 국권 회복 운동인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의 중심이 되어 이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양기탁 선생을 ‘국채보상의연금 횡령’ 혐의를 조작하여 구속하였고, 구금된 지 64일 만인 1908년 9월 25일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으나, 그 새 국채보상운동의 열기도 식었고, 친일배의 농간으로 의연금 일부도 빼앗기고 말았지요.

 

 

선생은 언론을 통해 배일사상을 드높였으며, 대한제국 당시 독립협회, 신민회 등의 창건에 참여하였고,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일제에 의해 수없는 체포, 구금을 반복했으며, 1933년 10월부터 1935년 10월까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령을 지내기도 했지요. 한말 계몽운동에서 시작하여 의열투쟁과 독립군 활동, 독립운동 정당과 임시정부 활동 등 우리 독립운동사의 큰 줄기를 앞장서서 이끈 선도자 양기탁 선생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