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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9번 수석합격 신화를 탄생시킨 이율곡 9가지 공부법

《율곡의 공부》, 송석구ㆍ김장경 지음, 아템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이번에도 또…공부의 신(神) 이율곡, 9번 수석합격 신화를 쓰다!>

오늘날 이런 일이 있다면, 신문에 이런 제목으로 대서특필되지 않을까. 1564년(명종 19년), 대과 명경과의 최종합격자가 발표되던 날. 한양은 온통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의 탄생으로 술렁거렸다. 그 어렵다는 과거시험을, 9번 모두 수석으로 합격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이율곡. 500년 조선사에 이런 공부 천재는 없었다.

 

이 책, 《율곡의 공부》는 5,000원권 지폐의 주인공이자 신사임당의 아들인, ‘이율곡’이라는 전무후무한 공부 천재가 이뤄낸 9번 수석합격의 비밀을 9가지 공부법으로 풀어낸 책이다. 입지, 교기질, 혁구습, 구용구사, 금성옥진, 일목십행, 택우문답, 경계초월, 지어지선으로 요약되는 이 9가지 공부법은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어우러져 공부의 본질을 꿰뚫는 심오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실, 사극이나 역사책에서 흔히 접하는 조선의 신하들은 그저 ‘공부 좀 했던’ 정도가 아닌, 난다긴다하는 수재들이었다. 조선에서 대과에 급제해 조정에 출사하는 것은 평생을 공부해도 뜻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만큼 소수의 수재에게만 허락된 일이었다. 대과 급제의 길은 그만큼 험난하고 좁았다.

 

여기서 말하는 대과(大科)는 좁은 의미로 문신이 치르는 ‘문과’를 의미한다. 대과를 치르기 위해서는 예비시험 성격인 소과(小科)에 먼저 합격해야 했는데, 소과는 유교경전에 대한 시험을 보는 생원시와 시를 짓는 등 문학적 소양을 평가하는 진사시로 나뉜다. 생원시와 진사시는 각각 초시와 복시라는 2단계 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최종합격한 사람은 ‘생원’ 혹은 ‘진사’라는 호칭이 주어지고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얻었다.

 

소과는 3년에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식년시(式年試)와 암금 즉위와 같은 큰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는 증광별시(增廣別試)로 나뉘어 생원ㆍ진사 각 100명을 뽑았으므로, 전국에서 200명만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실 생원이나 진사가 되는 것도 상당한 수재라야 가능했지만, 대과는 그야말로 수재들이 진검승부를 벌이는 시험이었다. 특히, 유력가문 자제의 경우 소과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과에 응시하는 예도 많았으므로 대과의 경쟁률은 그만큼 더 치열했다.

 

대과 역시 3년에 한 번 실시하는 식년시와 비정기적으로 치르는 증광시, 별시, 알성시 등으로 나뉜다. 대과는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를 거쳐야 하며, 먼저 초시에서 240명을 선발한 뒤 복시에서 최종합격자 33인을 선발한다. 그리고 이 33명은 마지막으로 임금 앞에서 순위를 매기는 전시를 치른다.

 

곧, 3년에 한 번, 전국에서 33명만 뽑는 시험이 대과였다. 대과의 경쟁률이 상상이 가는가? 물론, 3년에 한 번 실시하는 정기 시험인 식년시에 급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비정기 시험이 자주 열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대과는 합격자 수를 놓고 봤을 때 오늘날의 고시와 비교해도 훨씬 더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낼’ 뿐만 아니라, 그것도 장원, 곧 수석으로 9번을 해낸 인물이 바로 이율곡이다. 이쯤 되면 공부의 달인을 넘어 가히 공부의 신이라 불릴 만하다. 그는 불과 13살에 소과 진사과 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한 것을 시작으로, 21살에 소과 진사과 복시 장원, 22살 특별시 별시 장원으로 이미 세 차례 장원의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29살에 이르러 그간 쌓아온 실력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며, 소과 생원과 초시 장원, 소과 생원과 복시 장원, 소과 진사과 초시 장원(소과 진사과 복시 합격), 대과 초시 장원, 대과 복시 장원, 대과 전시 장원으로 여섯 차례 장원을 하면서 ‘구도장원공’으로 등극했다.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가능했을까? 그 비결은 율곡 이이가 평생 가슴에 담고 실천했던 아홉 가지 공부법에 있었다. 필자는 그 공부법을 율곡이 살아있다면 한 번쯤 썼을 법한 합격수기의 형태로 풀어보고자 한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아홉 차례 장원을 한 것을 두고 대단한 천재라 칭송하지만, 나는 오로지 아홉 가지 공부법에 따라 정진했을 뿐이다. 어머니 신사임당이 학문을 가까이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어려서부터 글 읽는 것을 좋아했으나, 16살에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참으로 방황하였다.

 

그리하여 19살 되던 해, 금강산에 들어가 1년간 불교에 심취하였다. 비록 유학이 불교보다 나음을 깨닫고 1년 만에 하산했으나, 조선에서 이는 크나큰 주홍글씨가 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뜻을 확실히 세우게 되었다. 앞으로 유학공부에만 매진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함으로써 효를 다하고 이 세상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그에 따라 지은 글이 ‘자경문’이다. 이 자경문을 매일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세웠던 뜻을 한시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공부법의 첫 번째도 바로 입지(立志), 곧 뜻을 세우는 것이다. 본격적인 공부에 앞서 왜 내가 공부를 하는지, 내가 공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목표를 확실히 세워야 한다. 공부에 대한 목표의식이 뚜렷하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어렵다. 특히, 입지를 막는 큰 병인 불신과 부지, 불용을 경계해야 하는데, 이는 성현의 말을 믿지 않고, 공부가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모르며, 평소 하던 대로 무사안일에 빠져 분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뜻을 세웠으면, 두 번째로 교기질(矯氣質), 곧 자신의 기질을 바로잡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허령통철한 본성, 곧 선량하고 환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선한 본성을 믿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기질을 공부하는 체질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극기복례를 통해 타고난 선한 본성을 회복하면 누구나 공부하는 체질로 바뀔 수 있다.

 

그다음, 세 번째로 해야 할 것은 혁구습(革舊習), 곧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는 것이다. 내가 이때까지 쌓아온 나쁜 습관을 과감히 버리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지난날 특별한 잘못이 없었다 해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나를 항상 성찰하여 나쁜 습관을 고치는 수신(修身)의 과정, 그것이 혁구습이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나면, 네 번째로 해야 할 것이 구용구사(九容九思)를 실천하는 것이다. 구용구사는 공자가 말한 아홉 가지 바른 몸가짐과 생각을 말한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구용구사와 같은 좋은 태도와 더불어 근독, 곧 조심성이 있고 독실한 태도를 몸에 익혀야 한다. 단정한 태도와 용모를 유지하고, 바르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고, 홀로 있을 때 삼가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공부의 기본이다.

 

그 뒤 다섯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절박한 심정으로 공부에 매달려서, 금성옥진(金聲玉振)과 같이 지혜와 덕성을 두루 갖추는 것이다. 공부를 일단 시작했다면 처음 목표한 바를 이룰 때까지 끝까지 해야 한다. 적당히 하다가 포기할 것 같으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려면 배수진을 칠 정도의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이렇듯 절박한 심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섯 번째, 일목십행(一目十行)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방대한 독서를 해야 한다. 나는 꾸준히 독서를 한 결과 한눈에 10줄을 읽을 정도로 빠르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속독으로 책을 대강 살핀 후에 여러 번 다시 읽으면서 숙독하여 그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였고, 이처럼 속독과 숙독을 병행한 것이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독서로 뜻을 어느 정도 깨우치고 나면 일곱 번째, 택우문답(擇友問答)으로 학문의 일취월장을 꾀해야 한다. 나는 공부를 진전시키기 위해 주위 사람들과 문답을 많이 주고받았다.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먼저 뜻을 파악한 후에, 벗과 함께 논쟁하며 그 뜻을 풍성하게 하였다. 따로, 또 같이 공부하는 이런 공부법 덕분에 학문이 한층 깊어질 수 있었다.

 

여덟 번째, 이렇게 깊이를 추구하면서, 학문의 넓이도 함께 추구하는 경계초월(境界超越) 공부가 필요하다. 나는 한때 노장사상과 불교에 심취했고, 이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나 다양한 사상과 학문을 접했기에 23살에 치렀던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이라는 명답안을 써낼 수 있었다. 학문의 깊이와 넓이를 함께 도모한 것이 나의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아홉 번째는 지어지선(止於至善) 공부법이다. 선한 마음으로 공부한 것. 이것이 마지막 비결이다. 나는 단순히 개인의 영달을 위해 공부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자는 항상 선한 마음을 지키고, 자신이 장차 세상에 미칠 선한 영향력을 꿈꾸어야 한다. 이렇듯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공부할 때 더욱 몰입도 잘 되고,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

 

결국,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다. 공부는 자신의 선한 본성을 믿고,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선한 마음을 지키며 하는 것이다. 공부는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하여 더 나은 인간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이고, 오롯한 완성이란 어차피 없기에, 결국 평생 해야 한다. 이 나라의 선비들이 과거급제만을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의 완성을 도모하는 진정한 공부를 하기를 바란다.」

 

율곡은 자신이 ‘진정한’ 공부를 했음을 실제 삶을 통해 증명해 보이며, 평생 군자의 삶을 살다 갔다. 한 사람이 이렇게 역사에 남을 만큼 공부를 잘한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 공부가 시험만을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을 완성하는 참된 공부였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율곡이 약관의 나이에 스스로 지은 <자경문> 마지막 구절에서, 그가 품었던 크고도 높은 뜻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자경문 14항) p.202

공부에 노력할 때는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하라. 공부는 죽은 후에나 끝나는 것이니 급하게 그 효과를 구하지 말라. 이것 역시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다. 만약 이와 같지 아니하면 물려받은 신체를 욕되게 함이니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율곡의 공부 / 송석구‧김장경 지음 / 아템포 / 1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