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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리산타령 연수원을 만나다

평창강 따라 걷기 4-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강 따라서 조금 가니 차단기로 길을 막아놓았다. 나는 답사 날 며칠 전에 제4구간을 사전 답사한 적이 있다.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길을 조사하였다. 지도상으로는 길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에 차단기 건너 산 밑으로 길이 있어 보였다. 그때 마침 하일교 부근에서 산불감시원을 만났다. 그는 이곳 토박이였다. 그에게 물어보니 차단기를 넘어서 걸어가면 옛날 길이 나 있어서 다수대교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중간에 바위동굴이 나타나는데, 사람이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차단기 앞에서 일행에게 설명한 뒤 내가 먼저 차단기를 넘어갔다. 모두 뒤따라왔다. 처음 가는 길이지만 일행이 있어서 나는 무섭다기보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인적이 없이 낯선 길은 낡은 시멘트 길이었다. 바위가 부서져 내린 곳도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작년에 무성했던 잡풀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시덤불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통행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았다. 가는 중간에 괭이눈 군락지가 나타났다. 씨앗 모양이 고양이의 눈을 닮았다고 해서 괭이눈이라는 이름을 가진 들꽃이다.

 

 

이 길을 계속 가면 다수대교까지 연결되는데, 하일교에서 다수대교까지 가는 길의 중간부터 계장리이다. 계장리는 평창강의 남쪽에 있다. 계장리는 지형이 닭의 모양을 닮았고 마을 북쪽에서 동쪽으로 평창강이 길게 흐른다고 하여 ‘계장(溪長)’이라고 부른다. 강변의 벌판 마을이라 하여 ‘개장’이라고 불리다가 조선시대에는 계장(桂粧)이라고도 하였고, 해방 전후 잠시 ‘닭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며칠 전에 비가 와서 그런지 강물은 수량이 많았다. 우리가 걷는 둑길에서 거의 수직으로 강물이 내려다보인다. 바로 아래는 아마도 소가 만들어져서 꽤 깊을 것이다. 이 구간의 평창강에는 보가 없는가 보다. 만일 아래쪽에 보가 있다면 강물은 양쪽 둑 사이를 채워서 잔잔한 저수지를 만들 것이다. 강물 건너편으로 자갈밭이 넓은 것을 보면 아래쪽에 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 건너편 둑길에 줄지어 서 있는 벚나무에는 벚꽃이 한창이다. 멀리서도 하얀 벚나무들이 하얀 띠처럼 가로로 길게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바위동굴길이 나타난다. 동굴 입구를 막고서 하얀 페인트칠을 하였다. 동굴 왼쪽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벼랑길을 만들어 놓았다. 벼랑길 아래는 수직의 절벽이다. 벼랑길의 두세 군데는 짧은 굴을 파서 통로를 만들었다.

 

지구과학을 전공한 해당이 바위에 관해서 설명을 했다. 이 동굴의 바위는 석회암이 압력이나 열의 작용을 받아 변해서 만들어진 대리암(marble)이라고 한다. 석회암은 퇴적암이고 대리암은 변성암이라고 한다. 대리암과 대리석은 같은 것인지 물어보니, 대리암은 학문 용어이고, 대리석은 이용 측면에서 일반인들이 말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필자 주: 대리석이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기원하였다. 중국 운남성에 대리(大理)라는 지명이 있다. 대리는 운남성 여행지 가운데 하나인데 중국 내 수많은 소수민족 중에서 15번째로 많은 백족(白族)이 사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예쁜 돌들이 많이 나오는데, 대리에서 나오는 돌이라는 뜻으로 대리석-大理石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바위동굴길은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가 많아서 일행 모두는 휴대전화기를 꺼내 사진을 여러 장씩 찍었다. 멋있는 사진이 많이 나왔다. 내가 찍은 바위동굴 길 사진 둘을 올린다.

 

 

 

바위동굴 길은 약 100m 정도로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새로운 체험을 하면서 즐겁게 지냈다. 바위동굴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포장된 시멘트 길이 나타난다. 오른쪽 길가에 아주 낡은 비석이 하나 보였다. 사진은 찍었으나 글씨가 흐려져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무슨 공로비 같았다. 며칠 뒤 다시 와서 조사해 보니 바위동굴을 만드는데 공헌한 광산업자의 공로비였다.

 

 

다시 나타난 찻길을 따라 조금 걷자 다수대교가 나타났다. 다수대교를 왼쪽으로 건너면 다수리이고 이쪽은 계장리이다. 계장리에서 평창읍으로 갈 때 넘는 고개가 옥고개로서 마을의 관문이 되는 고개다. 산에서 옥이 많이 난다고 하여 옥고개라 한다는데, 옥고개 아래에는 금광이 었었다고 한다. 며칠 뒤 다시 와서 옥고개에 가보니 계장리라고 쓴 큰 비석이 있고 그 옆에 서장루라는 정자가 있다. 옥고개에서 내려다보면 굽이굽이 흐르는 평창강과 마을이 잘 내려다보인다.)

 

 

 

우리는 다수대교를 건너지 않고 둑길을 따라 직진했다. 강의 양쪽 둑길에는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벚꽃은 활짝 피어있다.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는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은 벚꽃을 두 번 본다고 좋아한다. 벚꽃을 바라보며 조금 걸으니 길 오른쪽에 집이 하나 나타난다. 선소리민박집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선소리? 처음 듣는 말이다. 선소리는 판소리의 한 분야가 아닐까? 마루 안쪽으로 커다란 간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4줄로 쓰여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이수자

사단법인 선소리 산타령 수원시 지부장

유영환 전통국악연수원

경서도ㆍ경기민요ㆍ장고

 

평창에서 국악 연수원을 발견하다니! 정말로 뜻밖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간상으로 여유가 없는 것 같아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은곡이 주인장을 찾아서 수인사를 나누고 밀을 건다. 위 사진에서 평상에 앉아 있는 사람이 주인장이다. 판소리에 관심이 많은 나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주인장은 전북 고창 출신이라고 한다. 고창이라면 판소리 여섯 마당을 모아 정리한 동리 신재효(1812~1884)의 고향이 아닌가? 나는 고창에 손윗동서가 살기 때문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고창의 모양성 성곽길도 걸어보고 신재효 고택도 둘러본 적이 있다. 주인장인 유영환 선생은 수원에서도 살았는데, 20년 전에 이곳에 땅을 사서 들어왔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선소리를 찾아보았다. 선소리는 앉아서 부르는 좌창(座唱)에 대비되는 말로 입창(立唱)이라고도 한다. 연주 형태는 한 사람이 장구를 메고 한 두 장단을 메기면 소고를 쥔 4~5명이 일렬로 늘어서서 전진 또는 후퇴하며 발림춤을 추면서 제창으로 노래한다. 선소리를 노래하는 집단을 선소리패라고 하는데, 그 지도자를 모갑(某甲)이라고 부른다.

 

시간 여유가 없어서 나는 대화를 길게 나누지 못하였다. 주인장에게 나는 봉평에 산다고, 다음에 한번 찾아뵙겠다고 인사하고 다시 걸었다. 며칠 뒤 다시 주인장을 찾아갔다. 통성명해보니 나보다 5살 아래였다. 푸근한 인상을 주는 남자였다. 그는 선소리를 황용주 명창에게서 배웠는데, 경남에 있는 진주대학에서 선소리 산타령 연구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선소리 학원을 운영한다. 이곳은 학원생들이 연수받으러 오는 연수원 시설이라고 한다.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는데, 방이 여러 개 있고 주방도 있고 연주 공간도 있다. 넓은 마당에서 연회도 할 수 있겠다. 마당 한구석에 있는 닭장에는 닭이 수십 마리 있었다. 그는 은곡 부부를 만난 적이 있고 은곡의 딸이 판소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전화번호를 서로 교환하였다. 앞으로 종종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조금 걷자 북쪽으로 흐르던 평창강은 커다란 절벽에 가로막혀 동쪽으로 90도 우회전하여 흐른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절벽을 병풍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병풍바위 아래로는 깊은 소가 만들어져 있다. 나중에 《평창군 지명지》를 찾아보니 소의 이름이 화랑소라고 한다. 신라시대에 화랑 한 사람이 그 위로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화랑소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금 더 걷자 왼쪽으로 강을 건너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의 이름이 임하교이고 다리를 건너면 임하리다. 임하리(林下里)는 《조선지지》에 나오는 이름이다. 뒷산에 숲이 많으므로 임하라 하였다. 1910년대에는 숩페라 하였고 현재는 수패라고도 부른다. 임하마을은 그 모양이 ‘배 형국’이다. 마을에 우물을 파게 되면 배의 바닥이 깨어져 물이 들어와 배가 잠겨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고 하여, 마을에서는 우물을 파는 일은 절대로 삼가고 있다.

 

임하교를 건너자마자 둑길로 우회전하여 강을 오른쪽에 두고 걸었다. 둑길의 오른쪽 길가에 심어진 나무는 줄기로 보아서 벚나무가 아니었다. 돌배나무 같기도 하고. 꽃이 피면 확실히 알 텐데, 아직 잎도 꽃도 나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이 나무는 벚나무보다 늦게 꽃 피는 나무인가보다. 두어 주 뒤에 다시 와서 꽃을 한번 보아야겠다. 며칠 뒤 이 답사기를 카톡으로 읽고서 다수리에 사는 문화해설사 한 분이 나무 이름이 이팝나무라고 알려왔다. 감사한 일이다. 임하리 둑길에서 옥고개가 가까이 보인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정자가 옥고개 정상에 있는 서장대이다.

 

 

강물은 동쪽으로 유유히 흐르다가 옥고개 아래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우리가 걷는 강 왼쪽이 임하리이고 강의 건너편 오른쪽은 평창읍 용향리이다. 일행 가운데 한 명은 서울로 가는 밤 기차를 예약했고, 한 명은 군포로 가는 시외버스를 예약해 두었는데, 얼추 계산해 보니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빨리 걸어서 저녁 6시에 임하교회에서 오늘 답사를 끝냈다.

 

일행이 모두 7명이었기 때문에 출발점으로 이동하려면 차가 2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에 방림면사무소에서 출발하기 전에 임하교회에 은곡의 트럭을 미리 가져다 놓았다. 트럭 앞 좌석에 2명이 타고 5명은 트럭 짐칸에 타고서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트럭 짐칸에 쪼그리고 앉아 바람을 씽씽 맞으며 우리가 걸어온 뇌운계곡을 트럭을 타고 통과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추억에 남을 것이다.

 

 

오늘 평창강 따라 걷기 제4구간 11km를 일곱 명이 4시간 동안 걸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