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연호(年號)”란 임금이 즉위한 해에 붙이던 이름이며, 해의 차례를 나타내려고 붙이는 이름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하는 “서기(西紀)”를 쓰고 있지요. 그런데 서기 이전에는 “정삭(正朔)” 곧 중국의 달력을 사용하여 중국의 연호를 같이 썼습니다. 신라는 물론 고려 대부분과 조선에서도 중국의 연호를 썼는데 자주적인 생각이 강하던 때는 독자적인 연호를 쓰기도 했지요.
특히 강성한 나라를 세워 넓은 나라땅을 가졌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즉위한 391년부터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써서 문헌상 최초의 독자적인 연호로 기록됩니다. 나라를 세워 멸망할 때까지 내내 독자적인 연호를 쓴 것은 발해가 유일하며, 신라는 진흥왕ㆍ진평왕ㆍ선덕여왕ㆍ진덕여왕 때, 고려는 태조 왕건 이후 4대 광종까지만 독자적인 연호를 썼습니다. 조선왕조는 처음부터 명(明)나라의 제후국이라 하여 독자적인 연호를 쓰지 않다가 1895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독자적인 연호 “건양(建陽)”과 “광무(光武)”를 썼는데 이마저도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독자적인 연호는 사라지고 일제강점기 동안 일제의 연호를 쓰게 되었지요.
그러다 해방 뒤 1948년 9월 25일부터 단군이 즉위한 해인 서력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하는 단기(檀紀)가 공식적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2년 1월 1일부터는 단군 연호가 사라지고 서기로 바뀌게 됩니다. 사람들은 세계가 같이 쓴다는 서기를 써야만 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일본은 지금껏 서기를 쓰지 않고 독자적인 연호 곧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 평성(平成), 영화(令和)를 달력과 모든 공문서, 심지어 은행 통장에도 씁니다. 이에 견주어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복원한 숭례문 상량문을 올리면서 서기 연호만 썼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단기 표시만 하기 어렵다면 단기를 쓰고 괄호 속에 서기를 넣는 방법으로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