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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우리 이 문명시대의 두 연꽃

이 시대의 예언가인 백남준과 애플의 창시자인 스티브 잡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0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계절의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주는 전령사는 꽃이라 하겠다. 3월에 매화가 피고 4월에 벚꽃, 개나리가 만발하다가 5월에는 장미가 피기 시작해 6월에 온통 세상을 빨갛게 물들이는데 7월에는 우리나라가 연꽃 천지로 변한 것 같다. 예전 함창 공갈못가에 많이 피어 민요도 많이 만들어졌다지만 요즘엔 서울 근교 양평의 세미원을 비롯해 멀리 무안 백련지의 연꽃단지도 그렇고 지자체들의 노력으로 전국에 연꽃이 피는 곳이 엄청 많아졌다. 좀 부지런을 떨어 아침 일찍 연밭에 나가서 막 피어나는 연꽃 봉우리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고결한 꽃이 나올 수 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이란 글에서 “국화는 꽃 중의 숨은 선비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함인데, 연꽃이야말로 꽃 중의 군자로다”라고 칭찬한 이후 우리나라 선비들은 더욱 연꽃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니

줄기의 속은 통하고 겉은 곧아서 덩굴이나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맑고 우뚝하게 서 있는 모습”

 

                                                              ... 애련설, 주돈이

 

 

 

이러한 연꽃의 아름다움과 덕성이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되어, 그런 사람을 우리가 군자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주위에서 그런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한다. 7월은 우리가 연꽃을 통해 군자의 풍모를 접할 수 있는 달이기도 하다. ​

 

그런데 유학자나 문인들에 앞서 우리는 오히려 석가모니 부처로부터 연꽃의 의미를 직접 배운 것 같다. 군자로서 이웃에 맑은 향기를 전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사람들이 더럽다고 하는 진흙탕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거기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점을 불경은 가르쳐 준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 불교 호법신의 하나)이 부처님께 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부처님께서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고 대중들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마하 가섭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염화시중, 염화미소이고 이후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 되었는데 부처님이 아무 말 없이 연꽃을 들어 보이신 뜻이 무엇일까?

 

그것이 연꽃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진흙탕이란 것이 기실 욕심과 음모, 번뇌와 괴로움으로 점철된 우리 사바세계를 의미하고, 연꽃은 그런 유혹과 괴로움에 물들지 않고 마음이 활짝 열려 깨달음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러한 깨달음의 관점을 우리 사회 전체로 확대해 본다면 현실의 여러 잡다한 물결, 혼탁한 갈등 속에서 더러운 물을 정화하고 거기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새로운 사회, 더 좋은 세상을 열어주는 것도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연꽃으로 대변되는 깨우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꽃의 계절 7월에는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으니 첫번째가 이 시대의 예언가인 백남준 선생이다. 1932년 7월 20일 생이니까 올해 우리 나이로 구순, 곧 탄생 89년이 된다. 시람들은 그를 비디오예술가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백 선생은 이미 1970년대 중반에 전자기술문명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 21세기를 내다 보고 이러한 기술우위의 시대에 예술이 어떻게 인간을 지켜주고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가를 열어 보인 선지자였다.

 

오늘날 우리가 휴대전화 하나로 온 세상을 연결하고 인터넷으로 온갖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고 즐기고 하는 이런 세상을 위해 80년대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나 '바이 바이 키플링' 등의 위성 예술쇼를 통해 재미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1998년 교토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에 이러한 세상을 도래를 준비하자고 역설한 바 있다.

 

그가 예견한 전자문명의 꽃이라 할 영상예술은 오늘날 우리 생활 곳곳에서 구현되고 있거니와 그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세상을 미리 보고 이를 이끌어준, 말하자면 현대의 혼란한 기술문명을 예술이라는 연꽃으로 로 다시 피워준 사람이었다. 실제로 백남준의 작품 가운데 'TV붓다'나 'TV-달', 'TV정원' 같은 것을 보면 불교적인 사상이 많이 녹아있다고 하겠다.

 

 

 

또 다른 사람은 애플의 창시자인 스티브 잡스이다.

 

1976년 애플이란 컴퓨터 제조회사를 만들고 이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신작들을 쏟아내면서 기계가 얼마나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늘 앞장서서 열어보였다. 그는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편의와 편리, 효용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을 해 냈는데, 그것이 우리 전자기업들의 한발 앞에서 이루어진 변화로써 우리들이 따라가느나 애를 먹을 정도로 혁신을 이끌어냈다. 그는 기술과 기계를 사용하는 주인인 인간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었다. 그러한 그가 젊을 때부터 불교에 깊이 들어가 늘 선과 명상을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를 기술문명에서 인간을 위한 연꽃을 피워낸 사람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 기술문명 속에서 두 연꽃을 피운 두 사람은 아쉽게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백남준은 15년 전에, 스티브 잡스는 10년 전에 세상을 떴는데, 그 이후 우리 사회는 전자기술문명에 빛을 비춰주는 영감의 등대가 꺼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미국도 스티브 잡스의 사후 혁신이 없어졌다는 아쉬움을 토하는 사람들이 많다. 백남준은 기계문명에서 예술의 역할을 규정하고 그 가능성을 열어갔고 잡스는 문명이 어떻게 인간에 편리하게 쓰이는가를 알려주었는데 그 둘이 역사 속으로 넘어가면서 현대문명의 목적이 길을 잃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7월, 이제 우리나라 여러 곳에 피어나는 연꽃들을 보며, 일찍이 현대 기술문명 속에 사는 우리에게 밝고 맑은 연꽃을 피워준 두 사람의 발자취와 그들이 품어준 향기를 다시 맡아보게 된다. 그것을 되살려, 현대 인류문명을 더 멋지게 혁신하고 즐길 수 있는 창조력과 비전이 연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