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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이방인 하멜의 표류지 서귀포 용머리해안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는 우뚝 솟은 산방산이 있고, 산방산에서 남쪽으로 해안가에는 바다로 불쑥 내민 능선이 마치 꿈틀대는 용이 바다를 향해 들어가려는 듯한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이 바다에 면한 곳인 용머리해안과 그 옆으로 황우치해변이 있다. 용머리해안은 용암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치를 뽐내는 절경으로 평가되어 제주도에서도 중요한 지질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이 해안가는 80만년전 지하에서 솟아오른 용암이 흘러내려 해안가에서 멈춘 것으로 밀물이 빠지면 용머리처럼 솟아오른 해안가를 돌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관찰할 수 있다. 반면 밀물 때는 파도에 휩쓸릴 수 있는 위험이 있어 해안 출입이 금지된다. 기자가 찾은 날은 때가 밀물 때인지라 해안가를 돌수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이곳에는 조선 효종4년(1653) 네델란드 사람 하멜이 선원 64명과 함께 일본으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표류하여 가까스로 이곳에 당도하였다. 그들은 난파당한 신세로 28명은 익사하고 36명은 살아남았는데, 배가 파손되어 결국 조선 관원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서양인을 처음 보게된 조선사람들은 그들이 참으로 별난 사람들로 여겨졌다.

 

그들은 조선 이곳 저곳으로 끌려다니며 노역으로 고생하는 등 13년 동안 조선에서  강제노역을 하며 살았는데, 이들 가운데 8명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일본으로 탈출하여, 일본에 왔던 네델란드 배를 타고 네델란드로 귀국하였는데 하멜은 13년 전 표류한 배에서 항해에 대한 모든 기록을 담당하던 서기였다. 그는 조선에서  탈출하여 조선의 이곳 저곳에서 억류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책으로 써서 조선왕국을 서구세계에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하멜은 자신이 서기였던 까닭에 자신이 머무는 동안 자신이 본 당시 조선상황을 기억을 더듬어 자세히 기록하였다. 제주에 표류할 당시 처음에는 36명이 구출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2년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노역꾼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전라도로 옮겨졌다. 그런데 그 동안에도 병에 걸려 14명은 죽고 남은 22명은 현종 4년(1663) 여수, 남원, 순천 등으로 나누어 흩어진 뒤 관노비들 처럼 온갖 잡역을 하면서 살았다. 이들 가운데 하멜은 여수로 배치되어 살았는데,  여수로 갔던 사람들 가운데 8명이 탈출계획을 세운 뒤 배를 사서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하였다가  그곳에 온 네델란드 상선을 얻어 타고 1668년 네델란드 암스텔담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3년 만에 고향 네델란드로 돌아간 하멜은 그동안 고생하며 살았던 조선에서의 경험을 자세히 기록 하였는데 그가 쓴 책은 《하멜표류기》로 1668년 출판되어 한국을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그 책에는 한국의 지리 풍토 산물 정치 군사 풍속 종교 교육 교역 등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였고, 그가 조선에서 취조과정에서 받았던 각종 형벌에 대하여도 썼다.

 

이런 사건이 있고 난 뒤로 조선은 하멜일행에 대하여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러다 조선이 끝나고 한국이 오랜 고난의 세월을 겪고 난 뒤, 나중에 《하멜표류기》를 통하여 그가 처음 도착했던 이곳 용머리해안가에 하멜기념비를 세우고, 그가 타고 왔던 당시 네델란드 상선을 재현하여 그의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가 이곳에 표류할 당시에는 이방인으로 환영받지 못하였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에는 먼 옛날 한국을 찾은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하멜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한국인들이 자신을 기려  이처럼 기념관 까지 세워 줄 지는 아마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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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