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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기 전 온천행을 한 세종

북방지역 정비와 김종서- ③
[‘세종의 길’ 함께 걷기 78]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때 북방족은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은 부족 형태여서 노략질 형태로 쳐들어오곤 했다. 그러기에 평시에도 상대방 부족들의 동향을 파악해 두어야 할 첩보에 민감할 필요가 있었다. 일종의 정보전의 모습이었다.

 

세종의 업적은 여럿 있지만, 훈민정음[한글] 창제 이외에 여진족 토벌을 통하여 대규모 백성을 이주시킨 사민입거(徙民入居) 그리고 압록강 인근의 4군과 두만강 인근의 6진을 설치하여 국경을 확장한 일도 있다.

 

파저강 1차 전투

 

파저강(일명 동가강) 일대에 걸쳐 사는 야인(여진인)들은 원말명초(元末明初)의 혼란기를 이용해 조선의 강계ㆍ여연 등지를 자주 침입해 사람을 살상하고, 소와 말, 재물 등을 약탈하였다. 이에 파저강 야인정벌(婆猪江野人征伐)은 1, 2차로 행해졌다.

 

1차 정벌은 세종 15년(1433) 4월 10일에 압록강 중류지방의 여진인을 정벌하게 되었다. 정벌군의 총사령관에 평안도절제사 최윤덕(崔閏德)을 임명하고 평안도의 마보정군(馬步正軍) 1만 명과 황해도 군마 5,000필을 징발해 모두 2만 명의 군대를 4월 10일 강계부에서 7대로 나누어 정벌을 단행하였다.

 

이 정벌에서 생포된 여진인은 모두 248명, 참수된 자는 모두 178명에 달하였으며 그밖에 우마 177필을 노획하였다. 이로써, 조선은 태종 이래 북진 정책의 하나로 추진하였던 압록강 유역을 개척하고 여연ㆍ자성ㆍ무창ㆍ우예 등 4군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파저강 2차 전투

 

파저강 2차 전투는 세종 19년(1437) 9월 7일부터 15일까지 조선군이 압록강 중하류 지역의 대안에 거주하는 여진족 근거지를 공격하여 소탕한 전투가 된다.

 

세종 15년(1433)에 전개되었던 제1차 파저강 야인 토벌작전에서 탈출한 이만주는 명나라의 건주위 도독이라는 직함을 이용하여 조선군의 포로가 된 부족들을 송환해 줄 것을 명나라에 요청하였다. 조선은 명의 요구에 따라 이만주의 사죄를 받아들이고 포로를 돌려보냈으며 이들이 다시 파저강 부근의 옛터로 돌아오는 것을 용인하였다.

 

그러나 이만주는 다시 세력을 규합한 후 세종 17년(1435)부터 2년 동안에 걸쳐 조선의 서북과 동북 변경지대를 잇달아 침공하였다. 이에 조선정부는 명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먼저 통첩을 보내 명의 양해를 얻은 후 재차 정벌군을 출동시켰다. 이 전투에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병력 7,800명이 동원되었고 평안도 병마도절제사 이천이 총지휘를 맡았다.

 

여진인들은 조선군의 작전 목표가 자신들의 근거지를 완전히 초토화해 이후에도 세력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없애버리려는 것임을 깨닫고 1차 토벌작전 때와는 달리 조직적으로 저항하였다. 9월 13일 저녁에는 조선군이 아직 진용을 갖추지 못하였을 때 여진 기병대가 기습하여 접전이 벌어졌으나 반격하여 퇴각시켰고, 이튿날 아침에도 여진 기병대가 조선군을 기습 공격하였으나 조선군은 화포사격을 가하여 격퇴할 수 있었다.

 

이 전투는 1차 작전에 견줘 전과는 크지 않았으나 초토화 작전의 성공으로 이후 이만주의 여진 세력은 명나라 변방 장벽 부근의 훈하 상류로 이동하였고, 조선은 평안도 압록강 중하류 변경지역을 군사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9월 7일 강계도호부를 출발한 조선군은 중군과 좌군ㆍ우군으로 병력을 나누어 압록강을 건넌 뒤 이만주의 여진부락을 압박, 수색하면서 마을을 불태우고 노획한 식량도 모두 태워버리는 등 초토화 작전을 충실히 펼쳤다.(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온천행과 비밀 유지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세종 15년 3월 25일 세종은 온수현에 온천행을 나선다.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전쟁은 압록강 근처에서 벌어지는데 평양 근처로 가서 격려하든, 명령을 하루라도 빨리 내릴 수 있게 전장터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북방과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다니. 그 행적을《세종실록》에서 살펴보자.

 

* 세종 15년 3월 25일: 온수현 온천에 행차할 때 왕세자 이하 종친ㆍ부마 등이 따르다. 낙생역(樂生驛) 전평(前平)에 머무를 곳을 정하다.

 

* 3월 25일 : 최윤덕에게 동맹아첩목아에 대한 처분에 관해 명을 내리기를 "동맹가첩목아가 북경에서 돌아오는 시기가 반드시 파저강을 치는 때에 당할 것이니, 만약 저 도적들을 돕거든 거짓 모르는 체하고 죽이며, 저 도적들을 돕지 아니하고 성심으로 귀순하거든 죽이지 말 것이니, 오직 경은 비밀히 마음속에 간직하고 남이 알지 못하게 하여라." 하였다.

 

* 4월 5일 : 임금이 안숭선과 김종서에게 권두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오거든 협공할 것인지 묻다. "권두(權豆) 등이 만약 파저강을 구원하려고 군사를 거느리고 오거든, 평안도 절제사로 하여금 몰래 함길도 절제사에게 통보하여 협공(挾攻)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하니, 숭선 등이 아뢰기를,

 

"권두 등이 과연 파저강을 구원하고자 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면, 평안도 도절제사가 임금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라도 어찌 치지 않겠습니까. 권두 등이 본국 경내(境內)에 살지 않으려고 한다면, 처자(妻子)들은 미리 다른 곳으로 옮겨 놓고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파저강 사람을 구원할 것인데, 그렇게도 하지 않고 어찌 저희가 가볍게 행동하여 틈을 내게 하겠습니까. 반드시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니 협공(挾攻)하는 것을 멈춰 그들을 안심시키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누설하지 말라." 하였다.

 

* 4월 25일 : 평안도 감사에게 명하기를, "이제 이순몽이 사로잡은 56명은 통역사에게 맡겨 근본을 캐물어서, 중국 사람과 본국 사람은 우선 근처 각 고을에 나누어 두고 가볍게 처리하지 말 것이며, 그 나머지 야인 장정들은 결박하여 가두고 도절제사의 처치를 기다리라. 후일의 포로도 또한 이 예에 의하라." 하였다.

 

전투는 15일부터 벌어지고 포로에 관한 보고는 이날 처음 이루어진다.

 

* 4월 26일 : 평안도 감사 이숙치가 최윤덕ㆍ홍사석 등이 생포하고 사살한 수를 알렸다. 가져온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옷을 내렸다

 

* 5월 2일 : 권맹경ㆍ박이녕이 건주위에서 돌아와 승전을 아뢰니, 옷을 각각 두 벌씩 내려주다.

 

* 5월 3일 : 전후 논의. 영의정 황희ㆍ좌의정 맹사성ㆍ우의정 권진ㆍ이조 판서 허조ㆍ판중추 원사 하경복ㆍ호조 판서 안순ㆍ예조 판서 신상 등을 불러 정사를 논의하였다.

 

이때 전후의 사정 등 여러 논의가 일어졌을 것이다.

 

전투는 압록강 부근에서 벌어지는데 임금은 남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적을 속이기 위한 계책으로 기만술이다. 당시 한양에는 여진족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곧 전투가 벌어질 텐데 임금이 행렬을 갖추어 남행하고 있다는 정보는 여진족에게 적잖이 안심되는 정보일 것이다.

 

파저강 1, 2차 전투를 보면 일선에서 앞장선 장군은 최윤덕이지만 뒤에서 보좌한 사람은 김종서였다. 김종서는 3월부터 함길도 병마절도사로 있었다. 김종서가 한양으로 돌아온 건 세종 27년(1445)이었다. 함길도로 떠난 지 12년 만이었다. 예조판서로 불러올렸으나 그것도 잠시, 다시 충청도로 파견되어 태안 군사시설을 돌보아야 했고 세종 31년(1449)에 다시 달달 야선(也先)(타르타르 부족과 오일라트의 추장)의 침입을 막는 요동 지역에 평안도 절제사로 파견되어 의주에 읍성과 행성을 쌓으며 변방 안정에 주력했다. 그런 김종서가 단종 1년(1453) 수양대군에 의해 최후를 맞은 것은 비참한 일이다.

 

 

나라를 뒷받침하는 사람들은 임금의 결단, 헌신적인 장군 그리고 숨어서 활약하는 의병이라 할 반간(적의 첩자를 역이용해 적의 동정을 살피거나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