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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찍 개화했다면 만주는 우리땅이 되었을 것

경북인의 만주망명 110주년 기획 보도 –경북 여성 항일투쟁기<1>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 안동대학교 인문대학은 2021년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와 그 집안이 독립운동을 위해 이국땅인 만주로 망명길에 나선지 110주년을 맞이하여, 경북지역 여성들의 항일투쟁기를 주제로 총6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1편은 석주 이상룡의 아내로 독립에 대한 진취적 의식을 드러낸 김우락(金宇洛, 1854 -1933) 을 조명하였다.

 

조선에 그대로 남아 일제에 협력했다면 자신들의 지위와 권세를 유지하고 어쩌면 자손들까지 혜택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나라를 잃고 몸을 편히 쉴 수 없다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버리고 해외로 떠나갔다. 척박한 만주 벌판에서 무수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이들은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는데 일조하고 함께 건너간 동포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경북 지역에서는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기자 솔선하여 의병활동과 척사상소운동, 애국계몽운동 등 독립을 위한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내앞마을의 백하 김대락, 일송 김동삼 등이다. 만주로 떠난 독립운동가들의 고난과 성취는 이상룡의 『석주유고』, 김대락의 『백하일기』와 같은 귀중한 자료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만주 망명길에는 자연히 여성들도 함께 했는데, 남성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여성들의 고난과 망국에 대한 설움도 컸다. 그럼에도 이들은 남성 못지않게 고난을 감수하면서 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고성이씨 석주 이상룡의 부인인 김우락, 며느리인 이종숙, 조카며느리인 김숙로 등이 대표적이며, 의성김씨 일송 김동삼의 부인인 박순부, 제수인 월성이씨, 왕산 허위의 부인인 평산신씨, 며느리인 박노숙과 손기옥, 진성이씨 이원일의 아내인 김경모와 딸인 이해동, 권기일의 아내인 안동김씨, 배재형의 아내인 의성김씨 등 수많은 경북 여성들이 만주로 떠나 독립 운동에 일조했다.

 

 

그럼에도, 이들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경과 독립의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가운데 석주 이상룡의 부인이자 백하 김대락의 누이인 김우락을 주목할 수 있다. 김우락은 이상룡이 만주 망명을 결정하자 두말없이 따라갔다. 김우락은 ‘나라에 대한 충의보다는 남편을 따르고자 하는 의리 때문에 망명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우락이 지은 국문가사인 『해도교거사』에는 나라에 대한 독립의지가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남편과 자신의 망명이 ‘국권 독립을 위한 것’임을 언급하거나, ‘우리가 일찍 개화했다면 만주 땅이 우리 것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포부가 담겨 있었다. 또한 가사의 말미에는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독립에 큰 힘을 보태어 아무리 여자라도 한 바탕 흔쾌히 원수를 갚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담기도 했다. 이는 종속적인 전근대 여성상을 넘어 남편과 함께 충의를 지키고자 했던 진취적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해도교거사』에 보이는 김우락의 대체적인 인식은 남성에 대한 종속적 삶을 살아온 사대부가 여성의 유서 깊은 양반가 종부이자, 남편을 따르고자 했던 전형적인 전근대 여성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우락은 남편에 대한 맹목적 순종 의식만 표현하지 않았다. 이는 유교사회의 테두리 속에 내재한 여성의 한계 속에서도 국가를 잃은 이후 독립을 위한 의지가 남녀 불문하고 발현되고 있는 점을 강렬히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나라와 민족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고자 고통을 무릅쓰고 만주로 떠난 남편과 그 길에 동참한 부인을 보면 여성들 역시 순종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의리를 위해 모진 고난을 감내하는 실천가이자 ‘독립운동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