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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영화 ‘암살’의 본보기, 남자현 지사①

경북 여성 항일투쟁기<3>
경북인의 만주망명 110주년 기획 보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 안동대학교 인문대학은 만주망명 110주년을 맞이하여 경북지역 여성들의 항일투쟁기를 주제로 모두 6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3편은 영화 ‘암살’에서 직접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걸 ‘안옥윤’ 역할의 모델이 되었던 남자현 지사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 여성들은 대부분 한인 사회의 안정과 같은 후방기지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남성들과 함께 항일투쟁에 직접 뛰어들어 활약한 여성들도 존재했다. 남자현 지사가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한 실제 주인공이었다.

 

남자현 지사는 영양남씨의 후손으로 1872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남정한(南珽漢)과 진성이씨 사이에서 막내였다. 의성김씨 김영주(金永周, 1871~1896)와 혼인하였다.

 

남자현 지사가 주체적으로 항일 무장투쟁에 뛰어들게 된 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함께 가족의 비극적인 환경이 함께 작용하였다. 혼인하고 5년 밖에 안 된 1896년, 항일 의병 활동을 펼치던 남편 김영주가 전사하는 비극을 맞았다. 남편의 죽음 이후 생계를 맡아 시부모를 봉양하고 유복자인 아들 김성삼(金星三)을 길러야 했다. 더욱이, 1910년에는 원수였던 일본에 의해 국가가 강점되는 비극을 경험하였다.

 

 

당시 경북지역의 유수한 인사들이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투쟁을 준비한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15년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만주로의 망명을 결심하게 되었다. 1917년 아들 김성삼을 우선 만주로 보내 기반을 닦게 하였고,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이후 곧바로 만주로 망명을 떠났다.

 

만주 망명 이후 생계를 아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직접 독립투쟁에 뛰어들었다. 남자현 지사는 경북지역 출신 인사들이 다수 운집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망명 초기 만주에서 수행한 주요한 역할은 교육활동이었다. 남 지사에 대해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서 부친인 남정한이 일찍부터 글을 가르쳤는데, 7살에 한글을, 8살에 한문을 터득하였다. 12살에는 소학과 대학을 읽었고 14살에 사서를 독파하고 한시(漢詩)를 지었다.”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학식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정의부로 옮겨 활동한 때에도 교육 사업에 적극적이었고 특히 여성계몽에 앞장서고 있었다. 지청천의 딸인 지복영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우리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남자현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가운데 줄임) 우리의 이 비참한 망국의 설움과 멍에를 벗으려면 여자들도 독립운동에 참여해야 하고 글도 배워야 한다.”라고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다녔다고 한다. 1928년에는 길림교당에서 ‘김림여자교육회 부흥’을 위한 총회를 개최하여 여성 교육에 열정을 쏟기도 했다.

 

 

 

남자현 지사는 만주 망명 이후 8년이 지난 1927년대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무장항일투쟁을 위한 역할에 헌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때 공식적으로 남자현의 이름이 만주지역에서 등장하였다. 바로 ‘조선혁명자후원회’의 중앙위원이라는 공식 직함이 생긴 것이다. 이 모임은 혁명가와 가족을 후원하기 위한 국제적 조직이었다.

 

남자현의 무장활동이 처음 확인되는 것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 시도와 관련된 사건이다. 1927년 암살 계획을 수립한 이후 권총 한 자루와 탄환을 받아 서울로 잠입했던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무장투쟁에 나선 모습이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만주로 망명한 이후 교육 활동과 같은 후방의 지원 업무에 매진했던 남자현 지사는 1927년을 기점으로 더욱 본격적인 무장 투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총독 암살 시도 이후 꾸준히 독립활동을 펼친 남자현 지사의 모습에서, 이 시기 경북 여성 독립운동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